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序論)
Ⅱ. 본론 (本論)
1. 양난 이후의 사회변화
2. 수취체제의 개편 (전세의 정액화)
3. 서민 경제의 발전
4. 조선후기 사회의 변동
5. 조선후기의 문화
Ⅲ. 결론 (結論)
Ⅱ. 본론 (本論)
1. 양난 이후의 사회변화
2. 수취체제의 개편 (전세의 정액화)
3. 서민 경제의 발전
4. 조선후기 사회의 변동
5. 조선후기의 문화
Ⅲ. 결론 (結論)
본문내용
. 이러한 현상은 양난이후 납속책, 공명첩 이후 지속되었으며 조선시대 양반지배체제의 동요와 함께 전체적인 신분제도의 동요를 초래하여 조선후기 사회변화의 핵을 이루게 된다. 결국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서 법제적으로 신분제가 없어지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③ 중간계층의 신분상승 운동
서얼 : 임진왜란 이후 차별이 완화되었으며, 영정조 대를 거치면서 적극적인 신분상승운동을 주도하여 정조 때에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진출하였다.
중인 :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상승운동을 추구하였으나 정부의 거부로 실패하였으나 전문직으로 역할이 부각되어 외래문화 수용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근대 개항시대에 개화파를 형성하였고, 성리학적 가치체계에 도전하게 되었다.
2) 농민의식의 성장과 사회변혁의 움직임
① 양반지배체제의 동요 :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층의 경제적 능력의 향상으로 교육과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농민의식이 성장하게 되고 양반 지배층과 농민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농민들의 적극적인 항거 운동이 발생
② 세도정치 : 조선후기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과는 다르게 정치는 일당 전제화를 거치면서 특정가문이 정치를 장악하게 되면서 왕권은 미약하고 특정가문에 의해서 정치가 좌지우지되고, 관직의 매관매직 현상과 뇌물수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렇게 관직에 오른 자들은 가렴주구로 농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면서 민란의 기운이 고조되게 되었고, 1811년 홍경래의 난과 1862년 진주 임술 농민봉기가 발생하여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③ 예언사상과 천주교의 전파 : 말세의 도래나 조선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예언서인 정감록이 유행하였고, 현세의 불만에 대한 미륵신앙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17세기 서학으로 전래된 천주교는 인간평등과 내세 신앙으로 피지배층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조선의 주류학문인 성리학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거부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5. 조선후기의 문화
조선의 상품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는 서민들의 문화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키게 되면서 서민문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서당교육이 보급되면서 초등교육이 활성화 되고 한글소설이 보급되면서 서민문화는 더욱 확대되어 갔으며, 감정의 적나라한 표현과 양반 위선의 비판과 사회부정과 비리를 풍자하여 고발하는 형태가 그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판소리 : 창, 사설, 추임새로 넓은 계층의 지지를 받으며 12마당 중 현재 5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이 남아있다.
탈놀이 산대놀이 : 민중 오락화 되었으며, 승려들의 부패와 양반의 허구를 폭로 비판하였으며 서민 자신들의 존재 자각에 기여하였다.
한글소설과 사설시조 :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서민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였다.
풍속화 : 단원 김홍도 - 18세기 생활상을 활기차게 묘사
혜원 신윤복 - 양반, 부녀자들의 생활, 유흥, 남녀사이의 애정을 표현
시사 :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 풍자시인(김삿갓, 정수동) 활약
Ⅲ. 결론 (結論)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경제발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후기의 사회는 양난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사회 주도층이였던 양반이 분화 몰락하고 서민들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기 위한 준비단계로 경제력의 발전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신분상승을 도모하고 문화 활동과 여가를 위한 활동을 향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사회는 우리사회가 근대화를 위한 자발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치 분야에서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행할수 있었다면 우리 근대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양의 경우처럼 부르주아나 서민들에 의한 사회구조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근대화를 주체적으로 이루어내면서 더 나은 근대 사회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서는 일제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거나 일제의 침략을 단호히 물리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후기의 변화는 근대화를 위한 하나의 움직이였으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오히려 대원군 시기를 거치면서 반동적인 형태의 역사전개가 이루어짐으로서 근대화를 위한 시기를 실기(失期)를 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근대의 역사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가 되게 되었던 것 같다.
③ 중간계층의 신분상승 운동
서얼 : 임진왜란 이후 차별이 완화되었으며, 영정조 대를 거치면서 적극적인 신분상승운동을 주도하여 정조 때에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진출하였다.
중인 :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상승운동을 추구하였으나 정부의 거부로 실패하였으나 전문직으로 역할이 부각되어 외래문화 수용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근대 개항시대에 개화파를 형성하였고, 성리학적 가치체계에 도전하게 되었다.
2) 농민의식의 성장과 사회변혁의 움직임
① 양반지배체제의 동요 :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층의 경제적 능력의 향상으로 교육과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농민의식이 성장하게 되고 양반 지배층과 농민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농민들의 적극적인 항거 운동이 발생
② 세도정치 : 조선후기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과는 다르게 정치는 일당 전제화를 거치면서 특정가문이 정치를 장악하게 되면서 왕권은 미약하고 특정가문에 의해서 정치가 좌지우지되고, 관직의 매관매직 현상과 뇌물수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렇게 관직에 오른 자들은 가렴주구로 농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면서 민란의 기운이 고조되게 되었고, 1811년 홍경래의 난과 1862년 진주 임술 농민봉기가 발생하여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③ 예언사상과 천주교의 전파 : 말세의 도래나 조선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예언서인 정감록이 유행하였고, 현세의 불만에 대한 미륵신앙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17세기 서학으로 전래된 천주교는 인간평등과 내세 신앙으로 피지배층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조선의 주류학문인 성리학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거부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5. 조선후기의 문화
조선의 상품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는 서민들의 문화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키게 되면서 서민문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서당교육이 보급되면서 초등교육이 활성화 되고 한글소설이 보급되면서 서민문화는 더욱 확대되어 갔으며, 감정의 적나라한 표현과 양반 위선의 비판과 사회부정과 비리를 풍자하여 고발하는 형태가 그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판소리 : 창, 사설, 추임새로 넓은 계층의 지지를 받으며 12마당 중 현재 5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이 남아있다.
탈놀이 산대놀이 : 민중 오락화 되었으며, 승려들의 부패와 양반의 허구를 폭로 비판하였으며 서민 자신들의 존재 자각에 기여하였다.
한글소설과 사설시조 :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서민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였다.
풍속화 : 단원 김홍도 - 18세기 생활상을 활기차게 묘사
혜원 신윤복 - 양반, 부녀자들의 생활, 유흥, 남녀사이의 애정을 표현
시사 :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 풍자시인(김삿갓, 정수동) 활약
Ⅲ. 결론 (結論)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경제발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후기의 사회는 양난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사회 주도층이였던 양반이 분화 몰락하고 서민들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 시기였다. 그러기 위한 준비단계로 경제력의 발전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신분상승을 도모하고 문화 활동과 여가를 위한 활동을 향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사회는 우리사회가 근대화를 위한 자발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치 분야에서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행할수 있었다면 우리 근대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양의 경우처럼 부르주아나 서민들에 의한 사회구조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근대화를 주체적으로 이루어내면서 더 나은 근대 사회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서는 일제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거나 일제의 침략을 단호히 물리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후기의 변화는 근대화를 위한 하나의 움직이였으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오히려 대원군 시기를 거치면서 반동적인 형태의 역사전개가 이루어짐으로서 근대화를 위한 시기를 실기(失期)를 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근대의 역사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가 되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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