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효의 중요성
Ⅱ. 효의 근거
Ⅲ. 효의 본질
Ⅳ. 효의 실천
Ⅴ. 현대적인 효 교육
Ⅵ. 가정과 학교의 역할
<참고문헌>
Ⅱ. 효의 근거
Ⅲ. 효의 본질
Ⅳ. 효의 실천
Ⅴ. 현대적인 효 교육
Ⅵ. 가정과 학교의 역할
<참고문헌>
본문내용
천 양식이고, 형제 친지들이 같이 모여
집안의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도우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 효의 길이 아닌가 싶다.
Ⅵ. 가정과 학교의 역할
효는 부모의 보살핌과 관심에 대한 자녀로서의 보답이다. 때문에 효는 일단 부모의 그러한 보살핌과 관심을 전제로 한다. 즉 효는 부모의 ‘낳아줌’을 근거로 한 자녀의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보답은 아니다. 특히 신세대 젊은이들은 대뜸 부모로서의 선행 조건을 먼저 따진다.
사실 과거 선현들 역시 무조건적인 효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공자는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고 역설했으며,[<論語> 顔淵篇] 석가모니도 “자녀의 악을 용서하지 않고 사랑이 뼈 속에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善生經>] 때문에 중국의 대표적인 성인(聖人)인 순(舜)의 효도는 오늘날에 있어서의 그 의미가 많이 줄어 있다. 즉 그는 아버지가 맹인이었고 어머니는 계모였다. 그는 계모와 이복 동생의 미움을 사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극복하면서도 계모에 대한 효를 다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문자 그대로 ‘성인(聖人)’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즉 오늘날의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이와 같은 사례가 오히려 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 줄 수도 있다.
아울러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청소년의 탈선 원인이 부모의 지나친 간섭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즉 ‘내 자식만은......’ 또는 ‘남들도 자식에게 저렇게 해주는데......’ 등과 같은 지나친 욕심이나 경쟁심은 오히려 효로부터 자녀를 멀어지게 만든다. 이에 맹자(孟子)의 다음과 같은 충고는 우리의 부모들과 학교에서의 그 대역(代役)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충분히 살펴야 할 것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말했다. “군자(君子)가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 어른이 자식에게 바르게 행하도록 가르치면서도, 어른이 바르게 행하지 못하면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상하게 된다. 옛날에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던 것은 부모 자식 간에 잘 하라고 책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잘 하라고 책망하면 서로 멀어지고, 멀어지면 좋지 못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孟子> 離婁 上篇]
<참고문헌>
김기태 외. 2007. 노인복지실천론. 양서원
김태현. 2006. 노년학. 학문사
이종령. 2001. 고전문학. 어문각
집안의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도우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 효의 길이 아닌가 싶다.
Ⅵ. 가정과 학교의 역할
효는 부모의 보살핌과 관심에 대한 자녀로서의 보답이다. 때문에 효는 일단 부모의 그러한 보살핌과 관심을 전제로 한다. 즉 효는 부모의 ‘낳아줌’을 근거로 한 자녀의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보답은 아니다. 특히 신세대 젊은이들은 대뜸 부모로서의 선행 조건을 먼저 따진다.
사실 과거 선현들 역시 무조건적인 효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공자는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고 역설했으며,[<論語> 顔淵篇] 석가모니도 “자녀의 악을 용서하지 않고 사랑이 뼈 속에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善生經>] 때문에 중국의 대표적인 성인(聖人)인 순(舜)의 효도는 오늘날에 있어서의 그 의미가 많이 줄어 있다. 즉 그는 아버지가 맹인이었고 어머니는 계모였다. 그는 계모와 이복 동생의 미움을 사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극복하면서도 계모에 대한 효를 다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문자 그대로 ‘성인(聖人)’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즉 오늘날의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이와 같은 사례가 오히려 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 줄 수도 있다.
아울러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청소년의 탈선 원인이 부모의 지나친 간섭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즉 ‘내 자식만은......’ 또는 ‘남들도 자식에게 저렇게 해주는데......’ 등과 같은 지나친 욕심이나 경쟁심은 오히려 효로부터 자녀를 멀어지게 만든다. 이에 맹자(孟子)의 다음과 같은 충고는 우리의 부모들과 학교에서의 그 대역(代役)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충분히 살펴야 할 것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말했다. “군자(君子)가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 어른이 자식에게 바르게 행하도록 가르치면서도, 어른이 바르게 행하지 못하면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상하게 된다. 옛날에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던 것은 부모 자식 간에 잘 하라고 책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잘 하라고 책망하면 서로 멀어지고, 멀어지면 좋지 못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孟子> 離婁 上篇]
<참고문헌>
김기태 외. 2007. 노인복지실천론. 양서원
김태현. 2006. 노년학. 학문사
이종령. 2001. 고전문학. 어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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