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연 - 차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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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용어정리

2. 담배의 역사와 유래

3. 차의 역사와 유래
(1) 차 마시기의 기원
(2)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차의 유래

*참고문헌

본문내용

치고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신라때 화랑들 사이에서 차생활이 성행했으며 이것이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음을 말해준다. 신라인들이 차를 마시는데 어떤 예법을 지켰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차는 군자의 기질과 덕을 지니고 있다고 했고, 맑은 인격과 고매한 학덕, 예(藝)를 고루 갖춘 사람을 '다인'(茶人)이라고 칭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차는 잠을 쫓고 정신을 맑게 할 뿐만 아니라 명상에 적합하므로 수도하는 승려, 수련하는 화랑(花郞:귀족)과 낭도(郎徒 : 평민)가 애음하였으며, 또한 야외 중심의 음다풍(飮茶風)이 성행하였다. 당시 신라인들이 자주 마시던 차를 '삼국유사'에는 말차(沫茶), 즉 잎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든 차라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잎차와 말차가 함께 있었으나 말차가 더 성행하였을 것이라고 전한다.
차의 생산지는 남부지방에 국한되어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므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차가 수입되었으며, 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차도 수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1292년에는 고려시대의 향차(香茶)가 원나라에, 1627년, 29년, 36년에는 천지차(天地茶)와 작설차(雀舌茶) 50봉(封)씩이 후금에, 1637~45년에는 차 1,000포(包)씩이 청나라에, 1923~45년에는 정읍(井邑)의 천원차(川原茶)가 오사카[大阪]에, 1944년경 보성(寶城) 차밭에서 만든 5만 개의 전차(錢茶)가 몽골[蒙古]에 보내졌다. 또 73~77년에는 대한다업과 마루베니[丸紅]회사와의 계약에 의하여 매년 10~15 t의 보성녹차가 일본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제32권 기명 3(器皿三) - 다조(茶俎)
토산다(土産茶)는 쓰고 떫어 입에 넣을 수 없고, 오직 중국의 납다(臘茶)와 용봉사단(龍鳳賜團)을 귀하게 여긴다. 하사해 준 것 이외에 상인들 역시 가져다 팔기 때문에 근래에는 차 마시기를 자못 좋아하여 더욱 차의 제구를 만든다. 금화오잔(金花烏盞)ㆍ비색소구(翡色小)ㆍ은로탕정(銀爐湯鼎)은 다 중국 제도를 흉내낸 것들이다. 무릇 연회 때면 뜰 가운데서 차를 끓여서 은하(銀荷 은으로 만든 연잎 형상을 한 작은 쟁반)로 덮어가지고 천천히 걸어와서 내놓는다. 그런데 찬자(贊者)가 ‘차를 다 돌렸소’하고 말한 뒤에야 마실 수 있으므로 으레 냉차(冷茶)부터 마시게 마련이다. 관사 안에는 홍조(紅俎)를 놓고 그 위에다 차의 제구를 두루 진열한 다음 홍사건(紅紗巾 붉은 색의 사포로 만든 상보)으로 덮는다. 매일 세 차례씩 내는 차를 맛보게 되는데, 뒤어어 또 탕(湯 끓인 물)을 낸다. 고려인은 탕을 약(藥)이라고 하는데, 사신들이 그것을 다 마시는 것을 보면 반드시 기뻐하고, 혹 다 마셔내지 못하면 자기를 깔본다고 생각하면서 불쾌해져서 가버리기 때문에 늘 억지로 그것을 마셨다.
※참고문헌
한국고문서학회, 『의식주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역사비평사, 2006
*목차
1. 용어정리
2. 담배의 역사와 유래
3. 차의 역사와 유래
(1) 차 마시기의 기원
(2)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차의 유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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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9.01.02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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