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의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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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민족의 형성과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1.민족이란 무엇인가
2.우리 민족의 종족 계통
(1) 이동설 vs 본토기원설
(2) 예맥족과 한족

Ⅱ.본론
1. 한․濊․貊 3부족의 결합에 의한 고조선 국가의 형성
(1)고조선에 대한 기록
(2)고조선을 건국한 민족
(3)단군설화로 보는 고조선 건국
2.侯國에 대한 이해
3.한국민족의 원민족(原民族)과 전근대민족(前近代民族)의 형성
(1) 한국민족의 원민족(原民族)
(2) 고조선 원민족(原民族) 형성의 기본적 요소
(3) 고조선 원민족(原民族) 형성의 범위
(4) 고조선 문명권의 해체
(5) 전근대민족(前近代民族)의 형성

Ⅲ.결론

본문내용

시키고 고조선 영역 1천리를 빼앗아간 사건이다. 2단계는 진시황의 중국통일 군사 활동으로 진의 공격을 받고 항쟁한 시기로 진시황은 B.C.221년에 중국내부를 통일한 후, 山東 반도 일대까지 내려가 거주하고 있는 고조선과 후국들을 북으로 내쫓고, 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쌓았던 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제3단계는 한무제의 중국통일 군사 활동으로 강대한 무력침략을 당한 것이다. 이 무렵 조선에는 위만조선이 열렸지만, B.C.108년 왕검성이 함락되며 마지막 왕조인 위만조선도 멸망하게 된다.
고조선의 멸망에 의해 뿌리가 뽑힌 고조선 문명권 내의 고조선과 그 후국 원민족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 민족대이동 과정에서 고조선 원민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리와 통합이 전개되는데, 이 중에서 고조선 원민족을 계승한 한국 전근대민족이 형성되었다.
(5) 전근대민족(前近代民族)의 형성
후조선의 준왕은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왕족과 신하들을 이끌고 그의 후국이었던 辰나라로 내려와 목지국이 있던 자리에 자기의 본래의 부족 호칭인 한을 내세워 ‘馬韓’을 세우고, 본래의 辰 세력들은 동쪽으로 밀려가서 ‘辰韓’이 되었다. 그리고 낙동강 유역에는 小辰韓으로서 ‘弁韓’이 수립되었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고조선의 후국이었던 부여에서 고주몽 세력이, 역시 고조선의 후국이었던 구려로 들어가 B.C.37년에 고구려를 세우고 급속히 강대한 실력을 기르며 고조선 영역을 회복하고, 부여까지도 통합하여 대제국으로 발전, 고조선 영역에 있던 모든 민족들을 지배하였다.
진한에서는 B.C.57년경에 박혁거세가 시조가 되어 사로가 건국되어 후조선 왕족계의 왕이었다고 해석되고, 마한에서는 온조세력이 B.C.18년경에 주변 소국들을 통합해서 백제를 건국하였다. 변한에서는 6개의 가라 연맹국을 수립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은 강성한 큰 나라들이었고, 각각 자기의 주도하에 통일을 이룩하려고 하였다. 결국 신라의 의하여 고조선 원민족의 중심 갈래인 고구려백제신라는 하나로 통일되어 한국민족의 前近代民族을 형성하게 되었지만, 신라통일은 한국 전근대민족 형성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남기게 되었다.
첫째, 한국 전근대민족의 영토가 대동강 이남과 원산만 이남으로 축소되고, 만주와 요동요서의 방대한 지역이 한국 전근대 민족의 지역의 공동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그 후 역대 인물들이 모두 고조선과 부여고구려의 본래 땅을 회복하려는 꿈을 갖게 된 것이다.
둘째, 고구려의 유민을 다 포함하지 못하였다. 물론 고구려의 유민의 일부는 압록강 이북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대조영 세력이 중심이 되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발해 멸망 때 왕족과 귀족을 제외한 발해의 백성들은 다수가 만주 연해주 지역에 남게 되어 한국민족의 형성에 결국 다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셋째, 고구려 영토에 남아있던 말갈, 여진 등 후에 만주족이 된 부족들을 한국민족 형성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만주족으로 분립케 작용하였다. 말갈족이 고구려 유민의 지배를 받으면서까지 당으로부터 독립하여 발해의 신민이 된 것은 만일 만주를 영토로 잃지 않았으면 이들이 결국 한국 전근대민족에 동화 융화되었을 것임을 시사해 준다. 만주족은 그 후 金
淸 등의 대제국을 수립하였으나 이 만주족들은 수천 년을 고조선의 후국 민족으로 내려오면서 고조선어를 共通祖語로 한 언어까지 갖게 되었으므로 모두가 스스로 단군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했으며, 한국민족(조선민족, 고려민족)과는 형제관계의 민족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기록하였다.
어쨌든 한국민족의 전근대민족의 형성은 A.D.669년경 통일신라에 의해 이룩되어, A.D.918년경 고려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민족의 언어의 공동성은 이미 고조선 원민족 시대인 B.C.30세기경부터 시작되어 고조선 해체 이전에 완전히 확립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여어한어고구려어백제어신라어가야어는 고조선어를 조어와 근간으로 한 방언에 불과했으며, 서로 통역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전근대민족은 古朝鮮祖語에서 분화 발전한 고구려백제신라어가 융합 형성된 중세 한국어를 ‘언어의 공동’으로 하고, 압록강 이남의 한반도의 ‘지역의 공동’으로, 고조선 원민족을 직접 계승한 부여진국마한진한변한옥저동예고구려백제신라가라탐라발해의 일부 등을 융합한 혈통을 ‘혈연의 공동’으로, 고조선과 단군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보는 생각을 ‘의식의 공동’으로, 고조선시대부터 통일신라고려시대까지 전승 발전된 독특한 의식주규범 등의 생활양식을 ‘문화의 공동’으로 하여 한국민족의 전근대 민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Ⅲ.결론
한국 민족의 형성과정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조사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단순히 우리의 시조는 단군왕검이고, 그 분이 고조선을 세웠으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여기까지 왔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은 단지 동일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고, 그것이 우리 삶에 있어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고구려사가 위기를 맞이하고, 고조선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될 위험한 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서 매우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앞서 말했듯 역사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조사하고 지면에 옮긴 위의 내용들도 사실일지 거짓일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조금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느 누가 우리 역사를 자국의 역사라며 압박했을 때, 우리 역사라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그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되 우리 것이 되지 않게 된다. 고조선에 대한 사료들을 우리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중국을 보면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급적 정확한 자료와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역사라는 그것에 관심을 갖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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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12
  • 저작시기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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