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르네상스(르네상스시대)의 작가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h(1452 - 1519)
2.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1475 - 1564)
3. 라파엘로 산티 Raffaello Santi(1483 - 1520)
4. 지오르지오네 Giorgione(1478 - 1510)
5. 티치아노 Tiziano(1477 - 1576)
6. 그뤼네 발트 Matthis Grunnewald
7. 뒤러 Albrecht Durer(1471 - 1528)
8.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1467 - 1543)
9.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Albrecht Altdorfer(1480 - 1538)
Ⅱ. 바로크(바로크시대)의 작가
1. 카라밧치오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1573 ~ 1610)
2. 카랏치 Annibale Carracci(1560 ~ 1609)
3. 베르니니 Lorenzo Bernini(1598 ~ 1680)
4. 루벤스 Rubens, Peter Paul(1577 ~ 1640)
5.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1599 ~ 1660)
6. 푸생
7. 프란스 할스 Frans Hals(1580~1666)
8. 렘브란트 반 레인 Rembrant van Rijn(1606 ~ 1669)
9. 야콥 반 루이스달 Jacob van Ruysdal(1628 ~ 1682)
10. 얀 스테엔 Jan Steen(1626 ~ 1679)
11.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 Jan vermeer van Delft(1623 ~ 1975)
Ⅲ. 인상주의(인상파) 작가
1. 모네[1840.11.14 ~ 1926.12.5]
2. 마네[1832.1.23 ~ 1883.4.30]
3. 드가[1834.7.19 ~ 1917.9.17]
4. 피사로[1830.7.10 ~ 1903.11.13]
5. 르느와르[1841.2.25 ~ 1919.12.3]
6. 고흐[1853.3.30 ~ 1890.7.29]
7. 세잔[1839.1.19 ~ 1906.10.22]
8. 고갱[1848.6.7 ~ 1903.5.8]
9. 쇠라[1859.12.2 ~ 1891.3.29]
10. 시냐크[ 1863.11.11 ~ 1935.8.15]
11. 폴 세잔느[Paul Cezanne / 1839~1906]
12.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 / 1853~1890]
13. 폴 고갱[Paul Gauguln / 1848~1903]
Ⅳ. 낭만주의(낭만파) 작가
1.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
2.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
3. 외젠 들라크루아(1799~1863)
4. 도미에(1808~1879)
5. 존 컨스터블(1776~1837)
6. 터너(1775~1851)
7. 토마스 콜(1801~48)
참고문헌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h(1452 - 1519)
2.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1475 - 1564)
3. 라파엘로 산티 Raffaello Santi(1483 - 1520)
4. 지오르지오네 Giorgione(1478 - 1510)
5. 티치아노 Tiziano(1477 - 1576)
6. 그뤼네 발트 Matthis Grunnewald
7. 뒤러 Albrecht Durer(1471 - 1528)
8.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1467 - 1543)
9.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Albrecht Altdorfer(1480 - 1538)
Ⅱ. 바로크(바로크시대)의 작가
1. 카라밧치오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1573 ~ 1610)
2. 카랏치 Annibale Carracci(1560 ~ 1609)
3. 베르니니 Lorenzo Bernini(1598 ~ 1680)
4. 루벤스 Rubens, Peter Paul(1577 ~ 1640)
5.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1599 ~ 1660)
6. 푸생
7. 프란스 할스 Frans Hals(1580~1666)
8. 렘브란트 반 레인 Rembrant van Rijn(1606 ~ 1669)
9. 야콥 반 루이스달 Jacob van Ruysdal(1628 ~ 1682)
10. 얀 스테엔 Jan Steen(1626 ~ 1679)
11.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 Jan vermeer van Delft(1623 ~ 1975)
Ⅲ. 인상주의(인상파) 작가
1. 모네[1840.11.14 ~ 1926.12.5]
2. 마네[1832.1.23 ~ 1883.4.30]
3. 드가[1834.7.19 ~ 1917.9.17]
4. 피사로[1830.7.10 ~ 1903.11.13]
5. 르느와르[1841.2.25 ~ 1919.12.3]
6. 고흐[1853.3.30 ~ 1890.7.29]
7. 세잔[1839.1.19 ~ 1906.10.22]
8. 고갱[1848.6.7 ~ 1903.5.8]
9. 쇠라[1859.12.2 ~ 1891.3.29]
10. 시냐크[ 1863.11.11 ~ 1935.8.15]
11. 폴 세잔느[Paul Cezanne / 1839~1906]
12.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 / 1853~1890]
13. 폴 고갱[Paul Gauguln / 1848~1903]
Ⅳ. 낭만주의(낭만파) 작가
1.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
2.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
3. 외젠 들라크루아(1799~1863)
4. 도미에(1808~1879)
5. 존 컨스터블(1776~1837)
6. 터너(1775~1851)
7. 토마스 콜(1801~48)
참고문헌
본문내용
뺨에 나타난 황금빛 색조, 곱슬머리의 하이라이트, 태양 광선의 작열하는 빛 등이 훨씬 자극적으로 두드려져 표현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으며 자연과 과학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호기심은 그의 미술 작품에 잘 반영되어 그 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면서 생물, 지리학 그리고 수많은 석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으며 기계학, 광학, 물리학과 수학에도 능통했다. 그는 지도도 그렸으며 전쟁 도구, 비행기구, 낙하산을 설계했다. 그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아마도 이름난 물리학자나 수학자 혹은 의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지식은 특히 회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그는 당시 피렌체 근방을 자주 덮는 안개를 잘 표현했다. 그는 인체를 구조에 합당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얼굴의 표정과 인체에 깃들인 감정까지도 그려냈다.
반면에 레오나르도가 완성한 회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조각 작품과 건물의 설계도를 그렸지만 제작하지는 못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완성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모나리자는 실제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다. 이 피렌체 출신의 리자 조콘다라는 여인의 초상화는 레오나르도가 창안한 아주 새로운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여인이 열린 창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다. 그 뒤로 얇은 베일로 가려진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원경은 모든 것이 불분명한데, 안개가 자주 끼는 피렌체 근방의 낮 풍경을 그린 듯하다. 빛은 오직 여인의 얼굴과 가슴 윗자락 그리고 의자의 팔걸이에 조용히 겹쳐 있는 양손 위에만 떨어진다. 소매의 보시락거리는 주름은 의상이 얼마나 귀한 천으로 만든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조용한 얼굴의 두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하다. 여인은 입을 다문 채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이와는 달리 어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는 미묘한 빛과 그림자, 입가와 눈가를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표현하여 이 여인상에 영혼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동방박사의 예배
르네상스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프레스코화가 아닌 그가 새롭게 시도한 유화템페라로 그린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표현이 뛰어나다. 전성기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전시대의 거장 만테냐의 작품과 비교하면 건물과 인간을 대치되게 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방면 레오나르도는 인물의 구도를 정하고 그다음 보조 역할로서의 건축의 모티브를 정하였다.
* 최후의 만찬
밀라노의 한 식당에 그려진 것인데, 이 그림이 수도원 식당에 걸렸을 때의 반응은 굉장한 것이었다 한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눈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사용되었고, 뒤로 상징적 건축은 구도의 완벽한 균형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 그림의 내용은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그림으로 옮긴 것인데, 그는 가장 치밀한 계산아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한 무리의 군상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
* 모나리자
이런 그의 그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가장 간결하게 그린 그림으로 나타낸 그의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대한 논의는 끊임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래서 이 그림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 그림이 가진 놀라울 정도의 살아있는 느낌을 보는 사람이 갖는다는 것이다. 피렌체의 한 부인을 그린 이 그림은 당시로는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을 이 작품을 유명하도록 만든 것은 스푸마토라는 특이한 채색법의 사용에 있다. 스푸마토란 한 형태와 다른 형태가 뒤섞여 들어가는 듯 한 채색법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상상할 거리를 남겨 놓는다. 다빈치는 이런 신비스런 미소를 눈과 입꼬리에 남겨 놓음으로서 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그의 미술이 마침내 도달한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2.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1475 - 1564)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는 대조적인 사람, 미켈란젤로는 그 당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반영해 주는 작품을 남긴 도메리코 키를란다요로부터 3년 동안 도제 수업을 받았다. 그는 그로부터 프레스코화의 확고한 테크닉과 소묘의 철저히 기초를 배우고 이 성공한 스승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당시 세도가였던 메디치가의 소장품들을 즉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조각들을 연구했다. 그는 이로부터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하는 고대의 스승의 비법을 알았으며 인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구, 인체 해부학을 탐구하였다. 그도 역시 다빈치처럼 화가인 동시에 조각가, 건축가, 시인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라고는 과학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빈치가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봤을 때, 미켈란젤로는 인간을 거의 신과 같은 독특한 존재로 보았다. 다빈치가 조용히 사색하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다면 그에게 영감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으며 이런 영감은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예술가는 신과도 같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가며 자신의 강한 개성과 끊임없이 싸웠던 그의 가장 뛰어난 역량은 그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그의 조각상에서 볼 수 있다. 프레스코화인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그려진다. 그 성당은 그 전시대의 유명한 화가들 보티첼리, 그의 스승인 기를란디요 등의 거장들의 그림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궁형 천장만은 비어 있어 교황이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을 것을 제안함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 작업은 근 4년 동안 조수를 쓰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그렸다. 내용은 성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데, 천장 복판에는 창세기와 노아의 이야기를, 창문 사이 벽에는 예언자와 많은 수의 성서 속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그 중에서 성서 테마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은 천장의 중앙 부분에 그려진 아담의 창조이다. 여기서 전시대의 지옷토와 마사치오를 연상하기도 하지만 전에 볼 수 없던 강렬한 감동이 있다. 최초의 인간아담이 잠에서 깨어난 듯 조물주 신의 손길을 느끼는 모습은 차
레오나르도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으며 자연과 과학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호기심은 그의 미술 작품에 잘 반영되어 그 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면서 생물, 지리학 그리고 수많은 석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으며 기계학, 광학, 물리학과 수학에도 능통했다. 그는 지도도 그렸으며 전쟁 도구, 비행기구, 낙하산을 설계했다. 그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아마도 이름난 물리학자나 수학자 혹은 의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지식은 특히 회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그는 당시 피렌체 근방을 자주 덮는 안개를 잘 표현했다. 그는 인체를 구조에 합당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얼굴의 표정과 인체에 깃들인 감정까지도 그려냈다.
반면에 레오나르도가 완성한 회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조각 작품과 건물의 설계도를 그렸지만 제작하지는 못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완성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모나리자는 실제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다. 이 피렌체 출신의 리자 조콘다라는 여인의 초상화는 레오나르도가 창안한 아주 새로운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여인이 열린 창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다. 그 뒤로 얇은 베일로 가려진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원경은 모든 것이 불분명한데, 안개가 자주 끼는 피렌체 근방의 낮 풍경을 그린 듯하다. 빛은 오직 여인의 얼굴과 가슴 윗자락 그리고 의자의 팔걸이에 조용히 겹쳐 있는 양손 위에만 떨어진다. 소매의 보시락거리는 주름은 의상이 얼마나 귀한 천으로 만든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조용한 얼굴의 두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하다. 여인은 입을 다문 채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이와는 달리 어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는 미묘한 빛과 그림자, 입가와 눈가를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표현하여 이 여인상에 영혼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동방박사의 예배
르네상스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프레스코화가 아닌 그가 새롭게 시도한 유화템페라로 그린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표현이 뛰어나다. 전성기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전시대의 거장 만테냐의 작품과 비교하면 건물과 인간을 대치되게 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방면 레오나르도는 인물의 구도를 정하고 그다음 보조 역할로서의 건축의 모티브를 정하였다.
* 최후의 만찬
밀라노의 한 식당에 그려진 것인데, 이 그림이 수도원 식당에 걸렸을 때의 반응은 굉장한 것이었다 한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눈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사용되었고, 뒤로 상징적 건축은 구도의 완벽한 균형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 그림의 내용은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그림으로 옮긴 것인데, 그는 가장 치밀한 계산아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한 무리의 군상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
* 모나리자
이런 그의 그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가장 간결하게 그린 그림으로 나타낸 그의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대한 논의는 끊임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래서 이 그림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 그림이 가진 놀라울 정도의 살아있는 느낌을 보는 사람이 갖는다는 것이다. 피렌체의 한 부인을 그린 이 그림은 당시로는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을 이 작품을 유명하도록 만든 것은 스푸마토라는 특이한 채색법의 사용에 있다. 스푸마토란 한 형태와 다른 형태가 뒤섞여 들어가는 듯 한 채색법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상상할 거리를 남겨 놓는다. 다빈치는 이런 신비스런 미소를 눈과 입꼬리에 남겨 놓음으로서 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그의 미술이 마침내 도달한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2.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1475 - 1564)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는 대조적인 사람, 미켈란젤로는 그 당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반영해 주는 작품을 남긴 도메리코 키를란다요로부터 3년 동안 도제 수업을 받았다. 그는 그로부터 프레스코화의 확고한 테크닉과 소묘의 철저히 기초를 배우고 이 성공한 스승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당시 세도가였던 메디치가의 소장품들을 즉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조각들을 연구했다. 그는 이로부터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하는 고대의 스승의 비법을 알았으며 인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구, 인체 해부학을 탐구하였다. 그도 역시 다빈치처럼 화가인 동시에 조각가, 건축가, 시인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라고는 과학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빈치가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봤을 때, 미켈란젤로는 인간을 거의 신과 같은 독특한 존재로 보았다. 다빈치가 조용히 사색하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다면 그에게 영감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으며 이런 영감은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예술가는 신과도 같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가며 자신의 강한 개성과 끊임없이 싸웠던 그의 가장 뛰어난 역량은 그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그의 조각상에서 볼 수 있다. 프레스코화인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그려진다. 그 성당은 그 전시대의 유명한 화가들 보티첼리, 그의 스승인 기를란디요 등의 거장들의 그림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궁형 천장만은 비어 있어 교황이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을 것을 제안함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 작업은 근 4년 동안 조수를 쓰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그렸다. 내용은 성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데, 천장 복판에는 창세기와 노아의 이야기를, 창문 사이 벽에는 예언자와 많은 수의 성서 속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그 중에서 성서 테마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은 천장의 중앙 부분에 그려진 아담의 창조이다. 여기서 전시대의 지옷토와 마사치오를 연상하기도 하지만 전에 볼 수 없던 강렬한 감동이 있다. 최초의 인간아담이 잠에서 깨어난 듯 조물주 신의 손길을 느끼는 모습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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