조선초기의 서예미학-안평대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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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朝鮮初期 周邊國의 文化的狀況
1.中 國 2.日 本

Ⅲ.朝鮮初期의 書壇과 安平大君
1.世宗朝의 文化的 背景 2.安平大君의 生涯와 主要作品
3.安平大君의 書風과 美學的思潮

Ⅳ.맺는말
* 參考文獻

본문내용

였는 바, 2000년경에 새로 發見된 작품(春夜宴桃李園序. 圖8)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글자간 大小 ,纖厚, 强弱, 緩急을 적절히 混合하여 잘 調和된 美感을 보여주고 있다.
그외에도 安堅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던 ‘夢遊桃園圖’에는 成三問, 朴彭年, 李塏 등 死六臣과 金宗瑞, 徐居正, 申叔舟 등 당시를 대표하던 20여 大學者들의 讚文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글씨들 대부분 '整頓美麗하였던 高麗時代의 書風에 조선의 開國과 함께 充滿한 새로운 시대의 氣運이 加味되어 雄動卓落하고 剛毅한 書風을 보여주고 있다' 金膺顯 東方書藝講座 東方硏書會 1995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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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맺는말
비록 한 時代에 特定書體가 크게 流行하였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筆體는 결국 각자의 個性이나 審美觀, 年齡 그리고 글씨 쓸 당시의 心的狀況등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朝鮮初期의 書藝家들 모두 또는 그 중 安平大君의 글씨라 하더라도 作品別로 그 筆體에서 풍기는 性格은 글씨가 쓰여질 당시의 狀況에 따라 차이 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그가 활동하던 당시 集賢殿 學士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글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모두 다 一律的으로 같을 수는 없으므로 조선초기 서예가들의 書風을 劃一的으로 姸媚華麗하다 또는 纖細銳利하다라고 斷定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뭏든 元末, 明初 그리고 조선초기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한 時代에 크게 流行하였던 貴族的性向의 '위 松雪體는 金佐明(1616-1671), 沈益顯(1641-1683), 吳泰周(1668-1716)와 같은 王室貴族을 중심으로 殘影을 끌다가 朝鮮中期 玉洞 李(1662-1723)에 의해 東國眞體로 대체되었고 그 후 이 書體는 尹斗緖(1668-?),尹淳(1680-1741),李匡師(1705-1777)에 의해 계승되었다' 崔 完秀 秋史書派考 澗松文化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81 p24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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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새로 開國된 國家의 기틀이 安定을 이루고 太平時代를 맞아 당시 많은 지식인들과 함께 交遊하며 詩文,書, 畵등의 藝術活動을 적극 支援, 主導하고 조선초기 문화예술의 勃興에 至大한 역할을 하였던 안평대군이 世祖의 癸酉靖難에 의하여 才氣潑剌한 많은 集賢殿 學士들과 함께 일제히 犧牲됨으로서 그들의 서예발전이 갑자기 斷絶되었고, 특히 그가 널리 조선과 중국에서 蒐集하였던 古今 書畵 大家들의 貴重한 所藏品들이 그의 慘變과 함께 散逸(佚), 湮滅되었음은 우리나라의 書藝史에 있어서 지극히 不幸한 일이었다. 끝
※ 참고문헌
- 澗松문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81
金 能根 中國哲學史 탐구당 1975
金 膺顯編著 東方書藝講座 동방연서회 1995
金 亨錫 西洋哲學史 100장면 가람기획 1994
安 輝濬 安堅과 夢遊桃園圖 예경산업사 1987
이 재석옮김 日本史 청어람미디어 2002
- 이야기日本史 청솔출판사 2000
李 春植 中國史序說 교보문고 1992
정 태수외 공저 韓中日三國書藝史 세계서예전북비엔나리 조직위 2003
曺 佐鎬 世界文化史 박영사 1992
- 中國書道史 雲林筆房 1985
- 哲學槪論 연세대출판부 1983
韓 劤 韓國通史 을유문화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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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7.08.12
  • 저작시기2007.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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