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고전읽기 - 세종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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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 조선은 자주 독립국이다.
2. 나무보다는 숲을 보라.

결론

본문내용

온 무역 상인들의 행패는 매우 난폭하였다.
인내심 많은 세종으로서도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본조에서 일찍이 사신의 과실을 <황제께> 주달한 적은 없었으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주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제 창성 등이 한 말을 낱낱이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실록. 세종 12/08/06
중국의 이러한 횡포가 쌓여감에 따라 세종은 자국의 비 생산물 및 사신들에 대한 별도의 물품 증여 문제 등에 대하여 중국 본부와의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세종 11년에는 그 품목을 토산물로 국한할 것과 중국 사신들에 대해서는 예의로만 대할 뿐 별도의 물품을 증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내용의 칙서를 받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런데도 중국의 사신들은 과거와 같은 습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자 세종은 그 칙서의 내용을 재확인시키기도 하였다. 조남옥. 앞의 책. p.117.
세종의 명에 대한 이러한 사대는 조선에 대한 중국의 신뢰와 존경을 얻어냈으며 여진족과의 영토분쟁에서 평화적인 조율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이익을 위해 세종은 그 동안의 굴욕을 참아냈던 것이다.
결국 세종의 지나치리만큼 정성을 다했던 사대는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함이었다. 당시의 최강대국이라 할 수 있던 중국에게 정성을 다 함으로써 그들에게 신임을 얻은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세종의 외교적인 자세를 보았다. 세종은 국익을 위해서 굴욕을 참아내는 실리주의적 태도를 지녔으며 또한 여진, 일본과의 관계에서, 화기 개발 등에서 자주 독립국임을 나타내었다.
세종은 중국과 큰 외교적 갈등을 빚지 않았으며 그들의 신임을 얻어 내기까지 하였다. 또한 파저강 정벌에 이어 4군 6진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하였다.
21세기는 ‘세계화’라는 말없이는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관계되어 있다.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외교는 그 나라의 능력이라 할 만큼 중요해졌다. 위에서 이야기한 세종의 대표적인 두 가지 자세는 현재에 적용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적절한 실리를 위해 굽힐 줄 알면서도 나라의 자주성을 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정벌까지도 감행하는 세종의 외교정책은 실리와 자주성이라는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참고문헌
-김영수 세종실록의 세계.
-전경일. 세종의 코드를 읽어라. 한국경제신문BP. 2003.
-조남욱. 세종대왕의 정치철학. 부산대학교출판부. 2002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2.12
  • 저작시기2008.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0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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