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서양고전의이해 [ A형 ]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
1) 이 책을 선택한 이유(분량 0.5쪽 내외)
2) 가장 인상적인 구절(실린 쪽수) (분량 1.5매 내외)
* 여러 군데, 여러 구절이어도 상관없으며 실린 쪽수표시는 각 구절 끝에 ( )속에 표기한다.
3) 독후감(분량 3매 내외)
Ⅰ. 서 론
Ⅱ. 이 책을 선택한 이유
Ⅲ. 가장 인상적인 구절(실린 쪽수)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
Ⅳ. 독후감
1.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와의 만남
2. [문화와 제국주의]의 핵심 주제인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 탈피
3. 저자 사이드의 텍스트성에 대한 나의 견해
4. 권력에 대한 비판
5. 문화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한 나의 생각
6. 한국의 문화제국주의 행태에 대한 나의 관점
Ⅴ. 결 론
[참고 자료]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
1) 이 책을 선택한 이유(분량 0.5쪽 내외)
2) 가장 인상적인 구절(실린 쪽수) (분량 1.5매 내외)
* 여러 군데, 여러 구절이어도 상관없으며 실린 쪽수표시는 각 구절 끝에 ( )속에 표기한다.
3) 독후감(분량 3매 내외)
Ⅰ. 서 론
Ⅱ. 이 책을 선택한 이유
Ⅲ. 가장 인상적인 구절(실린 쪽수)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
Ⅳ. 독후감
1.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와의 만남
2. [문화와 제국주의]의 핵심 주제인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 탈피
3. 저자 사이드의 텍스트성에 대한 나의 견해
4. 권력에 대한 비판
5. 문화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한 나의 생각
6. 한국의 문화제국주의 행태에 대한 나의 관점
Ⅴ.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정체성은 단일하거나 통일된 것일 수 없다는 데 먼저 동의해야만 한다.
과연 미국 내에서의 투쟁은 미국을 통일된 정체성으로 보려는 사람들과 전체를 복합체로 보려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대립각은, 하나는 연속적이며 규칙적이고 또 하나는 대위법적이고 유목민적인 두 가지 시각과 두개의 역사를 암시한다. 나는 두 가지 중 두 번째 것만이 역사적 경험의 리얼리티에 온전히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6. 한국의 제국주의 행태에 대한 나의 관점
부분적으로는 제국으로 인해 모든 문화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 어느 문화도 단일하거나 순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혼혈이고, 다양하며, 놀랄 만큼 변별적이며, 다층적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한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만약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군사적, 정치적으로 한국은 강대국들의 팽창주의에서 나온 희생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시각이 매국적(賣國的)이라고 비판해도 어쩔 수 없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나름의 소(小)제국을 이루고 있고,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이미 그 제국의 힘을 약소국에게 지우기 시작을 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미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서 철폐를 요구했을 때, 우리는 미국의 ‘문화 침략’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반발했다(결국 절반 규모로 축소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한국은 끊임없는 제국주의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우리도 우리 문화와 경제를 외국에 수출하는 데에 있어서는 제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점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하는 것은 ‘진출’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침략’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Ⅴ. 결 론
이상으로 ‘문화와 제국주의’(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를 읽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와 가장 인상적인 구절, 그리고 독후감을 작성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유행하는 문화, 흔히들 말하는 일류 문화에 접촉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것인가? 매체 기술의 발달,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한 교통수단의 발달과 자본주의 사회제도 등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색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그 이유를 제시하는 문명비판가가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이다. 그는 문화와 제국주의는 긴밀한 관계에 있는데, 그 이유는 문화란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국으로 인해 오늘날의 모든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어떤 문화도 단일하거나 순수할 수 없고, 놀랄 만큼 변별적이며, 다층적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이드의 관점에 의하면 우리 자신이 현재, 한국에서 향유하는 문화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미 은연중에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제국주의 문화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코카콜라를 살 수 있으며, 영어는 국제 활동의 공용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헐리우드의 폭력물은 세계 영화 시장을 석권하면서 우리 안방까지도 파고들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그들의 이론과 사상을 한국에 풀어놓는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학문을 최첨단의 것인 양 으시대고, 앞 다투어 받아들여 그것을 최고의 것으로서 간주한다.
학문의 수입상이 넘쳐 날수록 그러한 분야의 학문은 선도적 학문 분과가 되어 유행을 주도한다. 많이 팔수록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국주의 시장논리에 빠져들어서 출구조차도 찾지 못하고, 제국주의 문화 전선의 첨병 역할을 자임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 한 켠 에서는 그들을 선도 연구자라고 추켜세운다. 그런 이들을 많이 배출하면 할 할수록 그 대학은 일류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져 있는 문화, 그 문화를 보면 한수 위의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풍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손을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에 뛰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문화의 보편성’, ‘보편문화’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서 ‘다문화주의’를 선택하여 주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오늘날의 보편문화는 우리가 인정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거대 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 문화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지역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생겨날 수가 있으며, 문화 간의 ‘혼란’과 ‘분열’보다는 오히려 ‘통합’과 ‘공존’을 가능케 하는 입장이 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문화주의의 입장을 유지한다고 할 경우에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에서 ‘유연함’과 ‘관대함’이라는 열려진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다문화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요청되는 최소한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뉴 라이트’의 역사 이해는 부분적으로 아주 비약적인 한국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미국 세계질서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 유색인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우리가 그토록 혐오한 제국주의를 스스로가 내면화하면서 표출된 사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걱정이 된다.
여전히 일본만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문명국이라고 인식을 하는 세계질서를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제국주의적인 인식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재는 결코 역사가 끝난 시대가 아니며, 모든 텍스트가 권력의 불 균질적인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사이드가 이야기한 세속비평은 여전히 유용하다.
대위법적인 독해가 제국주의를 분쇄할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학자와 독자가 독서를 통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문화와 제국주의], 창, 2011
진달용, 문화제국주의의 재해석,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임동욱, 세계화와 문화제국주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존 톰린슨, 강대인 역, 문화 제국주의, 나남, 1994
제국의 몰락, 가브리엘 콜코, 지소철 역, 비아북, 2009.
과연 미국 내에서의 투쟁은 미국을 통일된 정체성으로 보려는 사람들과 전체를 복합체로 보려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대립각은, 하나는 연속적이며 규칙적이고 또 하나는 대위법적이고 유목민적인 두 가지 시각과 두개의 역사를 암시한다. 나는 두 가지 중 두 번째 것만이 역사적 경험의 리얼리티에 온전히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6. 한국의 제국주의 행태에 대한 나의 관점
부분적으로는 제국으로 인해 모든 문화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 어느 문화도 단일하거나 순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혼혈이고, 다양하며, 놀랄 만큼 변별적이며, 다층적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한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만약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군사적, 정치적으로 한국은 강대국들의 팽창주의에서 나온 희생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시각이 매국적(賣國的)이라고 비판해도 어쩔 수 없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나름의 소(小)제국을 이루고 있고,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이미 그 제국의 힘을 약소국에게 지우기 시작을 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미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서 철폐를 요구했을 때, 우리는 미국의 ‘문화 침략’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반발했다(결국 절반 규모로 축소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한국은 끊임없는 제국주의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우리도 우리 문화와 경제를 외국에 수출하는 데에 있어서는 제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점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하는 것은 ‘진출’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침략’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Ⅴ. 결 론
이상으로 ‘문화와 제국주의’(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창, 2011)를 읽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와 가장 인상적인 구절, 그리고 독후감을 작성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유행하는 문화, 흔히들 말하는 일류 문화에 접촉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것인가? 매체 기술의 발달,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한 교통수단의 발달과 자본주의 사회제도 등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색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그 이유를 제시하는 문명비판가가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이다. 그는 문화와 제국주의는 긴밀한 관계에 있는데, 그 이유는 문화란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국으로 인해 오늘날의 모든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어떤 문화도 단일하거나 순수할 수 없고, 놀랄 만큼 변별적이며, 다층적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이드의 관점에 의하면 우리 자신이 현재, 한국에서 향유하는 문화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미 은연중에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제국주의 문화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코카콜라를 살 수 있으며, 영어는 국제 활동의 공용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헐리우드의 폭력물은 세계 영화 시장을 석권하면서 우리 안방까지도 파고들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그들의 이론과 사상을 한국에 풀어놓는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학문을 최첨단의 것인 양 으시대고, 앞 다투어 받아들여 그것을 최고의 것으로서 간주한다.
학문의 수입상이 넘쳐 날수록 그러한 분야의 학문은 선도적 학문 분과가 되어 유행을 주도한다. 많이 팔수록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국주의 시장논리에 빠져들어서 출구조차도 찾지 못하고, 제국주의 문화 전선의 첨병 역할을 자임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 한 켠 에서는 그들을 선도 연구자라고 추켜세운다. 그런 이들을 많이 배출하면 할 할수록 그 대학은 일류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져 있는 문화, 그 문화를 보면 한수 위의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풍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손을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에 뛰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문화의 보편성’, ‘보편문화’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서 ‘다문화주의’를 선택하여 주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오늘날의 보편문화는 우리가 인정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거대 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 문화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지역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생겨날 수가 있으며, 문화 간의 ‘혼란’과 ‘분열’보다는 오히려 ‘통합’과 ‘공존’을 가능케 하는 입장이 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문화주의의 입장을 유지한다고 할 경우에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에서 ‘유연함’과 ‘관대함’이라는 열려진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다문화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요청되는 최소한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뉴 라이트’의 역사 이해는 부분적으로 아주 비약적인 한국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미국 세계질서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 유색인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우리가 그토록 혐오한 제국주의를 스스로가 내면화하면서 표출된 사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걱정이 된다.
여전히 일본만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문명국이라고 인식을 하는 세계질서를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제국주의적인 인식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재는 결코 역사가 끝난 시대가 아니며, 모든 텍스트가 권력의 불 균질적인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사이드가 이야기한 세속비평은 여전히 유용하다.
대위법적인 독해가 제국주의를 분쇄할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학자와 독자가 독서를 통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에드워드 사이드, 정정호, 김성곤 옮김, [문화와 제국주의], 창, 2011
진달용, 문화제국주의의 재해석,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임동욱, 세계화와 문화제국주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존 톰린슨, 강대인 역, 문화 제국주의, 나남, 1994
제국의 몰락, 가브리엘 콜코, 지소철 역, 비아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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