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삶을찾아서]나 자신이 생태적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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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생태적삶을찾아서]나 자신이 생태적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생태적 삶의 시대적 요구

Ⅲ. 나 자신이 생태적 삶을 살아간다면...
1. 에너지절약을 생활화 한다
2. 설거지할 때 수돗물 틀어놓고 하지 않는다
3. 현재 섭취하고 있는 육식의 양을 절반으로 줄인다
4. 로컬 푸드를 먹는다
5. 소비지향적 유행문화를 거부한다
6.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든다 (Do It Myrself)
7. 친환경 주택을 만든다
8. 친환경상품을 구입한다
9. 에너지 절약 제품인지 확인한다
10. 과포장된 물건을 사지 않는다
11.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한다
12. 불편을 즐긴다
13. 생태여행을 떠난다

Ⅳ.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되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것들을 재사용하는 것이 더 생태적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회와 같은 시민.환경단체에서 작은 텃밭상자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단체의 홈페이지에서 경작 방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지렁이 화분을 만들면 집에서 나온 음식 쓰레기도 처리하고 기름진 흙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일도 여의치 않으면 작은 화분에 꽃이라도 심자. 싹이 터서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생명과 교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옥상의 공간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하자. 100만 개의 녹색지붕을 조성하면 매년 59만5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햇빛을 흡수하고 빗물 유출량을 줄이며 냉난방 비용을 50%까지 줄여주는 단열효과까지 덤으로 얻는다. 옥상에 풀과 나무가 자라면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 신기하게도 벌과 나비, 새가 날아드는 광경을 볼 것이다.
Ⅳ. 결 론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진척되어온 일들을 하나의 사실로 하고, 현재의 사람들의 일반적 욕구를 또 하나의 사실로 하고 그러면서도 인간 존재가 궁극적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우주 진화의 최첨단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위에 말한 세 가지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의 진보를 위한 협조자이며 동맹군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미 산업사회의 도시적 삶이, 얼마나 반(反)환경적이고 반(反)생태적인지, '살림의 문화'가 아니라 '죽임의 문화'에 의해 끌려가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시골로 내려가 묵묵히 생태적 삶을 실천하면서 사는 이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꽤 있다. 그들은 목소리 높이지 않고 조용히 실천하면서 산다. 그런데 꼭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어중이떠중이 집단이나 단체, 정부 기관에서 '친환경'이니 '녹색'이니 하면서 확성기를 잡고 돌아다닌다. 언제부터 그렇게 녹색이었나? 정말 '녹색' 타령을 하려면 농업정책이나 근본적으로 생태지향적 농업구조가 되게끔 다 바꿔라.
초록색은 기술 공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초록의 실천은 '친환경 기술 공학적인' 영역이 핵심이 아니다. 기술공학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산업혁명 이래 전 지구적으로 자연 생태계를 착취하고 파괴하고 교란시켜놓은 것이 바로 근대 자본주의 문명과 근대적 기술공학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과 삶 자체도 황폐해졌다. 오죽 했으면 1920년대에 벌써 엘리어트(T. S. Eliot, 1888 1965)는 장시(長詩) 〈황무지 The Waste Land〉에서 불모(不毛)의 '잔인한 4월'을 노래했겠나. 산업문명 속에서 생태적 유기성이 갈갈이 찢겨진 자연환경과 인간정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록색을 지향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생산양식, 인간의 사회적 관계, 즉 사회 전체가 생태지향적으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근본 전제다. 그러기 위해서 생태주의적 사회혁명이 필요하다. 이 생태주의적 사회혁명에는 반드시 반(反)생태적 산업문명의 중핵인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포함한다. 이는 우리가 계속 모색하면서 실천해 나갈 장기과제이다.
현재와 같이 반 생태적 사회 환경으로 겹겹이 포위된 상황에서 우리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태주의적 사회혁명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그 혁명은 어느날 개벽처럼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내일 하루의 일상적 실천으로 온다. 갈 길이 멀어 큰 걸음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실천을 걸음걸이로 하여 가야 한다. 그 걸음걸이에 당장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거리가 먼 친환경 기술 공학적 생산물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결국 자본의 또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풍력 조력 태양광 등을 이용한 기술을 개발한다거나, 에너지 절약형의 어떤 상품을 개발하여 상품화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이런 기술 자원 대체 에너지의 연구 개발 발명도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환경친화적 생태적 방식으로 사회체제와 생산양식이 재구성되는 것이 선 조건이다. 그래야 그런 기술과 공학도 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시민 공동체 영역에서 공익적 기술 자원으로 연구되고 개발된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서울에 살고 있다. 또 4분의 1이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민국의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나머지 절반의 반이 또 대략 지방 대도시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남한 인구의 4분의 3 정도가 대도시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도시의 일상생활 구조 자체가 지극히 반 환경 반 생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서울 수도권 경우는 절반 이상이 아파트생활을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아파트 생활은 철저하게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이다. 초록의 환경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공간구조이다. 이를테면, 똥 한번 싸거나 오줌 한번 싸면 변기 물을 내린다. 수도권에 몰려사는 거의 대다수의 가구에서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을 단지 배변을 위해서 낭비하고 있다. 이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자원이 얼마나 소모되고 자연생태계가 파괴 되고 있는 줄 아는가? 이렇듯 대도시의 삶의 구조는 한마디로 겹겹이 철저하게 반환경적으로 반 생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포위되어 있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물건들의 홍수 속에서 쉽게 버리고 또 산다. 이 물건들의 생산과 소비 뒤에서 자연의 가공할 착취 파괴, 생태계 교란이 얼마나 심각하게 뒤따르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지향적 일상과 의식 속에서 초록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애당초 산업문명 자체가 철저하게 환경 파괴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환경 생태문제는 근본적인 수준으로 들어가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대도시에 사는 생각 있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초록의 삶을 실천할 수 방법이 어렵고 힘든 것은 아니다. 이미 얘기한 바와 같이 소소한 일상적 실천만이 생태주의적 사회혁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송명규, 현대 생태사상의 이해, 따님, 2004
박현찬, 원칙 있는 삶, 위즈덤하우스, 2008
권혁재, 우리 자연 우리의 삶, 법문사, 200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삶과 철학, 동녘, 2003
마티스 웨커네이걸 외, 이유진 외 역, 생태 발자국, 이매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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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24
  • 저작시기2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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