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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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파라과이의 문화
2. 파라과이의 역사
1) 과라니족 역사
2) 신대륙발견과 정복의 역사 - 파라과이의 발견
3) 스페인 식민지 시대
4) 독립
5) 3국 전쟁
6) CHACO 전쟁
3. 파라과이의 경제
4. 파라과이의 자연
5. 파라과이의 정치
6. 파라과이의 주민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과라니족은 1.5%, 백인은 2% 정도입니다. 일부 원주민들은 아직도 차코 지방에서 활과 화살을 사용하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와 토착 과라니어이며 수도 아순시온 이외의 농촌에서는 과라니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민의 대부분(90%)가 로마가톨릭을 신봉합니다.
2004년 기준으로 UNDP의 인간개발지수(HDI)는 0.757로 조사대상국 177개국 중 91위를 차지하였으며,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수리남과 함께 중진국 순위를 나타내었습니다.
Ⅲ. 결론
파라과이는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과 흡사한 면이 많습니다.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하였다는것과 장기간 지배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을 이겨내기위한 쇠국정책 등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으로 인하여 파라과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독립을 성취한 파라과이 Jose Gaspar Rodriguez de Francia는 독재자로 뽑히고 난후 Rio de la Plata주변국들에게서 자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경을 닫고 자급자족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남미에서 처음으로 문맹률을 퇴치하고 농업에 힘을 쏟아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나라를 탈바꿈 하였고 그가 죽고나서 그의 조카인 Carlos Antonio Lopez이 국가를 통치하였는데 이때 파라과이 경제가 최고조에 달하였습니다. 그는 남미 최초로 영국에서 열차를 수입하였고 한때 철강,무기 등 오로지 국내에서 만들고 수출도 하여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위 말하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성장은 그가 죽을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3국동맹 Triple Alianza라는 전쟁이 반발하였습니다.
즉 브라질,아르헨티 그리고 우루과이가 파라과이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여 말 그대로 파라과이는 초토화 되었습니다. 전쟁직전 파라과이 인구가 1.300.000명을 넘었지만 전쟁직후 겨우 200.000만명만 살아남았고 그 인구중 10%만 남자였습니다. (대다수가 어린이와 노인들뿐) 또 국토 면적도 대략 한국의 2배정도 잃었습니다.
3국동맹 전쟁중 최악이었던 해는 1869년 1월 1일로 "Saqueo de Asuncion" "아순시온 약탈"로 유명합니다. 당시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은 오로지 집 잃은 고양이와 개들만 널려있었다고 당시 한 역사가가 전했습니다.
브라질의 대장 Caxias가 그의 군인 3만명을 소집하여 도시의 거의 모든 집들을 불에 태웠고 아르헨티나 항구에서는 수십척의 배들이 아순시온에 있던 과일부터 시작해 금,은,철,교회물건 그리고 심지어 대통령궁에 있던 모든 가구를 비롯해 상상할수 없는 규모의 보석등을 가져갔습니다. 또 영화 "미션"에서도 나왔던 선교사들의 남긴 기록들 대략 5만여건의 책,자료등을 훔쳤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였던 1869년 8월 15일 Acosta Nu에 진격해온 브라질 군대를 상대로 거의 성인 남자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8살에서 15살 정도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총기도 없이 도끼,집에서 쓰는 칼,몽둥이 등으로 브라질 군대를 상대로 맞서 싸웠지만 순식간에 대량으로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날을 기념하여 8월 15일은 어린이날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Amambay산맥에서 치뤄진 마지막 전투.
끝까지 살아남았던 200명의 군인들과 Lopez군최고사령관은 치열하게 전투를 하던중 가슴에 총상을 입었고 브라질군은 전쟁을 포기하라고 명령하였지만 Lopez는 끝까지 칼을 휘두르고 Muero por mi patria (내 조국을 위하여 죽겠다)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상대방이 다시 총을 쏴 사망케하였습니다.
파라과이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자국의 문화은 쇠퇴하였고 타국의 문화의 유입으로 그 영향이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파라과이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습니다.
전국민이 힘을 모아 파라과이의 발전에 힘쓰고 있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보여졌던 모습과 흡사 하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이번 레포트에서 파라과이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슷한 파라과이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패해서 무너졌지만 다시금 일어나려는 그들의 열정과 문화는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검색 : 파라과이
도움주신 분 : 알데레테 아비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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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8.01.24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8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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