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라이벌 - 묘청 vs 김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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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물의 생애

2.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

3.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과 김부식의 진압에 대한 견해

4. 묘청과 김부식을 각각 옹호하는 주장

5. 신채호의 견해

6.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본문내용

大戰)이며,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자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싸움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 등이 이겼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보수적속박적 -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향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싸움을 어찌 一千年來 一大 事件이라 하지 아니할까.
丹齋 申采浩(신채호) 선생이 고려시대 妙淸(묘청)의 서경천도가 좌절되면서 이후로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대주의(事大主義)가 득세하여 민족정신이 고갈되었다고 보고 이 사건이 일천년(一千年)을 좌우할 정도였다고 논한 것이다. 잠시 단재 선생의 글을 인용하면,
"국가의 역사는 민족 소장성쇠의 상태를 가려서 기록한 것이라.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민족의 성쇠는 매양 그 사상의 추향 여하에 달린 것이며, 사상 추향의 혹좌혹우(或左或右)는 매양 모종 사건의 영향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 조선 근세에 종교나 학술이나 정치나 풍속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됨이 무슨 사건에 원흉함인가....(이하 중략)....나는 일언으로 답하여 가로되, 고려 인종(仁宗) 13년(서기 1135년) 서경전역 즉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함이 그 원인이라 한다."
한 개인의 어떤 특별한 사건이 평생을 좌우하듯이, 한 국가의 일개사건이 천년의 역사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한 해의 국사(國事)는 단지 한 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6.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이, 모든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더딘 변화가 정치적 변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 양상을 보면서 그말을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현대 정치판에서도 이런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권력을 더 오래 지니기 위해 떠나야할 때를 모르는 수많은 정치인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비리를 일으키는 더러운 정치인들, 소위 강대국이라는 미국에 굽신거리며 금나라가 아닌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진 현 집권자들, 그 집권자들을 비판하면 새로운 국가를 열겠다는 개혁자들, 그리고 그 개혁자들 틈에 끼여 어떻게든 권력의 자리에 앉고자하는 소인배들, 권력을 위해여기저기 당을 옮겨 다니는 간신배들, 그리고.. 진정 백성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참된 목민관들까지.. 21세기를 살고있는 우리에게서 몇 백년전의 잘못된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기에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고 더 공부해야하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않은 지금.. 우리에게는 바른 정치인을 볼 줄 아는 능력과, 그 정치인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지 항상 감시하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 지나친 미국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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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1.23
  • 저작시기200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8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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