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성공할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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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중국 소수민족의 특징
2.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변천사
3. 중국과 중국 내 소수민족과의 분쟁 사례
4. 중국과 소수민족 정책 실패의 이유

Ⅲ 결론

본문내용

재의 상황을 토대로 보면 과거보다는 정치적 개방이 될 가능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는데 급진적인 계획이 아닌 점진적, 단계적인 정치 노력을 한다면 소수민족의 사고가 다양해지고 이로 인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민주사회로 변모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3) 종교적 측면
종교는 인류사회의 발전단계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현상으로 민족성격이 강해 특정 종교는 용이하게 하나의 민족집단을 이를 수 있으며 다른 민족과 뚜렷하게 구분시켜 주는 기준이기도 하다. 중국은 통일된 다민족인 국가인 동시에 다종교 국가이기도 하다. 티베트의 불교, 위구르족의 이슬람교 등 20여 개의 소수민족은 민족신앙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토테미즘과 같은 원시종교신앙을 가진 민족도 있다. 중국은 종교로 인한 집단성을 인지하고 중화민족의 단결과 조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은 현재까지도 분리독립운동을 멈추지 않고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국제성으로 인해 타국의 신도와 밀접한 교류 및 협조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고위간부는 2009년 10월 8일 위구르족에게 중국에 맞서 성전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전 세계 무슬림에게 이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알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으로 알려진 아부 야히야 알리비는 20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중국)침략자에 맞서 지하드를 준비하지 않으면 억압과 불의를 제거할 수 없다. 동 투르키스탄의 억압받고 상처 입은 형제들을 지원하는 것은 오늘날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알카에다 간부 중국과 성전 준비』 중앙일보 2009. 10. 9
위와 같은 사실과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분쟁은 종교문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의 종교문제를 해결하여 동질성을 회복하는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 문제로 인해 중국의 한족과 소수민족 간 민족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종교에 대한 정책은 일관되게 소수민족의 자유의사와 보호를 선언하고 있다. 모택동은 각 종교 및 종파를 인정하고 일정한 법률을 준수하기만 하면 인민정부는 이를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 36조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어 종교에 대해 중앙정부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법률적으로 규정하여 소수민족의 종교를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1959년 티베트 라싸에서 일어난 반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중국의 정책은 중국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중국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분쟁의 소지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민족을 이질화시키는 종교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 경제적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중국이 추구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Ⅲ 결론
20세기 후반에 세계 패권을 다투던 거대제국 소련연방이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소수민족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 문제가 발단이 되어 1991년 소련 연방 전체의 붕괴로 이어져 국제정치의 구도와 세계사의 흐름까지도 바뀌었다. 발트 3국은 모두 1940년 소련연방에 강제로 편입되었는데 당시 스탈린은 발트 3국의 국민들에게 러시아가 주인이고 맏형이라는 러시아인이라는 러시아인 제일주의를 주입시켰고 잔인한 탄압을 실시함으로써 반 러시아 감정이 커져 1991년 분리 독립하는 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대규모 산업정책을 시행하여 러시아인들이 대거 발트 3국으로 이주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러시아인의 인구를 증가시켜 1934년 에스토니아의 인구 비율이 자민족 93%, 러시아인 4%에서 1989년 자민족 61.5%, 러시아인 30%로 변화하였다. 『발트 3국의 러시아인들』 김인성 2007년
이를 통해 보면 발트 3국과 소련의 관계가 소수민족과 중국(한족)의 관계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깨닫고 과거 소련과 비슷한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소수민족 현실과 이에 따른 문제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중국의 신분증에는 우리나라의 신분증과는 다르게 민족을 표시하는 공간이 있어 한족, 조선족, 만족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번 레포트를 조사하면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현재 시점에서 민족을 구분하는 항목이 버젓이 표시되어 있는 사실에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봐야 할까? 이것은 중국 지도층의 뿌리깊게 내재되어 있는 대한족주의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이 경제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소수민족에 대한 경제적인 정책만 내세우고 근본적인 정책에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중국의 신분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적 수치의 차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수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은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민족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향후 21세기의 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에게 있어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고 앞서 설명한 중국과 소수민족 갈등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중국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서적
정재남 『(소수민족으로 분석하는 중국)중국 소수민족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7년
김한규 『티베트와 중국』 소나무 2002년
논문
『중국 다문화주의의 실태와 문제점』 박병구 2007년
『발트 3국의 러시아인들』 김인성 2007년
기사
『中, 자본주의 경제학 다시 쓴다』 매일경제신문 2009. 9. 27
『중앙아시아 '에너지 혈관', 중 또다른 화약고』 문화일보 2009. 7. 7
『위구르사태 부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 연합뉴스 2009. 7. 7
『中 상반기 경제성장 서부, 동부 주도』 연합뉴스 2009. 7.21
『알카에다 간부 중국과 성전 준비』 중앙일보 2009. 10. 9
두산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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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07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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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7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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