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사회계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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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장 자크 루소 소개

2. 서론

3. 본론 - 1부, 2부, 3부, 4부

4. 결론 - 사회계약론에 대한 견해

본문내용

임명된 독재자도 그저 의식을 위해서 임명되는 공허한 관직처럼 소홀히 생각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로마인이 훨씬 신중하게 되어, 좀처럼 독재자를 두지 않았다. 그것도 마치 초기에 독재자를 너무 많이 두었던 것과 같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불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당시 수도의 약한 점이 바로 수도 안에 살고 있는 행정관으로부터 올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해 주었다는 것, 독재자는 어떤 경우에는 공고의 자유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침해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로마를 속박하는 쇠사슬은 로마인 자체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군대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등은 모두 명백한 사실이었다.
요컨대 이런 중요한 위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간에, 항상 그 임기를 극히 짧은 기간으로 한정하고 결코 그것을 연장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재자를 임명해야 할 만큼 절박한 위기에 있는 국가는 단시일내에 붕괴하거나 구출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절박한 필요성이 사라지면 독재자는 폭군이 되든지 무용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독재자는 그를 임명하게 된 위급 사태에 대처할 시간밖에 갖지 않았다. 그들에겐 다른 계획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제 7장 감찰에 대하여
감찰제도는 여론의 부채를 방지하고 현명한 판단에 따라 여론을 올바르게 유지시키며, 여론이 아직 불안정할 때는 그것을 안정시키기도 함으로써 도덕을 유지시킨다. 결투할 때 입회인을 세우는 프랑스 왕국에서 극도로 성행했지만, 그것은 '결투에서 입회자를 부르는 비열한 행동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이라고 시작되는 매우 간단한 칙령에 따라 금지 당했다. 이 판단은 공중의 판단을 예상하여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여론을 안정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칙령이 결투를 하는 것까지도 비열한 행위라고 선언하려 하자, 실제로 결투는 비열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중의 여론에 반대되는 판단이었으므로 공중은 그것을 조소할 뿐이었다. 이 점에 관한 공중의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중의 여론은 그 어떠한 강제력에도 굴복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론을 대표하기 위하여 설치된 법정에서는 조금도 강제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없어져 버린 이 수단이 로마인 사이에서, 그리고 특히 스파르타인 사이에서 얼마나 교묘히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파르타의 평의회에서는, 어떤 부도덕한 사람이 훌륭한 의견을 발표하였다고 하더라도 감찰관이 그것을 무시하고 똑같은 의견을 덕망 있는 시민으로 하여금 제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두 사람 어느 쪽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거나 책망을 하지도 않으면서, 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명예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대단한 불명예를 준 처사였다. 또 사모스의 술주정꾼들이 어느 날 감찰관의 법정을 더럽힌 적이 있었다. 다음날 감찰관은 사모스인에 대해서는 천민의 행세를 허용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러한 처벌 아닌 처벌은 실제의 처벌보다 훨씬 더 엄한 느낌을 주었다. 스파르타가 옳고 그른 일에 대하여 판단을 내렸을 때, 그리스인들은 그 판단에 대하여 항의하려 들지는 않았다.
제 8 장 시민의 종교에 대하여
인간의 종교란, 사원도 없고 제단도 없으며 의식도 없이 오직 최고의 신에 대한 순수한 내적 숭배와 도덕에 대한 영원한 의무에 한정된 것으로서,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의 종교이며 참된 유신론이다. 이를 우리는 자연적 신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민의 종교란 어느 한 국가에만 한정된 것으로서, 그 국가에 고유한 신을 부여하고 그 신이 동시에 국가의 수호자 역할도 하는 종교이다. 이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의식을 갖고 있으며 법률에 따라 정해진 예배 형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신봉하는 국민 이외의 사람들은, 이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사교 신자이고 이방인이며 야만인인 것이다. 이 종교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그 제단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하는 것이다. 원시 민족의 종교는 모두 이와 같은 종교였다. 우리는 이것을 시민적 신법 또는 실정적 신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4. 결론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견해를 요약하자면, 프랑크 혁명은 인류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패한 군주와 신앙의 억압에 저항하여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지식인들은 지금까지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사상이나 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새로운 근대적 이념을 만들어 냈다. 루소의 사회 계약론은 그 대표적인 저작으로 프랑스 혁명의 정초가 되었다. 정치는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순간부터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조율하고 안정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담당한 개인아닌 계층에게 일정한 권력을 부여하였으며 구성원들은 그것에 복종 할 수밖에 없었던바 정치권력의 바람직한 형태와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들이 끝없이 제기 되었다. 군주제의 모순이 극에 달하고 기층 민중들이의 고통이 날로 심화되고 있던 18세기 프랑스를 무대로 출간된 루소의 사회 계약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민의를 부정하고 권력욕에 휩싸여 정치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는 치자는 더 이상 치자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없고, 반드시 백성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상은 당시 대단히 진보적이고 지배계급에게는 위협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이론적 계기가 되어 인류사의 가장 획기적인 전환의 장이 되었던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음을 상기해 볼 때, 민본을 기초로 한 정치 사사의 정당성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검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계약론」이 담고 있는 권력에 대한 이해는 민의를 존중하고 민의를 근거로 권력을 파악하며, 민의에 어긋나는 패도, 곧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맹자의 '정명론'과 일맥상통한다. [사회계약론] 역시 권력의 근거를 국민으로 파악하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정치 형태를 주장하였던 바,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또한 '민의 중심' ,곧 '민본(民本)'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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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8.15
  • 저작시기2008.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6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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