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예수(레오나드스위트)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거의 미)는 온전함, 조화, 광채라는 3개의 특질로 측정될 수 있다:
1. 온전함이란 순전한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당신은 ‘세상과 더불어’있는가? 당신의 존재는 삶의 증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온전함이란 의도적 관심이다.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고난받는 자에게 관심을 베푸는 능력은 극히 드물고 어렵다. 그것은 기적에 가깝다. 아니 기적이다”고 믿었다.
2. 조화란 사물간의 관계에 대한 존중과 공명을 뜻한다. 만인이 서로 이어진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우리는 저 멀리 휩쓸려 가 버린다. 함께함의 조화는 영적 현실을 인종간 화해나 사회 정의 같은 물리적 현실과 구분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의 죄는? 그는 자기 형제가 다섯인 줄 안다. 그러나 실은 여섯이다. 집 없고 가난한 거지가 그의 여섯 번째 형제다. 사실 마지막 날 예수님이 친히 이렇게 물으실 때 우리가 판단 받을 기준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느냐?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느냐?”
3. 광채 속의 함께함이란 우리 지식과 커뮤니케이션의 명료성이다. 위로 우러르고(온전함) 곁으로 다가감(조화)과 아울러 우리는 큰 소리로 거리낌 없이 말해야 한다(광채). 광채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4. ‘바보의 극치’ : 모두와
우리에게 무지개는 희망의 상징이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장치나 심지어 평화의 상징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상징이다. 무지개가 하늘에 놓은 것은 하나님이 인류와 창조 세계에게 맺으신 언약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인류와 맺으신 언약을 하나님께 일깨운다.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에 염증이 나심에도 불구하고 창조 세계를 저주하여 말살하지 않으시곤 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운명의 잔인한 장난에 망하는 인생들을 본 전도서 기자는 부서진 무지개에 대한 고급반 강좌를 이렇게 들려준다.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자기 잘못이 전혀 없어도 삶이 난파당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욥은 부서진 무지개를 통해 하나뿐이 구명보트를 잡아당기고 있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심지어 예수님도 부서진 무지개를 아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은 부서진 무지개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모든 상황에 ‘자족하는’ 비결, 모든 부서진 무지개를 견디는 비결의 자원은 무엇인가? 바울의 비결은 이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비결은 두 글자 단어 모든/모두다. 극히 단순하면서도 극히 복합적이고 극히 신비로운 비결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당신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 삶 속에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일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모두라는 두 글자 단어야말로 부서진 무지개를 넘는 비결이다.
주의 [모든] 은혜로
[모두]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모든’은 맹인용 흰 지팡이의 붉은 끝이다. 그것을 톡톡 치며 우리는 어둠 속으로 계속 나아간다. 부서진 무지개에 연신 걸려 넘어지면서도 우리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모두 때문이다. 붉은 끝 모든은 성경 어디에나 있다. 모든의 약속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모든의 약속은 전부 다음 한 구절에 강력 접착제처럼 달라붙는다. 즉 그리스도는 당신의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는가?“ 하나님이 ’만유 안에 만유‘로 계시다는 바울의 말은 그분이 이미 ’만유‘이심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을 ’만유 안에‘ 모시는 것이 우리 사역이다. 그럴 때 ’만물이 그분께 복종하며‘ 그분이 ’만유 안에 만유‘로 계시게 된다. “하나님이 만유 안에 만유로 계시옵소서”가 당신의 기도인가?
모두는 하나님이 뜻밖의 이상한 장소에 나타나기를 좋아하심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하나님은 우리 삶과 세상 속에서 우리 이해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습성이 있다. 모든은 하나님의 손에 그 습성을 일깨워 준다. 야곱이 꿈에 본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나님 말씀하신 것처럼-“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우리도 잠깨어 야곱같이 말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자유란 능력의 한계의 부재가 아니다. 참된 자유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무한한 모두를 잇는 것이다. 한계를 안고 있기에 우리는 모든 한계 위에 뛰어난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 두 번 등장한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다. 예수님의 고별 계명은 무엇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랑, 당신을 미치게 하는 사랑이다. 세상 제일의 사랑의 대가 예수님은 터무니없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미치게 하셨다. 그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무분별한 사랑으로 악평이 자자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더욱 격노케 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라고, 그들 또한 세상 제일의 사랑의 대가들이 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에 미치신 분이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분이 정신적으로 미쳤다는 구실로 그분의 공생애를 종식시키려 했었다. 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 그의 복음이 ‘미쳤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두 글자 단어 ‘모든’의 위력, 사랑에 미친 그 위력으로 정상(正常)세계에 테러를 가하시는 분이다. 나를 미쳤다고 해도 좋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믿을 만큼 미쳤다.
당신은 미칠 만큼 지혜로운가?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7.09.15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820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