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배경설정
▣ 구조 분석
▣ 본장의 의의
▣주석
Ⅰ 아합의 욕망과 나봇의 충성(왕상 21:1-16)
1. 아합의 제안과 나봇의 거절(1-3)
2. 아합의 고민과 이세벨의 해결책(4-10)
3. 장로와 귀인들의 나봇 살해(11-14)
4. 아합의 포도원 탈취(15-16)
Ⅱ 여호와의 심판과 아합의 회개(17-29)
1.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함(17-19)
2. 아합에게 심판을 전하는 엘리야(20-24)
3. 아합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가(25-26)
4-5 아합의 회개와 지연된 심판(27-29)
▣ 참고 문헌
▣설교
▣ 구조 분석
▣ 본장의 의의
▣주석
Ⅰ 아합의 욕망과 나봇의 충성(왕상 21:1-16)
1. 아합의 제안과 나봇의 거절(1-3)
2. 아합의 고민과 이세벨의 해결책(4-10)
3. 장로와 귀인들의 나봇 살해(11-14)
4. 아합의 포도원 탈취(15-16)
Ⅱ 여호와의 심판과 아합의 회개(17-29)
1.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함(17-19)
2. 아합에게 심판을 전하는 엘리야(20-24)
3. 아합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가(25-26)
4-5 아합의 회개와 지연된 심판(27-29)
▣ 참고 문헌
▣설교
본문내용
원을 줄수도 있고 돈으로도 줄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나봇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즉시 거절하였습니다. 그의 거절 이유는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주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몇 번의 시도를 더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봇은 매우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매우 분하여 궁으로 돌아와 눕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무런 설명없이 나봇이 그저 아합의 요구에 거절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나봇의 거절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이며 나봇은 평민에 불과합니다. 왕의 제안을 거절하면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죽음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봇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세벨의 음모가 담긴 편지를 보낼 때나 장로와 귀인들이 와서 나봇을 부를 때도 얼마든지 포도원을 팔수 있는 시간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봇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봇을 죽음으로 내몬 포도원의 정체
무엇이 나봇을 이처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그 포도원이 무엇이 이기에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잠깐 나봇의 포도원이 가지는 그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이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가꾸워온 것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이 기업이 중요한 것은 구속사적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업을 통하여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억하고 모든 땅이 하나님이 것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애굽에서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각 지파들은 피를 흘리며 이방족속과 싸워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 땅은 여호와의 구원을 즐기고 기억함으로 복을 받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통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주기위한 가시적 보증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다가 가난하여 먹고 살 것이 없으며 그 기업을 팔아서 그 돈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 땅을 팔수도 살수도 없습니다. 희년이 돌아오면 그 땅을 본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이 되지 않고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려입니다. 만약 땅을 팔아서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 자기의 기업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종이 되어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종노릇 한 것을 해방시킨 목적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일정한 땅을 주어서 그곳을 가꾸고 다듬어서 풍성한 삶을 살아 가도록 하셨습니다.
더 큰 의미를 이 땅이 결국 천국의 기업을 상징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기업을 가진 자들이 갖는 의미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 기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의 삶을 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녀들에게 대물림함으로 대대로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관리를 잘못하여 팔리거나 황폐화 된다면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기업이 가지는 한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땅을 영원히 팔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마 어마한 땅을 소유하게 되면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땅을 골로루 갖게 되면 혼자서 엄청난 돈을 벌수 없고, 주인이 되지도 못합니다. 결국 이것은 비록 작은 땅이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천국의 소망을 갖으라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분량에 만족하는 사는 것은 내 욕망대로 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땅에서 절제하며 주신 분량에 만족하며 사는 훈련으로 받아 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나봇의 포도원이 가지는 의미는 큰 것입니다.
나봇의 위기
그러나 시대는 이러한 나봇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생각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조상들로부터 받은 기업의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작 자신의 나물밭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나봇을 찾아가 포도원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나봇의 입장에서는 아합의 제의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그는 주님의 구원의 기쁨을 택하고 죽음을 그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위협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면서 주위 장사꾼들로부터 위협을 자주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 폭리를 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장사꾼들이 찾아와서 왜 당신만 그렇게 하느냐고 따지면서 다시 가격을 올려 받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온갖 비방을 받아가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종종 주일날 학생들을 등교시켜 보충수업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심한 꾸지람을 듣고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어떻습니까? 너무 쉽게 이 세상의 조류와 야합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아무 생각없이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나봇과 같은 순수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 것을 끝까지 붙드는 삶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합과 같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주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몇 점의 점수를 더 얻기 위하여 예배를 빠지고, 몇 만원의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주일에 가게의 문을 여는 일어 없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아무런 설명없이 나봇이 그저 아합의 요구에 거절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나봇의 거절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이며 나봇은 평민에 불과합니다. 왕의 제안을 거절하면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죽음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봇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세벨의 음모가 담긴 편지를 보낼 때나 장로와 귀인들이 와서 나봇을 부를 때도 얼마든지 포도원을 팔수 있는 시간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봇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봇을 죽음으로 내몬 포도원의 정체
무엇이 나봇을 이처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그 포도원이 무엇이 이기에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잠깐 나봇의 포도원이 가지는 그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이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가꾸워온 것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이 기업이 중요한 것은 구속사적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업을 통하여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억하고 모든 땅이 하나님이 것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애굽에서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각 지파들은 피를 흘리며 이방족속과 싸워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 땅은 여호와의 구원을 즐기고 기억함으로 복을 받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통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주기위한 가시적 보증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다가 가난하여 먹고 살 것이 없으며 그 기업을 팔아서 그 돈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 땅을 팔수도 살수도 없습니다. 희년이 돌아오면 그 땅을 본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이 되지 않고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려입니다. 만약 땅을 팔아서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 자기의 기업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종이 되어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종노릇 한 것을 해방시킨 목적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일정한 땅을 주어서 그곳을 가꾸고 다듬어서 풍성한 삶을 살아 가도록 하셨습니다.
더 큰 의미를 이 땅이 결국 천국의 기업을 상징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기업을 가진 자들이 갖는 의미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 기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의 삶을 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녀들에게 대물림함으로 대대로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관리를 잘못하여 팔리거나 황폐화 된다면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기업이 가지는 한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땅을 영원히 팔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마 어마한 땅을 소유하게 되면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땅을 골로루 갖게 되면 혼자서 엄청난 돈을 벌수 없고, 주인이 되지도 못합니다. 결국 이것은 비록 작은 땅이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천국의 소망을 갖으라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분량에 만족하는 사는 것은 내 욕망대로 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땅에서 절제하며 주신 분량에 만족하며 사는 훈련으로 받아 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나봇의 포도원이 가지는 의미는 큰 것입니다.
나봇의 위기
그러나 시대는 이러한 나봇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생각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조상들로부터 받은 기업의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작 자신의 나물밭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나봇을 찾아가 포도원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나봇의 입장에서는 아합의 제의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그는 주님의 구원의 기쁨을 택하고 죽음을 그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위협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면서 주위 장사꾼들로부터 위협을 자주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 폭리를 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장사꾼들이 찾아와서 왜 당신만 그렇게 하느냐고 따지면서 다시 가격을 올려 받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온갖 비방을 받아가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종종 주일날 학생들을 등교시켜 보충수업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심한 꾸지람을 듣고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어떻습니까? 너무 쉽게 이 세상의 조류와 야합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아무 생각없이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나봇과 같은 순수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 것을 끝까지 붙드는 삶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합과 같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주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몇 점의 점수를 더 얻기 위하여 예배를 빠지고, 몇 만원의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주일에 가게의 문을 여는 일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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