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타 쇼지 의 호텔 을 통해서 본 일본근대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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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미타 쇼지 의 호텔 을 통해서 본 일본근대문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냐 위탁이냐 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고토의 사임으로 세이요켄에 위탁하는 쪽으로 결정이 나버렸다.
9) JTB의 창설과 활동
JTB는 일본 최대규모의 여행사이다.
초기 JTB의 주된 활동은 세계일주 관광단의 접대와 요코하마와 나가사키의 안내소 개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박람회에서의 선전 활동 등을 들 수가 있다.
당시 호텔 부족으로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에 상륙하자마자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JTB는 호텔협회와 협력하고 외국 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입항할 때마다 호텔의 빈 객실 수를 여행자들에게 통지하여 선내에서 예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철도원의 주요 역 외에 여러 호텔에 안내소를 개설함으로써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JTB의 또 다른 중요 계획은 거대 호텔 건설이다.
이 거대한 커머셜 호텔의 건설지는 도쿄역 앞의 도쿄해상보험의 동쪽 편으로 결정하였고, 명칭은 저팬 호텔주식회사, 호텔명은 도쿄 터미너스 호텔로 정하고 계획이 진행되었다.
이 호텔을 적극적으로 계획한 시모다는 미래의 호텔은 개인의 주거와 공공의 장을 융합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창의력 넘치는 새로운 구조를 제시했다.
그러나 1919년(다이쇼8년) 말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서 일어난 경제공황 현상적으로는 신용거래의 붕괴 및 이와 관련한 상품판매의 불황, 그에 수반되는 재생산의 수축과 대량의 실업사태 등을 포함하는 자본주의 경제 특유의 현상.
이 이 호텔계획을 무산시켜버리고 만다.
경제는 1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따라 대전 붐에서 거꾸로 불황으로 이행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자가 속출하는 등 도저히 호텔건설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거대호텔 계획은 환상으로 끝나버렸지만, 후지야마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 상승과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를 예상하며 종합사교장의 필요를 절감했다.
그리고 곧 극장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후에 데이코쿠 극장과 지하통로 연결을 통해 도쿄카이칸을 설립하게 된다.
도쿄카이칸은 한개의 영리회사라기보다 시민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사교기관으로서 공중의 편익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 건물은 곧 널리 주목을 받아 연일 눈코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쿄카이칸의 맨 위층에 계획했던 호텔사업은 결국 무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당국이 입지문제를 놓고 영업허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쿄카이칸은 그 기능을 100% 발휘하지 못한 채 문을 열게 되지만 국제적 사교장이라는 설립 취지에 걸맞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몇몇 호텔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일본의 국제화가 커다란 과제로 등장하면서 호텔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10) 결론
물론 일본의 근대화와 호텔 그리고 철도의 상관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던 책이긴 했지만 일본 근대화 전체에 대한 것을 기대하기엔 조금 아쉬운 책이기도 했다.
점차 근대화의 모습을 갖추면서 철도의 발달과 외국인의 급증에는 반드시 호텔의 건설이 뒤따라야 했다.
이러한 호텔은 외국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역할을 하며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초기의 거류지 호텔을 시작하여, 국가중요문화재로 자리매김한 호텔,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한 리조트 호텔 등 시대에 따라 호텔의 목적은 약간씩 달라졌지만, 근대화를 위한 커다란 궁극적인 목적은 변함이 없었다.
비록 제 가치를 다 하지 못하고 사그라든 호텔들도 몇몇 있었지만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 호텔들은 각기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이 역동적인 근대사와 발자취를 함께 해온 호텔은 근대 일본의 흐름을 보여 준다.
호텔 안에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서구문화를 흡수하는 열린 장으로써의 기능은 분명 근대화를 한층 앞당기는 데에 분명한 공헌을 하였다.
비록 처음에 맹목적으로 서양식을 따라가려 했던 시도는 많은 우려와 질타를 받았지만, 점자 ‘일본식’ 서양화를 꾀하면서 근대적인 모습을 이룩해 나갔다.
또한, 호텔 건설을 위한 노력은 근대화를 위한 노력과 다르지 않았다.
호텔은 서구 문명 수입의 커다란 창구가 된 것은 물론, 국민 의식 개혁에도 한 몫을 담당하게 됐다.
서양식 결혼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무대는 바로 호텔이었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서양의 여러 나라가 일본의 쇄국을 여는 과정에서 호텔을 건설해 놓고 활동의 거점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아시아 주변 국가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호텔에 식민 활동의 거점 역할을 맡기게 된다.
이 때문에 식민지 호텔은 권위의 상징으로서 화려한 외관을 드러내고 있었던 반면, 피비린내 나는 부분 또한 내장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된다.
호텔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것이 바로 철도의 개설인데, 숙박을 해야 할 사람들인 여행자의 증가는 철도망의 발전이라는 국토 정비를 진행하게 하였다.
그 와중에 철도회사의 호텔건설은 좀 더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는 여러 유사한 점이 많다.
근대화 이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나, 조선의 흥선대원군 모두 쇄국정책을 실시했었던 것이 그것이다.
또한 나라의 문호를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군함으로 인한 무력시위로 인해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이끌어 냈다는 것인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이 그런 식으로 일본의 문호를 열었고, 그 방법을 일본이 조선에게 똑같이 써먹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써 일본의 근대화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문제 인 것 같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의 근대화운동은 실패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일본의 메이지 유신만 성공한 것이다.
그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를 이룩해낸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찌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특정 지역의 명칭과 생소한 일본어 때문에 완벽하게 소화하기가 참 힘들었다.
더 힘들었던 점은 시대순의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아 어떤 부분은 대 여섯 번 정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레포트의 목적을 떠나서, 조만간 다시 한번 여유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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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8.06.21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37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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