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낮은 것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아가페는 고유하고 기본적인 기독교의 모티브인데, 이는 필요나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비하하시고, 인간 세상에 자신을 결합시키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이상이 기독교적 이상 속에 스며들어 오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아가페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위협을 받고 파괴당한다. 왜냐하면, 에로스는 사랑의 대상 자체 안에 있는 가치에 의하여 그 동기가 부여되는 사랑이므로 아가페의 자발성과 무상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향연에서 말하는 플라토닉 사랑은 철학자 플라톤의 이름을 형용사화해서 만든 단어이다. 플라톤은 정신적 사랑을 추구했는데, 그것이 다른 말로 플라토닉 사랑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동성애가 횡횡했는데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도 그런 사이였다. 그 당시에 동성애는 퇴폐적이고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사랑의 방식은 나이 많은 어른과 소크라테스와 미소년 플라톤의 정신적 지혜를 대화를 통해서 탐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말함으로써, 이것을 고쳐 완전한 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에로스인 것이다. 즉, 알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갖는데, 이를 플라톤은 에로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육체적 사랑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원불멸한 것으로, 영혼이 있다고 말했고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성과 용기 그리고 욕망 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영혼의 실질적인 요소는 이성이고 가장 하위의 개념은 욕망이라고 한 점에서 모든 육체적 즐거움은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는 아름다움의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데 그의 책 <향연> 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연이라는 책을 통해서 요즘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플라토닉을 제외한 에로스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와 반대로 에로스를 전혀 배제한 플라토닉만의 사랑 또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사랑은 어떤 모양이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된다면 그지 양분화 하고 나누는 것보다 그것들을 조화시킴으로 더 커다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가페는 고유하고 기본적인 기독교의 모티브인데, 이는 필요나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비하하시고, 인간 세상에 자신을 결합시키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이상이 기독교적 이상 속에 스며들어 오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아가페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위협을 받고 파괴당한다. 왜냐하면, 에로스는 사랑의 대상 자체 안에 있는 가치에 의하여 그 동기가 부여되는 사랑이므로 아가페의 자발성과 무상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향연에서 말하는 플라토닉 사랑은 철학자 플라톤의 이름을 형용사화해서 만든 단어이다. 플라톤은 정신적 사랑을 추구했는데, 그것이 다른 말로 플라토닉 사랑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동성애가 횡횡했는데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도 그런 사이였다. 그 당시에 동성애는 퇴폐적이고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사랑의 방식은 나이 많은 어른과 소크라테스와 미소년 플라톤의 정신적 지혜를 대화를 통해서 탐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말함으로써, 이것을 고쳐 완전한 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에로스인 것이다. 즉, 알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갖는데, 이를 플라톤은 에로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육체적 사랑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원불멸한 것으로, 영혼이 있다고 말했고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성과 용기 그리고 욕망 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영혼의 실질적인 요소는 이성이고 가장 하위의 개념은 욕망이라고 한 점에서 모든 육체적 즐거움은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는 아름다움의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데 그의 책 <향연> 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연이라는 책을 통해서 요즘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플라토닉을 제외한 에로스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와 반대로 에로스를 전혀 배제한 플라토닉만의 사랑 또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사랑은 어떤 모양이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된다면 그지 양분화 하고 나누는 것보다 그것들을 조화시킴으로 더 커다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