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1.1 죽음은 과연 싫은것인가?
1.2 죽음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1.3 죽은 후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가?
1.4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가?
1.5 ‘나’의 죽음은 준비되었는가?
2. 각 종교의 생사관
2.1 기독교의 생사관
1) 죽음과 종교
2) 기독교의 출현
3) 죽음의 기원
4) 원죄
5) 구원과 부활
2.2 불교의 생사관
1) 불교의 발생과 성격
2) 세계관(가상의 세계)
3) 불교의 생사관(제법무아, 일체개고, 팔고 등)
2.3 도가의 생사관
1) 도가와 도교
2) 노자의 생사관
3) 사상 및 생사관
4) 장자의 생사관(죽음으로부터의 자유)
3. 결론
3.1 죽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생리적 노력
2) 심리적 노력(정신수양, 종교생활 등)
1.1 죽음은 과연 싫은것인가?
1.2 죽음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1.3 죽은 후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가?
1.4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가?
1.5 ‘나’의 죽음은 준비되었는가?
2. 각 종교의 생사관
2.1 기독교의 생사관
1) 죽음과 종교
2) 기독교의 출현
3) 죽음의 기원
4) 원죄
5) 구원과 부활
2.2 불교의 생사관
1) 불교의 발생과 성격
2) 세계관(가상의 세계)
3) 불교의 생사관(제법무아, 일체개고, 팔고 등)
2.3 도가의 생사관
1) 도가와 도교
2) 노자의 생사관
3) 사상 및 생사관
4) 장자의 생사관(죽음으로부터의 자유)
3. 결론
3.1 죽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생리적 노력
2) 심리적 노력(정신수양, 종교생활 등)
본문내용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세례를 통해 죽고 신의 은총을 받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고 한다. 사도 바울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아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것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속에서 살리는 것처럼,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속에서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고린도전서 6장 4절)
※ ‘세례’는 일종의 ‘입문식’이다. 세속인의 몸과 마음을 버리고, 종교인의 삶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식이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거듭 난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전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나는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장 20절)
※ 부활의 의미 - 육신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부활로 해석해야 한다. 즉 새 생명과 영생 등은 육체적이 아닌 영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움으로 인해 살아난 것이니라.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이니 육신에게서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될 것이다.”(로마서 8장 10-13절)
※ 유교와의 비교
1. 동
1) 조상신 숭배 - 기독교의 모태 유대교 역시 조상신 숭배에서 출발: 유교 문화 - 조상을 위하는 일이면 물불 가리지 않음. 기독교 - 여호아 하나님 외에는 모두 이단으로 몰아부침.
2) 배타적 성향 - 내 조상만 받들고, 내 후손만 잘 되길 바람: ‘나 여호아 이외에는 섬기지 말라’ → 우상숭배
2. 이 - 현세지향주의/내세지향주의, 인간중심/신 중심
Ⅱ. 불교의 생사관
1. 불교의 발생과 성격
1) 발생 배경
인도의 전통 사회 - 브라만교가 지배: 철저한 계급사회(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보수적.
기원전 500년 제2계급 출신의 Gotama Siddharhta가 인도 북부 카필라 성(현재 네팔의 영토라고 함)에서 출생. 그는 기존의 보수적 세계에 맞서, 누구든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를 제창하였다. 기존의 계급적 종교 브라만교에 반기를 들고 평등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개혁적 종교 불교를 제창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족 종교 성향의 유대교에 반발하여 누구든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제창한 예수와 비슷하다. 싯타르타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 인생과 세계에 대한 깊은 상념에 잠기다가, 마침내 29세에 왕위와 가족을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6년간 고행과 명상을 하다가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2) 성격 - 자력종교
종교와 철학 양면을 지닌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부처)는 사실은 인간 자신을 가리킨다. 즉 누구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에서와 같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참다운 발견을 지향하고, 그리고 그 본성에 의한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깨달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여실지견)를 말한다. 나와 우주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우주적 인격의 형성을 통해, 나와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이 바로 ‘자비’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나’의 안경(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나와 맞으면 ‘선’으로 환영하고, 어긋나면 ‘악’으로 배척한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대상의 형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깨달은 자는 일체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때(성철 스님의 법어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이고 ‘해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2. 세계관
1) ‘환영’(가상의 세계)
현상 세계는 모두 인연소생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인연이 바뀌거나 다하면 곧 사라지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세계라는 의미에서 ‘그림자’ 내지는 ‘가상’으로 설명한다. 종종 ‘꿈’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조신의 꿈’ - 신라시대 한 스님이 고을의 태수를 사모하였다.
영화 <메트릭스>에도 불교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주인공 네오가 처음 살고 있던 세계는 단지 프로그램화된 가상의 세계였다. 도시, 회사, 주변 인물 등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존재들이었다. 그러다가 네오는 모피어스에 의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세계가 사실은 ‘가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트릭스는 도처에 있지.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있지. 매트릭스는 진실을 볼 수 없도록 우리의 눈을 가려온 세계란 말이네.”
2) 윤회설 - 시간을 순환적으로 이해. 세상은 생겨나고 전개되고 쇠퇴하며 파괴된다. 그리고 또 다른 생성소멸이 반복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체는 다양한 육신을 거쳐 가면서, 즉 동물 인간 신 등의 육신에 거주하면서 끊임없이 순환적인 삶을 산다. 다음 생애에 어떤 ‘존재’로 사느냐는 현재의 삶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삶의 순환을 ‘윤회’(삼사라)라 부른다. 이런 순환적 세계관 속에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미추, 선불선, 시비, 등이 모두 사라진다.)
3. 생사관
1) 일체개고
불교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랑에 빠지거나 오랫동안 추구하던 바를 이룬 행복한 순간들에 조차 종종 깊은 불안을 느낀다. 그 행복한 순간이 어느 한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그 수많은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은 ‘고’로 채워지고 ‘락’의 순간은 지극히 짧다 → 한 사내가 들판에서 사자에게
※ ‘세례’는 일종의 ‘입문식’이다. 세속인의 몸과 마음을 버리고, 종교인의 삶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식이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거듭 난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전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나는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장 20절)
※ 부활의 의미 - 육신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부활로 해석해야 한다. 즉 새 생명과 영생 등은 육체적이 아닌 영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움으로 인해 살아난 것이니라.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이니 육신에게서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될 것이다.”(로마서 8장 10-13절)
※ 유교와의 비교
1. 동
1) 조상신 숭배 - 기독교의 모태 유대교 역시 조상신 숭배에서 출발: 유교 문화 - 조상을 위하는 일이면 물불 가리지 않음. 기독교 - 여호아 하나님 외에는 모두 이단으로 몰아부침.
2) 배타적 성향 - 내 조상만 받들고, 내 후손만 잘 되길 바람: ‘나 여호아 이외에는 섬기지 말라’ → 우상숭배
2. 이 - 현세지향주의/내세지향주의, 인간중심/신 중심
Ⅱ. 불교의 생사관
1. 불교의 발생과 성격
1) 발생 배경
인도의 전통 사회 - 브라만교가 지배: 철저한 계급사회(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보수적.
기원전 500년 제2계급 출신의 Gotama Siddharhta가 인도 북부 카필라 성(현재 네팔의 영토라고 함)에서 출생. 그는 기존의 보수적 세계에 맞서, 누구든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를 제창하였다. 기존의 계급적 종교 브라만교에 반기를 들고 평등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개혁적 종교 불교를 제창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족 종교 성향의 유대교에 반발하여 누구든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제창한 예수와 비슷하다. 싯타르타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 인생과 세계에 대한 깊은 상념에 잠기다가, 마침내 29세에 왕위와 가족을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6년간 고행과 명상을 하다가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2) 성격 - 자력종교
종교와 철학 양면을 지닌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부처)는 사실은 인간 자신을 가리킨다. 즉 누구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에서와 같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참다운 발견을 지향하고, 그리고 그 본성에 의한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깨달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여실지견)를 말한다. 나와 우주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우주적 인격의 형성을 통해, 나와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이 바로 ‘자비’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나’의 안경(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나와 맞으면 ‘선’으로 환영하고, 어긋나면 ‘악’으로 배척한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대상의 형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깨달은 자는 일체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때(성철 스님의 법어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이고 ‘해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2. 세계관
1) ‘환영’(가상의 세계)
현상 세계는 모두 인연소생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인연이 바뀌거나 다하면 곧 사라지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세계라는 의미에서 ‘그림자’ 내지는 ‘가상’으로 설명한다. 종종 ‘꿈’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조신의 꿈’ - 신라시대 한 스님이 고을의 태수를 사모하였다.
영화 <메트릭스>에도 불교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주인공 네오가 처음 살고 있던 세계는 단지 프로그램화된 가상의 세계였다. 도시, 회사, 주변 인물 등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존재들이었다. 그러다가 네오는 모피어스에 의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세계가 사실은 ‘가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트릭스는 도처에 있지.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있지. 매트릭스는 진실을 볼 수 없도록 우리의 눈을 가려온 세계란 말이네.”
2) 윤회설 - 시간을 순환적으로 이해. 세상은 생겨나고 전개되고 쇠퇴하며 파괴된다. 그리고 또 다른 생성소멸이 반복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체는 다양한 육신을 거쳐 가면서, 즉 동물 인간 신 등의 육신에 거주하면서 끊임없이 순환적인 삶을 산다. 다음 생애에 어떤 ‘존재’로 사느냐는 현재의 삶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삶의 순환을 ‘윤회’(삼사라)라 부른다. 이런 순환적 세계관 속에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미추, 선불선, 시비, 등이 모두 사라진다.)
3. 생사관
1) 일체개고
불교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랑에 빠지거나 오랫동안 추구하던 바를 이룬 행복한 순간들에 조차 종종 깊은 불안을 느낀다. 그 행복한 순간이 어느 한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그 수많은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은 ‘고’로 채워지고 ‘락’의 순간은 지극히 짧다 → 한 사내가 들판에서 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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