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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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궁중음식에 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궁중음식
●궁중의 잔치와 음식
●종류
●궁중음식의 전수

본문내용

새로 나오는 갖가지 식품들을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조리해서 먹던 풍습으로서 궁중에서는 종묘에 바쳤다. 궁에서 사용되는 제사음식은 관수소(管守所)에서 만들었다.
8. 야외놀이 때 음식
임금이 선왕(先王)의 능에 나가는 것을 봉심(奉審)이라고 하였으며, 이때의 수라는 내찬(內饌)이라 하여 소주방에서 차렸다. 제물은 봉상시(奉常寺)에서 차리는데, 제물로는 주(酒) ·과(果) ·포(脯) 등의 간단한 것으로 하였다.
사냥은 대개 12월 납일(납평) 때 하는데, 이때의 수라는 내찬이라고 하여 내전 소주방에서 차려가지고 나가며, 환궁하면 납일전골을 만들어서 올렸다. 여기서 말하는 납일은 동지 뒤의 셋째 미일(未日)을 뜻한다.
조선 후기부터 창덕궁 후원에서 춘추(春秋)로 꽃놀이 행사를 하였는데, 이때의 수라는 내전 주방에서 모든 재료를 준비하여 비원의 정자에서 수라와 진달래 화전 등을 직접 만들면서 진찬(進饌)하였다.
●궁중음식의 전수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후 궁중에서 먹던 요리는 민간으로 전수되었다. 궁내부 주임관 및 전선사장으로 있었던 안순환은 이금의 음식과 각종 연회의 요리를 만들었었는데, 대한제국이 망할 지경에 이르자 1909년 세종로에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을 차렸다. 명월관은 대한제국의 고관과 친일파 인물들이 출입하였다. 1918년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안순환은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식으로 유명해진 태화관을 개점하였다. 당시 의친왕과 민병석, 박영효의 자제, 그리고 이완용과 송병준의 자제들이 출입하였다. 일제의 압력으로 태화관을 폐점한 안순환은 남대문 1가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식도원이라는 음식점을 새로 내었고 동경 유학생, 문인, 언론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다. 이때 번영로, 이광수, 김억, 김동인, 이상범, 노수현 등이 드나들었다. 임금님만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특권을 가진 일반인들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대중화된 궁중음식은 1960년대까지 창덕궁 낙선재에 거주하였을 때 생존한 왕족과 궁녀들의 구전, 주방 상궁, 대령숙수들이 전해준 것들이다. 4명의 궁중내인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는데, 그중 한희순은 어려서부터 주방에서 일하던 상궁이었다. 1970년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하고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전수관으로 지정하였다. 한희순이 1대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그 제자 황혜성이 2대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한복려는 황혜성의 딸로 기능을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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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0.01.05
  • 저작시기201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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