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오다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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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노부나가의 천하제패 비결
2. 노부나가의 대두

본문내용

오다 노부나가에게 복속되거나 그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한 자들에 손에 넘어갔으며 우에스기 가문은 겐신이 급사한 후 후계자 싸움이 거세져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토의 호죠 가문은 그 세력이 강한 편이었으나 오다 노부나가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정도의 세력은 아니었다. 규슈 일대는 시마즈, 류조지, 오토모 가문이 난립하여 중앙의 패자인 노부나가에 역시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이제 모리 가문만 제거하면 사실상 일본의 패자는 노부나가가 되는 것이었고 주변의 소세력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명하여 모리 가문을 토벌하도록 명했고 노부나가의 명을 받은 히데요시는 대군을 이끌고 모리 가문에 협력하여 노부나가에게 대항하는 다이묘들을 하나 둘 격파해 나아갔다. 어느새 모리 가문의 직영지에 인접한 비젠의 우키다 나오이에의 항복까지 받아낸 히데요시는 다카마쓰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진군했으나 반격이 예상외로 거세지자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는데 이에 노부나가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대장으로 하는 지원군을 파견했고 자신도 히데요시를 돕기 위한 작전을 구상하기 위해 약간의 호위병만 거느리고 교토에 인접한 혼노지라는 절에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여기서 일본 학계에서도 그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는데 히데요시를 도와 쥬고쿠로 향하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대가 노부나가가 머무르고 있는 혼노지를 급습한 것이다. 1582년 6월 2일 새벽 1만 3천 명에 이르는 아케치 미쓰히데 군은 혼노지를 포위하고 노부나가의 목을 치기 위해 공격을 개시 했다. 당시 혼노지에는 70~80명에 불과한 호위병만 있었고 노부나가는 탄환과 화살이 떨어지자 십자창을 들고 끝까지 저항했지만 1만 3천에 이르는 미쓰히데의 군사를 100명도 되지 않는 호위대로 막아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노지 주변에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가 500의 군사를 이끌고 주둔하고 있었으나 노부타다는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불타는 혼노지에서 49세의 나이에 그 생을 마감했고 뒤늦게 아버지 노부나가의 위기소식을 접한 노부타다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혼노지로 향했으나 노부타다와 그 군사들은 미쓰히데의 군사들에게 전멸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미쓰히데가 왜 노부나가를 죽였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학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노부나가에 대한 미쓰히데의 원한설이다. 미쓰히데는 노부나가의 정실 노우히메의 어머니와 친척이었기에 원래 사이토 가문에 종사했으나 도산이 죽은 후 이나바 산성을 떠나 교토의 쇼군과 에치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로 주군을 바꾸었고 후에 노부나가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노부나가의 직신이 되었다. 노부나가의 가신 들 중 가장 뛰어난 교양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미쓰히데는 매우 보수적이었고 애당초 구체제의 혁파를 주도해 온 노부나가와 그 뜻이 맞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노부나가는 미쓰히데에게 지나칠 정도로 심한 치욕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노부나가는 미쓰히데가 단바성을 열었을 때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인질로 내주었으나 노부나가는 미쓰히데의 어머니가 병사들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두었고 단바 성의 성주인 미쓰히데의 형제를 참살해 버렸다. 또한 아즈치 성을 방문한 이에야스의 접대 역을 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을 때 노부나가는 천황이 왔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핀잔을 주면서 그 자리에서 접대 역을 교체시켜 미쓰히데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쓰히데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것인 노부나가가 미쓰히데에게 주고쿠 공략에 열중하던 히데요시를 지원하라고 했을 때 미쓰히데의 영지였던 단바는 몰수하고 대신 적지인 이즈모와 이와미를 미쓰히데에게 하사한 것이다. 이것은 미쓰히데가 적지인 이즈모와 이와미를 공략하지 못한다면 그의 영지는 단 1석도 없다는 것을 뜻하므로 미쓰히데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예전부터 노부나가로부터 무수한 모욕을 받은 미쓰히데의 분노가 결국 폭발하여 혼노지의 노부나가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실은 공모자가 있었다는 것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노부나가는 생전에 자신이 일본의 국왕이라고 말하는 등 조정의 천황과 구게들을 긴장하게 했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조정이 노부나가에 원한이 깊은 미쓰히데를 부추겨 살해했다는 설과 주고쿠에 파견되었던 히데요시가 미쓰히데와 함께 모반을 획책했다가 후에 미쓰히데를 배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무수한 추측일 뿐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의 모반 원인을 증명해 줄 인물들이 거의 사망한 것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오로지 일본 통일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던 노부나가는 어이없게도 가신의 반란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이후 가문은 그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생전 그는 오케하자마 합전을 눈앞에 두고 야쓰모리라는 시를 노래한 뒤 출전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인생 50년 죽지 않는 자는 누구이며 세상의 모든 영화는 꿈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시의 내용처럼 노부나가는 4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으며 그가 이루었던 거대한 가문은 히데요시에 의해 풍지박살 나 그의 손자 산보시는 사실상 히데요시의 가신 신세로 전락하여 근근이 목숨을 이어갔다. 노부나가가 생전 노래했던 야쓰모리를 소개하며 노부나가의 일생에 관한 글을 마친다.
야쓰모리
생각하면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집이 못되는 곳
풀잎에 내린 흰 이슬, 물에 비치는 달보다 허무하도다
황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무상한 바람에 흩날리고
남쪽 망루의 달과 노닐던 이들도 달보다 먼저 가버려 무상한 이 세상의 구름에 가리네
인생사 오십년
돌고 도는 이 세상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도다
한 번 태어나 죽지 않는 자 그 누구인가. 죽지 않을 자 누구인가.
인생사 오십년
돌고 도는 이 세상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도다
한 번 태어나 죽지 않는 자 그 누구인가. 죽지 않을 자 그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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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21
  • 저작시기2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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