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우생학과 프랜시스 골턴 경
2. 과거의 우생학
1) 우생학 권장운동과 교육사업
2) 우생학과 히틀러
3. 자유시장 우생학
1) 강제성이 없는 우생학 정책: 싱가포르 리콴유의 경우
2) 제임스 왓슨:당신이 정말로 어리석다면 나는 그걸 질병이라고 할 것이다
3) 난자, 정자 시장과 우생학
4.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자들과 우생학
5. 자유주의 우생학의 진정한 도덕적 문제
6.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반대
1)위르겐 하버마스: 우생학은 자율과 평등의 자유주의 원칙들을 위배한다
2)한나 아렌트: 인류가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인류의 능력의 조건이다
2. 과거의 우생학
1) 우생학 권장운동과 교육사업
2) 우생학과 히틀러
3. 자유시장 우생학
1) 강제성이 없는 우생학 정책: 싱가포르 리콴유의 경우
2) 제임스 왓슨:당신이 정말로 어리석다면 나는 그걸 질병이라고 할 것이다
3) 난자, 정자 시장과 우생학
4.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자들과 우생학
5. 자유주의 우생학의 진정한 도덕적 문제
6.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반대
1)위르겐 하버마스: 우생학은 자율과 평등의 자유주의 원칙들을 위배한다
2)한나 아렌트: 인류가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인류의 능력의 조건이다
본문내용
특별히 적용할 문제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아이가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끝없이 치도록 강요하는 부모나, 해 뜰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테니스를 치도록 강요하는 부모 역시 아이의 인생에 일종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우생학적이든 환경적으로든 부모의 개입이 아이가 자신의 인생계획을 선택할 자유를 얼마나 약화하는 지 여부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자율과 평등의 윤리는 우생학의 무엇이 그른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자유주의적인 즉 후기형이상학적인 고려 사항의 한계를 넘어선 논변을 제시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자유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그 대상을 우리 맘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건 그 대상의 본질상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이 사람 손에 닿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자유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기원이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과 신이 될 것이다. 하버마스는 계속해서 “출생은 하나의 자연적 사실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작을 구성해야 한다는 개념적인 요건을 충족한다. 그런데 철학자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예외적인 철학자가 한나 아렌트이다. 그는 탄생성(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가장 일반적인 존재 조건이 출생과 사망, 탄생성과 사멸성이라고 했다.) 즉 인류가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를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인류의 능력의 조건이라고 본다.
하버마스의 요지는 우연성과 자유, 이 두 가지의 연관성이다. 즉 우리의 생명의 시작(탄생성)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다는 시작의 우연성과 그렇게 시작한 삶에 우리가 윤리적인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지유는 긴밀하게 연결된 요소라는 것이다. 하버마스 이론에서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유전공학으로 디자인해도 만든 아이와 우연히 태어난 아이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디자인한 부모의 개인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져서’ 태어났지만 후자의 경우는 ‘우연히’ 시작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계획 여하에 복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작”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논의 맥락에 더 큰 의미를 끌어들인다. 아이의 자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계없이 우연성을 없애고 출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충동은 아이를 디자인한 부모의 명예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의 규범이 지해하는 사회적 관행으로서의 부모 됨을 부패시킨다.
다시 논의의 출발이었던 ‘선물로 주어진 삶’이라는 개념으로 돌아왔다. 우생학적 부모됨은 아이에게 이렇다 할 해악을 끼치거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해도 거부할만한 일이다. 이런 일로 표현할 뿐 아니라 공고히 세우는 관점, 즉 세계에 대한 자세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복과 지배의 자세로, 인간의 권력과 성취가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어진 것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율과 평등의 윤리는 우생학의 무엇이 그른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자유주의적인 즉 후기형이상학적인 고려 사항의 한계를 넘어선 논변을 제시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자유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그 대상을 우리 맘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건 그 대상의 본질상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이 사람 손에 닿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자유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기원이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과 신이 될 것이다. 하버마스는 계속해서 “출생은 하나의 자연적 사실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작을 구성해야 한다는 개념적인 요건을 충족한다. 그런데 철학자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예외적인 철학자가 한나 아렌트이다. 그는 탄생성(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가장 일반적인 존재 조건이 출생과 사망, 탄생성과 사멸성이라고 했다.) 즉 인류가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를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인류의 능력의 조건이라고 본다.
하버마스의 요지는 우연성과 자유, 이 두 가지의 연관성이다. 즉 우리의 생명의 시작(탄생성)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다는 시작의 우연성과 그렇게 시작한 삶에 우리가 윤리적인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지유는 긴밀하게 연결된 요소라는 것이다. 하버마스 이론에서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유전공학으로 디자인해도 만든 아이와 우연히 태어난 아이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디자인한 부모의 개인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져서’ 태어났지만 후자의 경우는 ‘우연히’ 시작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계획 여하에 복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작”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논의 맥락에 더 큰 의미를 끌어들인다. 아이의 자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계없이 우연성을 없애고 출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충동은 아이를 디자인한 부모의 명예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의 규범이 지해하는 사회적 관행으로서의 부모 됨을 부패시킨다.
다시 논의의 출발이었던 ‘선물로 주어진 삶’이라는 개념으로 돌아왔다. 우생학적 부모됨은 아이에게 이렇다 할 해악을 끼치거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해도 거부할만한 일이다. 이런 일로 표현할 뿐 아니라 공고히 세우는 관점, 즉 세계에 대한 자세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복과 지배의 자세로, 인간의 권력과 성취가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어진 것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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