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1-1 주제 선정 동기
1-2 연구방법
2. 유화부인과 소서노는 누구인가?
2-1 유화부인은 누구인가?
2-2 소서노는 누구인가?
3. 왜 그녀들은 건국신화 속에서의 여걸[女傑]인가?
3-1 주몽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호국신으로서의 유화부인
3-2 주몽의 아내이자 온조의 어머니로서의 소서노
4. 결론 (요약)
1-1 주제 선정 동기
1-2 연구방법
2. 유화부인과 소서노는 누구인가?
2-1 유화부인은 누구인가?
2-2 소서노는 누구인가?
3. 왜 그녀들은 건국신화 속에서의 여걸[女傑]인가?
3-1 주몽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호국신으로서의 유화부인
3-2 주몽의 아내이자 온조의 어머니로서의 소서노
4. 결론 (요약)
본문내용
다는 것은 그만큼 소서노의 세력이 강성했음을 뜻한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하게 되고, 이때에도 소서노는 온조의 어머니로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백제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소서노는 온조왕 13년 3월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 두 달 후인 5월에 도성에서 여러 괴변들이 일어나고, 또 말갈의 침입까지 받는 등 백제는 내외로 큰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 때 온조왕은 신하들에게
“국모가 세상을 버리는 등 정세가 편안치 못하니 서울을 옮겨야겠다.” 라고 말하였다.
61세의 국모 사망을 자연적인 노환으로서의 사망으로 보지 않고, 나라의 운명문제와 연결하고 있음은 국모 소서노의 죽음이 온조왕에게는 물론 백제민 전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수난으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상고 사회에서는, 아들에게 있어 어머니는 단순한 혈친을 넘어선 지모신(地母神)과 같은 신앙의 존재였던 것이다.
백제는 온조왕 17년 4월에 국모묘를 세웠는데, 이것은 소서노를 백제의 창업주이자 지모신이라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 숭배했기 때문이다.
4. 결론 (요약)
지금까지의 유교적 역사관으로 서술한 책들에서는 여성의 중요한 역할들을 유교적 덕목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서술되지 않았었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역시 과거 역사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을 많이 비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새 드라마 ‘주몽’이 화제가 되면서 비록 드라마 내용은 사실적이지 않지만 유화부인과 소서노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조명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몽의 특출 난 활솜씨를 어릴 때부터 자질을 기를 수 있게 해주고, 주몽이 먼 길을 떠나야 하고 위험한 처지에 있을 때에 위험을 감지해주고, 또 지혜롭게 준마를 골라주며, 양식으로 삼아야 할 오곡의 종자를 줌으로써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키워주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유화부인.
아무것도 없이 동부여에서 도망쳐온 주몽을 받아주고, 모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주몽의 고구려 건국을 가능하게 했으며, 비류와 온조를 이끌고 내려와 백제의 건국에서도 경제적 지원과 정신적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소서노.
이 두 여성은 당시 남성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카리스마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여걸이었음에 틀림없다. 만약 존재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사회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두 여성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 역시 많은 부분을 담당해 왔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 여자는 2.9%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반쪽짜리 역사를 배우다가 이번 기회에 완전한 반쪽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여걸이라 불릴 여성들 중 두 분에 대해 나름대로 재조명 해보면서 입으로만 계속 남녀평등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밟아오며 살아가는 만큼 우리가 밟아온 과거를 다시금 재조명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출처
서적(삼국사기, 한국역사속의 여성인물(上))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버 오픈백과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펌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하게 되고, 이때에도 소서노는 온조의 어머니로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백제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소서노는 온조왕 13년 3월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 두 달 후인 5월에 도성에서 여러 괴변들이 일어나고, 또 말갈의 침입까지 받는 등 백제는 내외로 큰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 때 온조왕은 신하들에게
“국모가 세상을 버리는 등 정세가 편안치 못하니 서울을 옮겨야겠다.” 라고 말하였다.
61세의 국모 사망을 자연적인 노환으로서의 사망으로 보지 않고, 나라의 운명문제와 연결하고 있음은 국모 소서노의 죽음이 온조왕에게는 물론 백제민 전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수난으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상고 사회에서는, 아들에게 있어 어머니는 단순한 혈친을 넘어선 지모신(地母神)과 같은 신앙의 존재였던 것이다.
백제는 온조왕 17년 4월에 국모묘를 세웠는데, 이것은 소서노를 백제의 창업주이자 지모신이라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 숭배했기 때문이다.
4. 결론 (요약)
지금까지의 유교적 역사관으로 서술한 책들에서는 여성의 중요한 역할들을 유교적 덕목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서술되지 않았었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역시 과거 역사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을 많이 비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새 드라마 ‘주몽’이 화제가 되면서 비록 드라마 내용은 사실적이지 않지만 유화부인과 소서노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조명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몽의 특출 난 활솜씨를 어릴 때부터 자질을 기를 수 있게 해주고, 주몽이 먼 길을 떠나야 하고 위험한 처지에 있을 때에 위험을 감지해주고, 또 지혜롭게 준마를 골라주며, 양식으로 삼아야 할 오곡의 종자를 줌으로써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키워주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유화부인.
아무것도 없이 동부여에서 도망쳐온 주몽을 받아주고, 모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주몽의 고구려 건국을 가능하게 했으며, 비류와 온조를 이끌고 내려와 백제의 건국에서도 경제적 지원과 정신적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소서노.
이 두 여성은 당시 남성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카리스마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여걸이었음에 틀림없다. 만약 존재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사회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두 여성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 역시 많은 부분을 담당해 왔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 여자는 2.9%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반쪽짜리 역사를 배우다가 이번 기회에 완전한 반쪽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여걸이라 불릴 여성들 중 두 분에 대해 나름대로 재조명 해보면서 입으로만 계속 남녀평등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밟아오며 살아가는 만큼 우리가 밟아온 과거를 다시금 재조명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출처
서적(삼국사기, 한국역사속의 여성인물(上))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버 오픈백과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