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2 장 < 이 익, 1860~1904년 >
- 은자의 왕국
- 무산된 개방과 그 대안
- 중흥, 개혁, 혁명
- 동학운동 : 다른 이름의 개혁
- 근대 한국의 탄생
- “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서양인이 받은 한국의 인상
- 결론
- 저자의 한국 현대사 해석에 대한 개인적 의견
- 은자의 왕국
- 무산된 개방과 그 대안
- 중흥, 개혁, 혁명
- 동학운동 : 다른 이름의 개혁
- 근대 한국의 탄생
- “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서양인이 받은 한국의 인상
- 결론
- 저자의 한국 현대사 해석에 대한 개인적 의견
본문내용
미국의 활동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이 이렇게 들려왔다. 그 당시의 미국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선교로 포장된 유럽국가와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결국 한국이라는 메뉴판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먹기 위해 혈안 되어있는, 무전취식하는 손님 같았다. 한국 땅에서 자신의 이익은 많이 취했지만 결국 다른 열강으로부터 지켜주기를 원하였던 한국 정부의 바람을 완전 무시했다. 이렇게 들려왔다.
저자는 고종이 개혁정책을 펼치려 할 때, 유학적 신념을 가지고 이를 반대하였던 학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 유학자들에게 양심적 학자, 원칙과 덕성, 강인함,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극찬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매우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반대한다. 맞다. 그들은 그 당시에는 가장 유력했던 유학적 마인드를 끝까지 고수 하려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 까지 말이다. 그 부분은 나도 찬성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유학적 마인드를 품었다면 고종의 개혁적 정책들에도 충성하지 않았을까?
내 말은 그들이 앞뒤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임금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최고의 덕목으로(때로는 목적으로)삼고 평생을 공부한 이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새 정책가운데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고종의 정책을 반대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충성은 빗나간 부분이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임금에게 충성하겠다고 배우고 마음 먹었다면, 그가 펼치려는 정책에도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매우 비논리적이고 백성들에게 해가 된다면 그러하겠지만, 그 때 당시의 고종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었다. 국가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방법에 가까웠는데 유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신념에만 목숨을 걸었지 국가의 존폐에는 목숨을 걸지 않은듯 하다. 아무튼 안타깝다.
181p부터 나오는 서양인들이 바라보았던 19세기의 한국의 모습에 대한 글들은 참 좋은 자료가 되었다. 나라의 모습을 더럽고 가난하게 그려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기에 더욱 좋은 자료가 되었다. 특히 이자레라 버드 비숏이라는 여자 모험가의 글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 바로 이런 고색창연한 상태, 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 결코 쇄신되지 않는 구제불능의 오리엔탈립즘, 중국을 하나로 묶는데 기여한 민족적 강건함도 없는 중국의 서투른 모방 속으로 서양의 효모가 떨어져 발효작용을 시작했다. 거칠게 뒤흔들려 수세기에 걸친 잠에서 깨어난 이 허약하기 그지없는 독립왕국은 반쯤 겁에 질리고 완전히 어리둥절한 모양...-
중국의 서투른 모방, 서양의 효모, 정말 맞는 표현 같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고 이리 저리로 표류하던 19세기 말의 한국. 결국 우리는 제 3자의 시각에서는 결코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혼자서 궤멸한 것도 아니었다. 내부와 외부의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악의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 이 상태에서 이익은 일본&미국이 독점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이 이렇게 들려왔다. 그 당시의 미국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선교로 포장된 유럽국가와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결국 한국이라는 메뉴판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먹기 위해 혈안 되어있는, 무전취식하는 손님 같았다. 한국 땅에서 자신의 이익은 많이 취했지만 결국 다른 열강으로부터 지켜주기를 원하였던 한국 정부의 바람을 완전 무시했다. 이렇게 들려왔다.
저자는 고종이 개혁정책을 펼치려 할 때, 유학적 신념을 가지고 이를 반대하였던 학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 유학자들에게 양심적 학자, 원칙과 덕성, 강인함,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극찬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매우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반대한다. 맞다. 그들은 그 당시에는 가장 유력했던 유학적 마인드를 끝까지 고수 하려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 까지 말이다. 그 부분은 나도 찬성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유학적 마인드를 품었다면 고종의 개혁적 정책들에도 충성하지 않았을까?
내 말은 그들이 앞뒤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임금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최고의 덕목으로(때로는 목적으로)삼고 평생을 공부한 이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새 정책가운데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고종의 정책을 반대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충성은 빗나간 부분이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임금에게 충성하겠다고 배우고 마음 먹었다면, 그가 펼치려는 정책에도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매우 비논리적이고 백성들에게 해가 된다면 그러하겠지만, 그 때 당시의 고종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었다. 국가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방법에 가까웠는데 유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신념에만 목숨을 걸었지 국가의 존폐에는 목숨을 걸지 않은듯 하다. 아무튼 안타깝다.
181p부터 나오는 서양인들이 바라보았던 19세기의 한국의 모습에 대한 글들은 참 좋은 자료가 되었다. 나라의 모습을 더럽고 가난하게 그려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기에 더욱 좋은 자료가 되었다. 특히 이자레라 버드 비숏이라는 여자 모험가의 글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 바로 이런 고색창연한 상태, 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 결코 쇄신되지 않는 구제불능의 오리엔탈립즘, 중국을 하나로 묶는데 기여한 민족적 강건함도 없는 중국의 서투른 모방 속으로 서양의 효모가 떨어져 발효작용을 시작했다. 거칠게 뒤흔들려 수세기에 걸친 잠에서 깨어난 이 허약하기 그지없는 독립왕국은 반쯤 겁에 질리고 완전히 어리둥절한 모양...-
중국의 서투른 모방, 서양의 효모, 정말 맞는 표현 같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고 이리 저리로 표류하던 19세기 말의 한국. 결국 우리는 제 3자의 시각에서는 결코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혼자서 궤멸한 것도 아니었다. 내부와 외부의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악의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 이 상태에서 이익은 일본&미국이 독점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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