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발칸반도의 위치와 특징
발칸반도의 구성
본론
세계 제1차대전과 냉전체제하의 발칸반도
- 세계1차대전
- 세계 2차대전
- 냉전체제
냉전체제 이후의 발칸반도
-냉전체제 해체
-발칸반도 자유화
: 유고 슬라비아 외의 발칸반도 국가들
유고슬라비아의 해체
결론
발칸반도의 위치와 특징
발칸반도의 구성
본론
세계 제1차대전과 냉전체제하의 발칸반도
- 세계1차대전
- 세계 2차대전
- 냉전체제
냉전체제 이후의 발칸반도
-냉전체제 해체
-발칸반도 자유화
: 유고 슬라비아 외의 발칸반도 국가들
유고슬라비아의 해체
결론
본문내용
세력이 해결을 지을 문제가 아니라며 국제 사회의 개입과 코소보의 독립을 거부하였다.
NATO는 세르비아에게 코소보에 대한 만행을 즉각적으로 중지하라고 계속 촉구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군사개입을 감행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표명을 러시아나 중국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긴장을 고조 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랑부에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유지군 주둔을 세르비아에게 요구하였으나 밀로셰비치는 그것마저 거부하였다. 결국 NATO는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하였다. 러시아가 또 유고 공습이 제국주의적 만행이라 비난하며 유고와의 연대를 표명하며 맹렬히 반대하였다. 미국도 러시아가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러시아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단기간 공습을 하고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였으나 제 2의 베트남전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지상군을 파견하지 못한 채 공습만 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코소보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하였다. 5월 20일 G7과 러시아가 코소보 평화안의 초안에 합의하였고 유고 정부도 못마땅하긴 했지만 평화안을 수용할 것을 발표하고 유고군의 코소보 철군에 관한 군사실무협정에 나토와 유고가 합의 하면서 78일간 계속되던 코소보사태의 큰 가지가 꺾였다. 작은 가지들이 남아서 유혈 충동을 일으키곤 하였다. 2008년에 겨우 힘겨운 투쟁을 마치고 코소보가 독자적 헌법을 발효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는다.
4> 마케도니아(2000년)
마케도니아의 독립은 쉽게 이루어졌다. 1991년에 독립을 했으나 국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스에도 같은 이름의 지명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국호를 그런 쉬이 바꾸려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는 구유고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이루게 되지만, 결국 동정적 여론이 마케도니아에게 몰리자 그리스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고, 본래의 이름은 마케도니아로 국호를 올릴 수 있었다.
5> 몬테네그로의 분리
신 유고연방에 테두리에 있던 몬테네그로도 마케도니아와 함께 세르비아와는 충돌 없이 분리 된다. 몬테네그로가 분리되자 유고의 명맥은 근근이 세르비아가 잇게 된다.
Ⅲ결론
발칸반도는 전쟁이 많았던 유럽에서도 특히 근현대사에서 전쟁이 집중된 지역이었다. 그 원인은 내부적으로 복잡한 민족, 종교 구성 때문이었다. 특히 넓지도 않은 지역에 여러 나라가 있기 때문에 아웅다웅할 수밖에 없고 민족적 자부심은 자신의 나라를 다른 나라로부터 지키는 하나의 무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민족주의가 꽃피기 좋은 지역임을 곧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나라들을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려고 했기 때문에 냉전이 종결 전후에 내전이 계속 일어난 것이다.
구유고의 해체과정에서의 독립전쟁은 배타적민족주의와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만들어 낸 참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더 이상 이런 참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NATO는 세르비아에게 코소보에 대한 만행을 즉각적으로 중지하라고 계속 촉구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군사개입을 감행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표명을 러시아나 중국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긴장을 고조 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랑부에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유지군 주둔을 세르비아에게 요구하였으나 밀로셰비치는 그것마저 거부하였다. 결국 NATO는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하였다. 러시아가 또 유고 공습이 제국주의적 만행이라 비난하며 유고와의 연대를 표명하며 맹렬히 반대하였다. 미국도 러시아가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러시아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단기간 공습을 하고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였으나 제 2의 베트남전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지상군을 파견하지 못한 채 공습만 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코소보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하였다. 5월 20일 G7과 러시아가 코소보 평화안의 초안에 합의하였고 유고 정부도 못마땅하긴 했지만 평화안을 수용할 것을 발표하고 유고군의 코소보 철군에 관한 군사실무협정에 나토와 유고가 합의 하면서 78일간 계속되던 코소보사태의 큰 가지가 꺾였다. 작은 가지들이 남아서 유혈 충동을 일으키곤 하였다. 2008년에 겨우 힘겨운 투쟁을 마치고 코소보가 독자적 헌법을 발효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는다.
4> 마케도니아(2000년)
마케도니아의 독립은 쉽게 이루어졌다. 1991년에 독립을 했으나 국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스에도 같은 이름의 지명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국호를 그런 쉬이 바꾸려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는 구유고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이루게 되지만, 결국 동정적 여론이 마케도니아에게 몰리자 그리스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고, 본래의 이름은 마케도니아로 국호를 올릴 수 있었다.
5> 몬테네그로의 분리
신 유고연방에 테두리에 있던 몬테네그로도 마케도니아와 함께 세르비아와는 충돌 없이 분리 된다. 몬테네그로가 분리되자 유고의 명맥은 근근이 세르비아가 잇게 된다.
Ⅲ결론
발칸반도는 전쟁이 많았던 유럽에서도 특히 근현대사에서 전쟁이 집중된 지역이었다. 그 원인은 내부적으로 복잡한 민족, 종교 구성 때문이었다. 특히 넓지도 않은 지역에 여러 나라가 있기 때문에 아웅다웅할 수밖에 없고 민족적 자부심은 자신의 나라를 다른 나라로부터 지키는 하나의 무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민족주의가 꽃피기 좋은 지역임을 곧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나라들을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려고 했기 때문에 냉전이 종결 전후에 내전이 계속 일어난 것이다.
구유고의 해체과정에서의 독립전쟁은 배타적민족주의와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만들어 낸 참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더 이상 이런 참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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