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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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성씨의미
2. 성의 분화
3. 본관의 역사와 생성과정

본문내용

됐다.
그러나 민족의 역사를 논할 때 성씨에 대한 자존감은 별로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성씨에 대한 애착 또한 강하지 않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이후 계급을 타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했으나 결과는 일본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돌쇠, 밤쇠, 바우, 개똥이, 향단이, 삼월이, 오월이” 등은 일본처럼 새로이 성씨를 만들지 않고, 이들 대부분이 그 동네 지주나 양반들에게 부탁, 성씨를 얻어 와서는 관청에 신고했다.
이때에 김(金) 씨나 이(李), 박(朴)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특정 성씨가 총 인구의 20%를 넘어 가는 경우는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다. 이후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예전에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개똥이, 바우, 밤쇠”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게다가 누구나 “정승, 판서의 몇 대 손”이 되어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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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15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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