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러시아의 산업혁명(産業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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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독일
1) 독일 구체제의 성격
2) 독일 산업혁명의 배경
(농노해방, 길드제 폐지,
관세개혁, 관세동맹, 공업육성정책 )
3) 독일 산업혁명의 전개
-철도건설,
-독일공업의 발전 (섬유/석탄/철)
4) 독일 산업혁명의 성과
3. 러시아
1) 러시아 구체제의 성격
(전제군주제, 중산계층의 부재)
2) 러시아 산업혁명의 배경
3) 러시아 산업혁명의 전개
-철도건설
-러시아공업의 발전
(석탄/금속, 석유, 가내공장/노동시장, 수운, 금융, 공업독점체)
4) 러시아 산업혁명의 성과 및 한계
4. 맺음말

본문내용

들과 두드러지게 구별되었는데, 공업기업들에서의 작업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 기계와 기술을 취급하는 능력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규모 공장과 철도교통은 숙련공들을 필요로 했다.
④ 수운(水運)
철도와 함께 수운도 크게 발달했다. 19세기 중엽에는 사실상 자국의 함대가 없이 운송을 위해 외국선박을 이용했던 러시아는 19세기 마지막 수십 년 동안 함선의 수를 50척에서 520척으로 증가시켰다.
⑤ 금융
금융시스템의 미발달, 상업은행들의 부재가 시장관계 발전에 장애로 작용했다. 1860년에 설립된 국립은행은 주로 토지를 담보로 대지주들에게 대출을 제공했다. 즉 대출은 생산 분야와 거의 관계가 없었다. 1860년대 말에서 1870년대 초에 은행업계에 실질적인 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철도건설과 공업의 급속한 발달은 개별 기업가들의 능력을 초과하는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주식회사의 업무영역이 급속하게 발전했다. 대개 혁명 전까지 러시아에는 총자본금이 7,200만 루블에 달하는 78개의 주식회사들이 있었다.
러시아의 대규모 자본축적 과정은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철도건설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총자본 가운데 단지 14% 정도만 공업에 투자되었던 반면, 철도운송에는 60% 이상이 투입되었고, 이것은 이 부문의 급속한 성장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은행업은 민간자본을 동원함에 있어 적지 않게 중요한 분야였다. 1864년에서 1873년에 이르는 동안 약 40개의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들이 설립되었는데, 빼쩨르부르그의 민간상업은행(1864년), 모스크바상인은행(1866년)도 이에 속한다. 더욱이 이들은 처음부터 국가의 총자본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미 1875~81년에 5대 거대은행이 러시아 전체 은행 자본의 약 절반을 차지했고, 12대 거대 은행이 75% 까지 차지했다. 국립 귀족토지은행(1885년) 같은 토지신용 은행들이 존재했다는 점이 이 시기 금융제도의 독특한 특징이었는데, 이러한 은행들은 여전히 대부금을 농업부문에서의 생산적 이용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⑥ 공업 독점체
1880년대에는 러시아 최초의 공업 독점체들과 국제은행과 러시아대외무역은행이라는 두 개의 주식회사형 은행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카르텔이 출현했다(1881년). 그러나 러시아 최로의 독점제 연합은 공업이 아닌 보험업에서 탄생했다. 즉 1875년에 8개의 보험회사들이 공동요금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후 자신들의 조건을 강요하기 위해 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보험회사들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업 독점체는 5개의 강철 레일 생산 공장들이 5년 기한으로 레일 제작자 동맹을 결성했던 1882년에 설립되었다. 이 연합은 가장 단순한 신디케이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철도용 레일 제조를 위한 주문이 거의 전체를 통제했다.
1888년 철압연 공장, 철사 제조공장 그리고 뿌질로프 금속공장들 사이에 가격과 시장분할에 대한 카르텔 협정이 체결되었다. 석유산업에서 노벨 형제들의 기업과 로뜨쉴드사가 참여한 신디케이트가 형성되었고, 그 뒤 1897년 두 회사는 국제석유협정의 참여사가 되었다.
4) 러시아 산업혁명의 성과 및 한계
알렉산더 2세의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은 서구식 입헌 군주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구화를 추진하여 러시아를 다시 세계의 열강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의회의 견제 속에 민주적으로 국정을 시행하는 서구의 입헌 군주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전제주의의 군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내용은 러시아 정신을 지키면서 외양은 서구식으로 꾸미겠다는 의도였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 근대화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 후 알렉산더 3세의 통치하에서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조세, 토지 상환금, 농산물 수출 대금을 산업화에 충당하고, 외국으로부터의 거액의 차관을 산업 자본화함으로써 산업화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였다. 이와 함께 서유럽의 기술이 도입되어 금융기관이 설치되었고 철도망(특히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급속한 확충이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1880년대와 1890년대에 걸쳐 러시아의 공업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하였고, 농업 노동자의 수도 급증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공업발전은 계속되어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에 러시아 공업 총생산은 세계 5위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짜르 정부의 근대화 작업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으며, 산업화와 개혁의 결과로 이루어진 변화들은 그 자체가 구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공업은 몇몇 도시와 공업 중심지에 집중되었고, 이것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동자의 처지는 농노와 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대부분의 산업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주거 환경에 고통을 받았다. 짜르 정부가 추진한 공업화는 근대적인 노동자 계층을 형성하여 이들을 잠재적인 혁명 세력으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공업화 그 자체가 농업 분야와 커다란 불일치 내지는 대립을 가져왔다.
5. 맺음말
지금까지 독일과 러시아의 구체제의 성격, 산업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독일과 러시아의 산업혁명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두 나라의 특징을 살펴보면 산업혁명이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위로부터의 도입과 이식을 통하여 순전히 국가주도로 산업혁명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후발국가이면서 국가주도로 이루어졌기에 산업혁명의 기간이 대폭 단축되어 급속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철저히 위로부터의 개혁이기에 생겨나는 한계 또한 많이 드러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산업혁명 이후의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독일 영방의 통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독일이 유럽에서 강국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근대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 농노해방으로 인한 노동력증가와 함께 이들의 농촌에서 도시로의 갑작스러운 이농이 노동자들 사이에 뿌리 깊은 불만과 호전적인 계급의식을 주입시켰으며 이러한 계급의식의 증대는 이후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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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28
  • 저작시기2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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