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실리우스 사상의 공의회주의와 사상적, 정치적 함의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I. 서 언

Ⅱ. 주권자 입법자로서의 인민
1. 마르실리리우스
2. 마르실리리우스의 국가관
3. 인민의 성장
4. 마르실리리우스의 법률론
5. 공의회주의

Ⅲ. 마르실리우스의 사상에 대한 해석: 교황 수장제

Ⅳ. 교황과 황제 그리고 인민

Ⅴ. 보수주의와 전통

VI. 결론: 공의회주의의 사상적, 정치적 함의

본문내용

ae, 1562), p. 860.
바르톨로스처럼, 마르실리우스에게 제국의 필요성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르실리우스의 제국에 대한 준거는 크리스챤 제국이라기 보다는 교황과 사제에 대해 시민적 평화를 확보해 낼 수 있는 정치적 제국이었다. 즉 마르실리우스의 황제는 교황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고 도시국가에서 평화를 보장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었다. 마르실리우스가 거부했던 것은 보편국가로서의 황제가 아니라 교황의 보편적인 전능권 주장이었다. 사실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권리의 수준에서 마르실리우스의 최고의 통치체는 다원적인 통치체를 수렴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을 가리킨다. 그렇다해서 황제의 권위가 보다 작은 통치체인 도시국가의 억압을 낳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르실리우스의 황제에 대한 언급이 제국의 절대주의 이론으로 결과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르실리우스에게 있어 인민과 그의 제국이 진정한 보편성(univeristas)를 갖는다. 황제와 인민 혹은 제국과 도시국가는 이런 방법으로 조화를 찾았다.
Ⅴ. 보수주의와 전통
공의회주의자들이 시원적 권력이란 평신도를 포함한 그리스도교도 인민에게 있다는 견해를 강력히 거듭 주장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들이 평신도의 지위를 단순한 수동적 역할에서 적극적인 것에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평신도를 단순한 방관자의 역할로 격하한 점은 공의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이론을 구현함에 있어 극히 무심하였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에게 관련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 의해 동의되어야 한다’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대중들에게 일단 겁을 먹은 이들은 낡은 교황수장제적 구조에로 복귀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포기하였다. 평신도 대중에 대한 숨길 수 없는 두려움으로 인해 공의회주의자들은 ‘기존 질서’에 합류하였고 그들은 거세지는 대중적 힘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상향적 정부 이론은 기존 제도에 대한 진정한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기존 제도였던 정부는 실질적인 힘을 장악하고 있었다.
인민주권론 저지의 이유 : 인간의 무기력, 무감각 및 전통주의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제도들은 교회 제도이든 군주 제도이든 제도화된 정부조직이라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데올로기적으로 말하자면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이념의 유지자가 되었다. 시민과 신민의 대조적 개념은 사향적 정치의식과 하향적 정치의식 사이의 갈등을 집약해주는 것이다.
할 수 있으나 공의회는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마르실리우스가 믿는 이유이다.
VI. 결론: 공의회주의의 사상적, 정치적 함의
역사적으로 공의회주의 운동은 교황을 구심점으로 하는 교황 수장제에 대한 대응이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비뇽에서의 교황에 의한 권력 남용과 교회 개혁에 대한 폭넓은 바램에 대한 표현이었다.
) A. Black, "The Conciliar Movement," The Cambridge History of Medieval Political Thought c.350-c.1450 (Cambridge, 1988), p. 573.
그러한 교황권의 제어는 공의회를 통해 교황의 권한과 결정권을 분산시키는 결과로 귀결되는데 때로 이는 이 의미 이상의 것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였다. 예컨대, 블랙은 바젤 공의회의 실패가 공의회의 정치적 함의를 왕권에 대한 도전(위협)으로 제시한 교황의 성공에 기인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하므로써,
) Black, Monarchy and Community: The Conciliar Movement and the Fifteenth-Century Heritage (London: Burns & Oates, 1979), pp. 85-129.
공의회주의의 함의가 반드시 공의회와 교황간의 관계만에 국한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은 마르실리우스의 공의회주의가 시사하는 사상적,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짚어 보는 것으로 매듭을 짓고자 한다.
공의회주의가 그것의 단명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중세시대 입헌국가(constitutional state) 출현의 의미와 인민주권의 정치적 이론 형성에 미친 영향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Tierney, "Medieval Canon Law and Western Constitutionalism," Catholic Historical Review 52 (1966), p. 2: Gierke,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Theory, trans. B. Freyd (New York, 1939), pp. 147-8.
마르실리우스의 공의회주의 역시 인민주권 이론과 관련하여 그것의 사상적 기여가 주목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교황권에 대한 제한은 주교와 다른 사제 혹은 세속지배자로의 권력 분산을 유도할 수 있는 반면, 마르실리우스의 경우 이는 궁극적으로 인민, 즉 신자 집합체의 권한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 논문에서 이 주장을 위해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교황과 황제, 신자 집합체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정리해보면, 교황의 권위는 역사적으로 황제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결코 그 세속지배자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내의 지고권이 황제에게 있다고 보는 황제주의로 귀결되지 않음은 황제란 정치의 영역에서는 인민, 신학적으로는 신자 집합체에 의해 그 권한을 양도받은 자라는 이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써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황제의 위상에 대한 언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이론의 요체는 인민주의에 있으며 이는 공의회에 관한 그의 주장에도 그대로 연장된다. 교황 전능권 주장의 허구와 교회내의 위계질서 거부등에 관한 주장은 교회가 어느 특정인의 권위아래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모든 신자의 모임체임을 밝히는 예비적 논의이며, 이들로 구성되는 공의회가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다 함은 정치적 주권자인 인민의 신학적 대치체라 할 수 있는 신자 집합체의 주권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마르실리우스의 공의회주의 특성을 신학적 인민주의라 명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가격2,6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8.10.12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455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