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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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실존주의 철학가 사르트르

2. 작품 요약 정리

3. 사르트르 문학의 현실참여 의지

4.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5.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

본문내용

폭로가, 단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졌을 때만 가능한 것임을 안다. 작가는 사회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상황에 대한 중립적이고 비당파적인 그림을 펼쳐 보이려는 불가능한 꿈을 포기했다. (중략) 작가는 세계를 포기하기를 선택했고, 특히 사람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하기를 선택했고, 이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벌거벗겨진 대상에 직면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들의 전적인 책임을 깨달아 그 책임을 그들 자신이 짊어질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사르트르는 그 작품이 객관적 실존을 얻을 수 있도록 독자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중시하였는데, 그것은 작품이 자유로운 존재에 의해 고용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인간에게 그의 ‘자유’를 환기시켜 주고 자유의 도움이 없다면 작품은 결코 완성될 수 없고 자유로운 독자는 작품을 완성시켜 주는 존재이다.
“독자의 감동은 대상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외적 실재성 또한 독자의 감동을 위한 조건도 아니기 때문에, 감동의 영원한 근원은 자유 속에 있다.”
사르트르의 위와 같은 술회는 그러한 사유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작가와 독자가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가운데 얽혀 있다. 사르트르는 예술 일반에 대하여 개별적 대상들과 사건들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호소’하는 것은 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요구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에게 존재의 총체성을 회복시키고, 인간성을 우주 속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다. 즉, 작가의 앙가주망(engagement, 현실참여)은 독자들의 자유에 호소하여 사회적 세계를 변화시키려 한다. 인간 사회 또한 인간의 자유와 책임 속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4.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존주의를 비난하나 실존주의는 인간생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이론이며, 그밖에도 모든 진리와 모든 행동이 인간적인 환경과 주체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이론이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실존주의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을 자연주의자라 부르는데 그것은 추악한 것과 실존주의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며, 보잘 것 없는 격언이나 되풀이해서 뇌까리는 사람들, 다소 불유쾌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할 수 없지>하고 체념하는 사람들, 사실주의 타령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실존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실존주의의 첫걸음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에 대한 소유자가 되게 하고, 자기 존재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실 사람이란 자기의 인생 속에 자기를 구속하여 자기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고 그 모습 이외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현실만이 중요한 것이고 꿈이나 기대나 희망은 단지 헛된 꿈이거나 쓸데없는 기대이거나 사라진 희망으로서 인간을 정의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킨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인간을 행동에 의해서 정의하고 인간을 비관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므로 정적주의 철학으로 간주될 수 없다. 반면에 모든 유물론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을 물질로 취급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테이블이나 의자나 돌을 형성하고 있는 현상과 물질의 집합체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서 정해진 반응의 집합체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물질계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가치들의 총체로서의 인간계 형성인 것이다.
결국 실존주의가 보여 주고자 열망하는 것은 자유스러운 참여의식의 절대적 성격의 연관인바, 그 참여의식으로써 각 개인은 어떠한 인간형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현실화하는 것이며 그 참여의식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항상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내부를 향해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해방이라던가 어떤 특유의 실현이 있는 목적을 항상 자기 바깥에서 찾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무신론적 견해에서 모든 결과를 끄집어내려는 일관성 있는 노력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발견해야 하는 것이며, 설령 그것이 신의 존재에 관한 수용가능한 증명일지라도 인간은 인간 자신에 의해서 밖에는 구원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하나의 낙관주의이자 행동의 이론이다.
5.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은 사실상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체계적 지식을 제공해주는 책도, 문학 텍스트 분석의 실용적 지침서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문학 감상을 세밀한 결들을 보듬는 문학 애호가적 태도는 눈을 씻고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책은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제들을 살펴보라. 거기엔 시의 운율이니, 소설의 서사성이니, 희곡 속의 성격문제니 하는 것들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1947년의 작가의 상황" 등의 소제목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예술의 순수성이나 자율성보다는 예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써의 실천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사르트르의 문학론은 예술을 계급투쟁의 도구화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상습적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사르트르의 때 지난 듯한 함성 속에서 어떤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시대착오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도대체 쓴다는 것의 의미를 거세해 버린 채 어떻게 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쓴다는 일의 운명을 거둬내고 쓰여진 다음의 일에만 천착하는 호사가적 취미는 솔직히 구역질이 난다. 요즘처럼 피상적이고 장식적인 말들이 난무하는 말들의 난장에서 사르트르의 힘은 다시 돌아볼 가치가 충분한 듯 하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대안을, 민주주의를,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장소는 언제 달아나버릴지 모른다. 따라서 문학에서 실존주의적 입장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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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10.10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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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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