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의 역사적 배경(상).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끼예프-루시 시대 ---

---- 모스크바 공국 시대 ----

본문내용

행위를 일삼으로서 러시아는 폴란드와 스웨덴의 간섭하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에 모스크바에서는 짜리의 조카로서 재능있는 장군이였던 미하일 스꼬삔 슈이스끼가 총사령관이 되어 1610년 초 뚜쉬노의 진영을 쳐부수었다. 모스크바의 귀족들은 미하일 스꼬삔 슈이스끼 장군을 짜리의 자리에 앉히고자 하였으나 이 스물살난 젊은 승리자는 곧 짜리 바실리 슈이스끼의 지시에 의하여 독살된다. 한편, 폴란드군은 1610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수도 모스크바로 진격해 들어갔으며, 이에 모스크바 대귀족들은 짜리 바실리 슈이스끼를 제위에서 몰아내고 강제로 삭발시켜 수도승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미 폴란드 편으로 가담한 7명의 대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15세의 폴란드 왕자 블라지슬라프( )를 짜리로 선포하기에 이르른다. 폴란드인들은 수도 안으로 들어와 끄레믈리 근처의 끼따이 고로드( - : '중국도시'라는 뜻으로 16-18세기 사이에 모스끄바 끄레믈리에 인접한 상업 중심지)라고 불리는 모스크바의 요새지대를 점령해 버렸다. 거의 전 모스크바가 불타 버렸으며 도시의 대다수 주민들이 죽어 갔고 폴란드 왕 지그문트 3세는 군대를 이끌고 스몰렌스크 근교에 오랫동안 진을 쳤다. 폴란드 부대들은 나라 안을 온통 누비고 다녔으며, 동시에 스웨덴군도 노브고로드와 여러 인근 도시들을 점령하였다. 침략자들은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으며 이제 러시아의 파멸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침략자들과의 싸움에 국민 모두가 들고 일어났다. 해방운동의 중심지는 볼가강 연안의 니쥐니 노브고로드( : 볼가강 상류의 도시로 뻬레스뜨로이까 이전까지는 한 때 '고리끼'로 불리우다 현재는 다시 옛 이름으로 복귀되어 불리고 있다.) 였다. 1611년 니쥐니 노브고로드의 상공인들의 우두머리 꼬지마 미닌( )은 조국의 수호를 위한 국민군의 창설을 제안하였고 국민군 사령관으로 드미뜨리 뽀좌르스끼( ) 공작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국민군과 폴란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1612년 10월 끼따이 고로드가 점령당하자 침략자들은 끄레믈리의 성문을 열고 항복하고 말았다. 모스크바를 해방시켰지만 폴란드와 스웨덴 침략자들과의 싸움은 몇 년 더 계속되었다.
폴란드 점령군이 항복하고 모스크바가 해방되자 1613년 젬스키 사보르가 소집되었으며 여기서 로마노프 가문의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로운 짜리로 선출됨으로서 마침내 러시아는 로마노프 왕조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된다.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6.06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807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