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序
II. 本
III. 結
II. 本
III. 結
본문내용
병합으로 고구려 옛 땅의 대부분이 신라의 통일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우리의 역사 문화권에 또 하나의 분단은 산출하게 되었다. 김유신편에는 고구려 옛 땅을 상실한 사실에 대한 통한이 거의 비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백제본기에서 삼국의 빈번한 군사적 대결이 급기야 당의 파병의 명분으로 이용되었던 사실을 알게 하였고, 신라가 천병으로 모셔온 당군을 구축하기 위한 싸움을 나중까지 얼마나 참담하게 전개해야 했던가를 실감케 하고 있다. 즉, 군사적 경쟁으로 빚어진 무력통일의 방식,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데 따른 문제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우리는 김유신편에서 민족의 내부모순인 분단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거나 외국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경우 치유될 수 없는 후유증과 무서운 부작용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통하여 주고 싶었던 교훈이며, <삼국사기> 편찬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신이]편에서 김유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김유신의 가족사항이 먼저 소개되고 이후에 고구려 첩자인 백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예문). 백석이라는 고구려 사람이 세작으로 신라에 들어와서 낭도로 있다가 기회를 틈타 김유신을 고구려로 데리러 가려는 것이었다. 이는 고구려 세작인 백석도 김유신이 이후 고구려에 얼마나 큰 화근이 될지 알고 시행한 계략으로, 백석의 계략에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었는데 신라의 호국신인 나림 혈례 골화가 나타나 김유신을 극적으로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또한<고구려의 술사 추남(楸南), 유신으로 환생하다>라는 기록을 보면 백석이 고구려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예전에 고구려의 점치는 술객이었던 추남이라는 자인데 그는 고구려 왕실의 의심과 실수로 추남을 참수의 형을 가하였는데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자신이 이후 환생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고구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舒玄公)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이 일로 인해 고구려에서는 세작을 통해서 김유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삼국유사>에서는 꿈, 신이한 이야기, 설화적 요소를 통해 통일신라의 영웅 김유신을 조명하고자 하였으며, <삼국사기>에서처럼 눈에 띄게 그 비중이 있지는 않다. 이렇듯 두 사서는 같은 인물인 김유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도 그 방향이 다르다 하겠다.
III. 結
발표와 과제를 통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두 사서를 비교하였다. 워낙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씩 살펴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김유신편에서 두 사서의 특징을 뚜렷이 구분하여 볼 수 있었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에 대한 두 역사가의 시각은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담긴 김부식의 역사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김부식에 사대주의의 비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통일신라, 그리고 김유신을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삼국유사>의 설화적 내용이 더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 성격이 다른 만큼이나 역사서로서 각각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삼국유사>는 <삼국사기> 에 비해서 허무맹랑 하다던가,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요소가 적으므로 사대주의라는 비판은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두 사서는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짐으로써 서로의 보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두 사서는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신이]편에서 김유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김유신의 가족사항이 먼저 소개되고 이후에 고구려 첩자인 백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예문). 백석이라는 고구려 사람이 세작으로 신라에 들어와서 낭도로 있다가 기회를 틈타 김유신을 고구려로 데리러 가려는 것이었다. 이는 고구려 세작인 백석도 김유신이 이후 고구려에 얼마나 큰 화근이 될지 알고 시행한 계략으로, 백석의 계략에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었는데 신라의 호국신인 나림 혈례 골화가 나타나 김유신을 극적으로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또한<고구려의 술사 추남(楸南), 유신으로 환생하다>라는 기록을 보면 백석이 고구려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예전에 고구려의 점치는 술객이었던 추남이라는 자인데 그는 고구려 왕실의 의심과 실수로 추남을 참수의 형을 가하였는데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자신이 이후 환생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고구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舒玄公)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이 일로 인해 고구려에서는 세작을 통해서 김유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삼국유사>에서는 꿈, 신이한 이야기, 설화적 요소를 통해 통일신라의 영웅 김유신을 조명하고자 하였으며, <삼국사기>에서처럼 눈에 띄게 그 비중이 있지는 않다. 이렇듯 두 사서는 같은 인물인 김유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도 그 방향이 다르다 하겠다.
III. 結
발표와 과제를 통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두 사서를 비교하였다. 워낙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씩 살펴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김유신편에서 두 사서의 특징을 뚜렷이 구분하여 볼 수 있었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에 대한 두 역사가의 시각은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담긴 김부식의 역사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김부식에 사대주의의 비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통일신라, 그리고 김유신을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삼국유사>의 설화적 내용이 더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 성격이 다른 만큼이나 역사서로서 각각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삼국유사>는 <삼국사기> 에 비해서 허무맹랑 하다던가,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요소가 적으므로 사대주의라는 비판은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두 사서는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짐으로써 서로의 보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두 사서는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