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序文
(서양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동양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本文
인쇄 구성을 통한 양식해체
사회적으로 중개된 「무작위기법」
모방과 창조
몽타쥬 기법을 통한 시세계의 개방성
탈쟝르적인 시대적 징후
시의 자유
건조한 현실
현실의 허구와 우상
패로디의 미학
都市詩의 새로운 형태 패스티쉬
해체시 .. 형태파괴적 실험
結文
(서양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동양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本文
인쇄 구성을 통한 양식해체
사회적으로 중개된 「무작위기법」
모방과 창조
몽타쥬 기법을 통한 시세계의 개방성
탈쟝르적인 시대적 징후
시의 자유
건조한 현실
현실의 허구와 우상
패로디의 미학
都市詩의 새로운 형태 패스티쉬
해체시 .. 형태파괴적 실험
結文
본문내용
에서 보내진 유학간 딸의 맞춤법 틀린 편지를 읽는다.
그건 아직 텔레비젼일까... 통속 소설일까...
그 시간에 잔업 수당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계산하고 있거나
꿈을 기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승리하게 될지 어떨지.....
어째 살아 있음은 늘 죄송하다
혹시나 하고 살아가는 나에게도
웃음 끝이 남아 있는동안 그저
씨익 웃어 버릴란다.
(박세현) 왜 사냐건 웃지요
패로디의 미학
극단적인 두 부류의 삶이 공존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사회의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현실을 씨익 웃어버릴 꿈이 있음을 이 시인은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박세현에게 있어 불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나름대로의 길찾기의 희망을 가꿀 수있는 힘이다. 이힘이 눈물 한탄,절망을 그 자체 속에서 벗어나 따스한 삶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진한 서정적 힘으로 바뀌면서 우리를 감동 시킨다.
나의 하루는 컴퓨터 스위치를 올리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을 저장시키는 것
세계는, 손 안에 있다
나는 컴퓨터 단말기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도시와
땅 밑의 태양 그리고 미래의 태아들까지 연결된다
나의 두 눈은 환한 불을 켜고 있는 TV
나의 심장은 거대하게 돌아가고있는 공장의 발전실
모든 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스위치를 올려야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그러나 그대의 의지
나는, 내 몸 속으로 힘을 공급해주는 누군가에 의해 사용된다
(하재봉) 비디오/퍼스널 컴퓨터
都市詩의 새로운 형태 패스티쉬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인간은 세계는 ,손안에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아니,어쩌면 그러한 환상 자체가 이미 세뇌당한 결과인지도 모른다.왜냐하면 손안에 있는 세계는 아무런 입체적인 질감과 아름다움으로 접촉되지 않는 평면적인 이미지나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세뇌의 결과는 나의 두 눈은 환한 불을 켜고 있는 TV 라는데 나타나 있다.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인간의 눈은 이제 평면적인 이미지와 기호라는 가짜의 모습에 더욱 친화력을 느기게 되어버린 결과, 가짜의 모습을 생산하는 기계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어의 심층 구조를 상실해버리고 언어의 표층적인 이미지와 기호의 세계에 집착하는 패스티쉬의 기교도 바로 이러한 영상매체의 기능을 닮았다. 더 나아가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가짜모습과 패스티쉬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기호의 세계는 사용가치보다 화려하고 새로운 외관으로 소비 욕망을 부채질하는 상품의 속성을 닮아 있다.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 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 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나는 아무것도 가르칠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이성복) 편지
해체시 .. 형태파괴적 실험
소리가 좋아서 읊는시, 노래처럼 아름다운 시어와 리듬만 있을뿐 이 시에는 어떤 메세지가 없다. 결혼 할건지 못하는건지,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건지, 게다가 잘있지 말아요라니. 앞의 언어를 지우고 전복시키면서 계속 이어지는 말이 있을뿐 이다. 어떤 싸움의 기록이나 그날에는 마침표가 전혀 없다. 무슨 기록인가 보아도 별로 신통한 얘기가 없이 그저 계속 말한다. 독자는 말할듯 하면서도 끝내 말이 없는 시를 계속 읽는다. 왜 일까? 시어가 음악처럼 유연하고 리듬이 있고 한 단어가 그 다음의 단어와 묘하게 연결되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고통이 사라지고 다음엔/고통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뒤집힌 눈, 잔물결지는 눈썹,영화는/끝났고 다시 시작된다 (蒙昧日記).
비슷한 단어가 계속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연결된다. 처음,다음,고통,사라지고,눈, 눈썹,끝나고,시작.....등으로 연상과 도치 또 연상과 도치이다. 때로는 얼싸,참 좋다 라는 후렴을 반복한다. 이성복의 시는 그저 뭔가 하나 뚜렷하게 짚어주는 것이 없는데도 계속 씌어지고 아름다운 노래처럼 계속 읽힌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나를 구할수 있을까
詩가 詩를 구할수 있을까
왼손이 왼손을 부러뜨릴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돌이키고 내 아픈 마음은
잘 논다 놀아난다 얼싸
天國은 말 속에 갇힘
天國의 벽과 자물쇠는 말 속에 갇힘
감옥과 죄수와 죄수의 희망은 말 속에 갇힘
말이 말 속에 갇힘, 갇힌 말이 가둔 말과 홀레 붙음,얼싸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돌이키고 내 아픈 마음은
잘 논다 놀아난다 얼싸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結文
언어 자체가 잠들어 있는데 어떻게 말을, 시를, 세상을 구원하는가, 육교 위에서 버섯이 자라고 통곡과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의 표현이 통곡과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이 아닌데 시인이 어떻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부조리 그 자체이고 언어는 진실을 지칭하지 못하고 미로 속에 갇혀있다. 그러니 시는 부조리에 관한 게 아니고 부조리 그자체이다.
그래서 이성복은 ....에 관하여란 제목을 붙여놓고 패러디로 만든다.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어를 가지고 유희를 벌여 독자의 상상력을 끌여들이면서도 아무 의미를 만들지 않음으로 독자를 해방 시킨다. 이성복의 언어는 실체를 지칭하지 못하는 뒹구는 돌이고 그이 시집은 잠이 든채 깰줄을 모른다.말이지만 말이 아닌 시.그것은 마치 언어의 비유성을 드러내고 인간을 권력에의 의지,앎에의 의지로부터 해방시키러던 니체의 언어의 유희를 연상 시킨다.
그건 아직 텔레비젼일까... 통속 소설일까...
그 시간에 잔업 수당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계산하고 있거나
꿈을 기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승리하게 될지 어떨지.....
어째 살아 있음은 늘 죄송하다
혹시나 하고 살아가는 나에게도
웃음 끝이 남아 있는동안 그저
씨익 웃어 버릴란다.
(박세현) 왜 사냐건 웃지요
패로디의 미학
극단적인 두 부류의 삶이 공존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사회의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현실을 씨익 웃어버릴 꿈이 있음을 이 시인은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박세현에게 있어 불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나름대로의 길찾기의 희망을 가꿀 수있는 힘이다. 이힘이 눈물 한탄,절망을 그 자체 속에서 벗어나 따스한 삶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진한 서정적 힘으로 바뀌면서 우리를 감동 시킨다.
나의 하루는 컴퓨터 스위치를 올리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을 저장시키는 것
세계는, 손 안에 있다
나는 컴퓨터 단말기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도시와
땅 밑의 태양 그리고 미래의 태아들까지 연결된다
나의 두 눈은 환한 불을 켜고 있는 TV
나의 심장은 거대하게 돌아가고있는 공장의 발전실
모든 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스위치를 올려야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그러나 그대의 의지
나는, 내 몸 속으로 힘을 공급해주는 누군가에 의해 사용된다
(하재봉) 비디오/퍼스널 컴퓨터
都市詩의 새로운 형태 패스티쉬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인간은 세계는 ,손안에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아니,어쩌면 그러한 환상 자체가 이미 세뇌당한 결과인지도 모른다.왜냐하면 손안에 있는 세계는 아무런 입체적인 질감과 아름다움으로 접촉되지 않는 평면적인 이미지나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세뇌의 결과는 나의 두 눈은 환한 불을 켜고 있는 TV 라는데 나타나 있다.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인간의 눈은 이제 평면적인 이미지와 기호라는 가짜의 모습에 더욱 친화력을 느기게 되어버린 결과, 가짜의 모습을 생산하는 기계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어의 심층 구조를 상실해버리고 언어의 표층적인 이미지와 기호의 세계에 집착하는 패스티쉬의 기교도 바로 이러한 영상매체의 기능을 닮았다. 더 나아가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가짜모습과 패스티쉬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기호의 세계는 사용가치보다 화려하고 새로운 외관으로 소비 욕망을 부채질하는 상품의 속성을 닮아 있다.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 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 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나는 아무것도 가르칠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이성복) 편지
해체시 .. 형태파괴적 실험
소리가 좋아서 읊는시, 노래처럼 아름다운 시어와 리듬만 있을뿐 이 시에는 어떤 메세지가 없다. 결혼 할건지 못하는건지,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건지, 게다가 잘있지 말아요라니. 앞의 언어를 지우고 전복시키면서 계속 이어지는 말이 있을뿐 이다. 어떤 싸움의 기록이나 그날에는 마침표가 전혀 없다. 무슨 기록인가 보아도 별로 신통한 얘기가 없이 그저 계속 말한다. 독자는 말할듯 하면서도 끝내 말이 없는 시를 계속 읽는다. 왜 일까? 시어가 음악처럼 유연하고 리듬이 있고 한 단어가 그 다음의 단어와 묘하게 연결되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고통이 사라지고 다음엔/고통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뒤집힌 눈, 잔물결지는 눈썹,영화는/끝났고 다시 시작된다 (蒙昧日記).
비슷한 단어가 계속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연결된다. 처음,다음,고통,사라지고,눈, 눈썹,끝나고,시작.....등으로 연상과 도치 또 연상과 도치이다. 때로는 얼싸,참 좋다 라는 후렴을 반복한다. 이성복의 시는 그저 뭔가 하나 뚜렷하게 짚어주는 것이 없는데도 계속 씌어지고 아름다운 노래처럼 계속 읽힌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나를 구할수 있을까
詩가 詩를 구할수 있을까
왼손이 왼손을 부러뜨릴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돌이키고 내 아픈 마음은
잘 논다 놀아난다 얼싸
天國은 말 속에 갇힘
天國의 벽과 자물쇠는 말 속에 갇힘
감옥과 죄수와 죄수의 희망은 말 속에 갇힘
말이 말 속에 갇힘, 갇힌 말이 가둔 말과 홀레 붙음,얼싸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돌이키고 내 아픈 마음은
잘 논다 놀아난다 얼싸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結文
언어 자체가 잠들어 있는데 어떻게 말을, 시를, 세상을 구원하는가, 육교 위에서 버섯이 자라고 통곡과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의 표현이 통곡과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이 아닌데 시인이 어떻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부조리 그 자체이고 언어는 진실을 지칭하지 못하고 미로 속에 갇혀있다. 그러니 시는 부조리에 관한 게 아니고 부조리 그자체이다.
그래서 이성복은 ....에 관하여란 제목을 붙여놓고 패러디로 만든다.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어를 가지고 유희를 벌여 독자의 상상력을 끌여들이면서도 아무 의미를 만들지 않음으로 독자를 해방 시킨다. 이성복의 언어는 실체를 지칭하지 못하는 뒹구는 돌이고 그이 시집은 잠이 든채 깰줄을 모른다.말이지만 말이 아닌 시.그것은 마치 언어의 비유성을 드러내고 인간을 권력에의 의지,앎에의 의지로부터 해방시키러던 니체의 언어의 유희를 연상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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