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공화국의 여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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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바이마르의 여성 봉급생활자 (1920년대)

Ⅲ.바이마르의 여성문제 (1931〜1933

Ⅳ. 결론

본문내용

20년대에 “신여성”과 “새로운 유형의 가족”의 등장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신여성은 그 개념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어떻게 규정짓고 어떤 범주에 집어넣느냐에 관한 논쟁이 야기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당시와 같은 혼란한 시기일수록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성들은 결코 “여성의 본질”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 본질은 여성의 한계로 인식되기 보다는 힘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타고난” 여성의 특성은: 모성애, 자기희생, 작은 것에 대한 사랑, 의무감, 의존심, 인내심, 순결함, 순종 그리고 부드러움으로 다양하게 규정되어진다. 그러나 유사한 것이 부정적인 면의 근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즉 모성애는 보수주의로 흘러가기 쉽고,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은 소심함을 가져오고 부끄러움은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 분야에의 소극적 참여로 연결 지어졌다. 또한 여성 안에는 질투, 변덕, 유치함, 신경질적 날카로움, 피상적, 일시적인 면들이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한편 대공황과 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채택된 일련의 정책으로 인하여 독일 사회는 급격한 우경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남녀 모든 이에게 “여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활동범위 내에서 그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여성성 자체의 기본적 틀을 재조정하기보다는 기존의 “여성의 본질”에 부합되는 영역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여성들 또한 본인의 만족보다는 독일 사회와 문화의 번영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여성들은 패전과 이후의 어려움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에 도전적으로 보이거나 사회를 갈라놓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려 했기 때문에 사회, 정치, 경제 분야에서 남녀 영역의 올바른 균형이야말로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뿐 아니라 새롭고 활기찬 독일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소위 “신여성” 혹은 “근대여성” 이라고 불리 우는 여성들, 즉 사회,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남성의 영역에 깊숙이 뚫고 들어간 여성들은 비 독일적이며 사회에 부적합한 이들로 크게 비난받았다.
여성의 본질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비정치적 이들로 규정되었다. 소비 또한 “여성의 본질”을 이야기 할 때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로서 점차 커져가는 소비 산업 분야에서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또한 소비하는 이들로서 새로운 소비문화에 대변인이 되었다. 이처럼 바이마르 여성들은 모든 면에서 상당히 변해가고 있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여성의 본질”이라는 내적 특성에서 그들의 정체성이 찾아졌으며 “여성의 본질”이라는 개념에 의해 규정되었다. 따라서 “여성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여성들은 “남성화”된 이들로 크게 비난 받았으며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소로 간주되었다. 또한 여성들은 끊임없이 육체적인 모습에 의해 객관화되고 판단되어지곤 한다. 사회는 여성들을 그들의 외적 특징에 의해 판단하면서도 여성들은 너무나 피상적이라며 비난하곤 한다. 따라서 “여성의 본질”이라는 개념은 여성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Ⅳ. 결 론
이 글에서는 먼저, 1920년대 봉급생활자는 더 이상 예외적인 인물로 간주되지 않았고, 어떻게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이들 여성 봉급생활자는 어떤 이들인가를 알아보았다. 또한 1920년대 여러 모양의 이해관계에서 얽혀있는 여성봉급생활자들의 일터 안 밖의 생활을 바라보고 동시에 그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또한 여기서는 여성들의 집 밖에서의 일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접근하였다. 반면 그 다음으로 살펴본 19311933년에는 인구정책과 가족정책에 있어 위기의 시기였으며 여성과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는 혼란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도덕문제”의 중심에 있었으며, “신여성”의 개념은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위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후에 나치에 의해서 추진된 가족과 인구정책은 바로 이와 같은 변화의 시기에 흔들리고 있던 기존의 틀을 다시 한 번 고정시키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그 빛을 잃어가던 옛 개념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었다.
20년대 후반의 짧은 안정의 시기는 문화면에서 일대 혁신을 야기했다. 새로운 바이마르 문화는 숨 막힐 듯한 과거의 틀을 깨부수는 “근대성”에 크게 매료되었다. 그것은 여러 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자들의 문화였다. 즉 유태인, 사회주의자 그리고 일부 여성들 및 독일을 서구 문화 집단의 일원으로 만들고 독일에 근대적인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중심이 되는 문화였다. 따라서 바이마르 독일은 문학, 영화, 시각 예술 및 건축 등 제 분야에서 근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과 옛것을 지키려는 힘이 겨루는 대결의 장이라 할 수 있는 데 여성의 개념 및 여성의 정체성은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게논문, 463-464쪽.
이러한 바이마르의 모습은 적어도 여성문제로 보았을 때, 분명히 구조적 연속성 이론이 말하는 바이마르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나치즘의 발현에 대해 설명할 때, 바이마르를 독일사의 특수한 길 안에 집어넣는다. 즉 앞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 말의 제정독일과 바이마르를 연결하는 구조적 연속성을 강조하여 독일 사회 구조의 후진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귀족세력의 권위유지가 바이마르의 불안한 정치 구조로 이어졌고, 히틀러의 독재체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성문제로 봤을 때 바이마르는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큰 변화가 있었으며, 독일 여성들에게 바이마르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치즘을 구조적 연속성에 의한 필연적 결과물로 보는 인식은 잘못되었으며, 오히려 앞에서 말한 전 세계적인 경제적 혼란의 시기에 독일에서 우연히도 강력한 나치의 등장이 있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역사에는 필연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역사 속에는 항상 단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독일 역사에서는 바이마르가 “구조적 연속성”의 단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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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04
  • 저작시기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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