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명승고적]우리나라 명승고적& 명승고적에 관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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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명승고적 정의

2. 우리나라의 명승고적
2-1. 낙화암
2-2. 경주 남산
2-3. 문경새재
2-4. 쌍계사
2-5. 팔공산

3. 명승고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 문제점
1) 건물이나 시설물의 훼손
◈ 개선방안

4. 명승고적의 상품화 방안

5. 결론

본문내용

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 통일약사여래대불
대지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33,34번지
지역지구 전통 사찰지역, 자연환경 보전지역, 공원지역
부지면적 33,050㎡(10,000평)
불사착공일 1990년 10월 26일
통일약사대불 점안 대법회일 1992년 11월 27일
석조대불 규모 석조대불 높이 : 17m
석조대불 최대둘레 : 16.5m
좌대 높이 : 13m
지하암반에서 참배단까지 : 3m 총 33m
석조대불 원석 규모 : 8등분으로 조성되며 약 300톤 원석 으로 조각됨
불상원석 : 2,000톤(전북 익산군 황동석)
좌대원석 : 3,000톤. 총 5,000톤
원석을 300km 옮겨서 조성된 석불중 세계 최대임
* 의의
봉황문을 지나 좌측 산 기슭으로 나있는 백팔 계단을 오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이 있다. 이 불상은 분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치유하여 우리 민족이 하나됨을 염원하며 세운 불상이다. 정면에는 지상 3층, 지하 2층, 연건평 1200평에 달하는 통일대전이 있다. 1990년에 발원하여 2년에 걸쳐 봉안된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법신 안에는 부처님 전신사리 2과를 모셨으며, 그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으로 야사신앙을 숭앙하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찍이 동화사는 약사여래십이대 원력으로 생멸의 고통을 그치게 하는 약사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약사여래의 공덕과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에게 벼에 따라 치료하여 마침내 청정법신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갈등과 대립이 잔존해 있을 뿐 아니라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세대와 집단간에 깊이 패인 골이 있다.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자비와 화합의 불길로 녹여 버리고, 일승과 원융정신으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통일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데 이 약사여래 조성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아울러 약사여래의 구병사상은 오늘의 산업사회가 낳은 모든 병폐를 치유하고 전도된 인간의 가치를 회복케 할 것이며, 십이대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의 현실속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괴로움과 슬픔과 고뇌가 없는 이상세계인 불국토를 이루게 할 것이다.
칠천만 겨레가 통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을 통일약사대불에 모아 분단의 병을 치유하고 민족자존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데 그 조성의 큰 뜻이 있는 것이다.
◈ 대웅전
동화사 대웅전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법당이 다. 봉서루 누대 밑을 지나 절 안마당으로 들 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 재 건물을 조선 후기 영조 3년(1727)에서 영조 8년(1732)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대웅전 내부 불단에 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또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 비로암
비로암은 동화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비로암 대적광전에는 신라 흥덕왕 때 심지 대사가 조성한 보물 제244호 석조비로자나 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적광전 앞에는 역시 신라 흥덕왕 때 조성한 보물 제247호 삼층 석탑이 있다.
◈ 염불암
지금의 법당 뒤에 있는 큰바위에서 염불소 리가 들려 이곳에 암자를 짓고 염불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신라 경순왕 2년(928) 영 조 선사가 창건하고 1962년 개축하였다.
극락전 오른쪽 뒤에는 염불바위가 있다. 염 불바위의 남면에는 문수보살, 서면에는 아미 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문수보살이 조각하였다고 전해 진다. 법당 앞 청석탑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 되어 있다.
◈마애불좌상
동화사 마애불좌상은 남쪽 입구 암벽 위에 새겨져 있다.
자비로운 모습으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이 마애불좌상은 몸체가 106cm로 아담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마애불좌상의 두 발은 오른쪽 다리를 대좌 위에 비스듬히 올 려 놓은 특이한 유희좌를 취하고 있고, 대좌에는 구름무늬를 새 겨 사실적으로 표현해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조각기법이 화려하고 세련되어 9세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 는 빼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마애불좌상은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심지 대사가 직접 새 겼다고 전해진다.
◈ 당간지주
동화사 당간지주는 인악 대사 비각 옆에 있다.
당간지주는 폭 74cm, 두께 34cm, 높이 3.1m 크기의 화강암으로 된 두 돌기둥이 동서로 마주서 있다.
당간은 본래 사찰의 입구에 꽂는 기당의 일종으로 사찰 에서 기도와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꼭대기에 깃 발을 단다.
동화사 당간지주는 동화사의 창건 연대와 비슷한 통일 신라 하대의 작품으로 추정하며, 보물 제254호로 지정되 어 있다.
3. 명승고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 문제점
1) 건물이나 시설물의 훼손
- 개방으로 인한 인위적인 훼손이 심각하다. 그것을 관리하는 인력이 부족하다.
2) 홍보의 미흡
- 유물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상품코너가 부족하다.
3) 젊은 계층에서의 명승고적에 대한 거리감
◈ 개선방안
1) 사람들의 자연보전에 대한 사고를 바꿈
2) 안내책자나 안내표지판을 늘리고 명승고적에 대한 캐릭터 상품을 개발
3) 관리인력을 보충
4) 체계적인 인력을 위한 양성교육이 필요
5) 명승고적에 대한 인식 전환
4. 명승고적의 상품화 방안
1) 인지도가 높거나 유명연예인을 통한 홍보
2) 젊은 사람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
- ex) 티셔츠, 인형 등
3) 축제를 통한 좀 더 구체적인 이벤트 활용
-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기 위한 행사
4) 드라마나 영화촬영지로서의 활용
-ex) 겨울연가의 남이섬.
5. 결론
명승고적의 상품화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자산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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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4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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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9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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