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군사정권과 언론의 수난
Ⅲ. 군사정권의 언론정책
Ⅳ. 언론의 투쟁과 한계
1. 1964년 언론윤리위법 파동
2. 1967년 ‘경향신문’ 경매 처분 사건
3. 1968년 ‘신동아 사건’
4. 1971년 언론수호선언
Ⅴ. 박정희 시대의 언론에 대한 평가
Ⅱ. 군사정권과 언론의 수난
Ⅲ. 군사정권의 언론정책
Ⅳ. 언론의 투쟁과 한계
1. 1964년 언론윤리위법 파동
2. 1967년 ‘경향신문’ 경매 처분 사건
3. 1968년 ‘신동아 사건’
4. 1971년 언론수호선언
Ⅴ. 박정희 시대의 언론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신문, 동화통신 등 서울 중앙의 각 신문통신사로 번졌으며 드디어 29일에는 지방의 경남매일신문, 5월 3일에는 국제신보 등으로 번져 언론의 자유를 다짐하였다.
이처럼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5월 15일 기자협회에서는 ‘언론자유수호행동강령’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자협회’ 전국시도 지부장 및 분회장은 협회를 대표하여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과 발행인편집인기자들간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 해 4월 7일 ‘신문의 날’ 표어로 “신문인의 단결”을 내세운 것도 단결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자는 데 있었다. 사실 언론이 제 구실을 하자면 기자와 편집인과 경영진이 단결해야만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1968년을 마지막으로 권력에 완전히 굴복한 뒤였으므로 언론자유 투쟁은 일선 언론인들만의 투쟁이 되고 말았다. 일선 기자들의 이 같은 궐기로 1971년 대통령선거에 있어 신문들은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월 8일 안보를 위해서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 박정희의 성명과 함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자유 투쟁의 분위기는 가라앉게 되었다. 이때 사설을 통해 의문을 제기한 동아일보는 주필 이동욱과 전주필 천관우가 사임을 강요당했고 1972년 1월 5일 언론을 통제하면 유언비어가 성행한다고 자유를 주장하는 사설을 쓴 논설위원 송건호가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독재체제로 들어가는 정치변혁에 언론계의 저항은 이 정도에서 그치게 되었다.
Ⅴ. 박정희 시대의 언론에 대한 평가
쿠데타는 일부 군인들이 민주당 정권의 지도력 부족, 부패, 진취성 결여 등에 대한 비공산주의적, 아니 오히려 반공적인 반발이었다. 그 핵심은 쿠데타의 지도자 박정희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의 주위에 모인 12명 혹은 그보다 약간 많은 수의 대령, 중령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적 선배들인 1930년대 초반의 일본의 청년장교들처럼 문민정치를 혐오하는 메시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애국주의 신봉자들이며,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행동만이 세계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 행동의 본질은 확고한 조직, 명확한 계획, 신속한 실천이며, 그리고 우선 첫째로 민주주의의 억제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한국 헌법에서도 첫 번째 항목에 나오는 중요한 가치이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러한 정체성의 약화를 부패척결과 경제성장으로 포장하여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리고 군 정권의 비난을 적절하게 포장하기위해 언론을 장악하고자 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권언 유착, 언론인의 정관계 진출, 금융특혜 등의 혜택을 주는가 하면 언론인들에 대한 테러와 구속, 해직 등을 통해 강압적 통치를 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러한 상반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함으로써 한국 언론과 국민은 이용하고 조정했다.
우리언론도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논조로 정통성 없는 정권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이러한 폭압적인 테러와 거절할 수 없는 특혜 속에서 경영인편집인기자들의 단합이 깨져 그 힘이 감소하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론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한국 언론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역할을 어느 정도 잘 수행하고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군사정권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던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고 엄청난 특혜를 받은 그 역할을 소홀히 하였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당시 목숨을 걸고 기사를 쓰고 끔찍한 테러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고자 했던 수많은 언론인들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그러한 권력과 야합해 같은 언론인들을 몰아냈었던 경영진과 편집인, 그리고 양심을 지키지 않았던 기자들에게만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을 지켰지만 희생당했던 언론인들에 대한 평가는 다시 제대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한국 언론이 이정도 발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붓을 들어 왔던 양심적인 언론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김민환. (2005). 한국 언론사 개정2판. 나남.
이강수. (1999). 커뮤니케이션과 정통성. 나남.
김해식. (1994). 한국언론의 사회학. 나남.
송건호. (1990). 한국현대언론사. 삼민사.
김중배. (1999). 미디어와 권력. 나남.
그레고리 헨더슨. 박행웅이종삼 옮김. (2000).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한울아카데미.
이처럼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5월 15일 기자협회에서는 ‘언론자유수호행동강령’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자협회’ 전국시도 지부장 및 분회장은 협회를 대표하여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과 발행인편집인기자들간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 해 4월 7일 ‘신문의 날’ 표어로 “신문인의 단결”을 내세운 것도 단결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자는 데 있었다. 사실 언론이 제 구실을 하자면 기자와 편집인과 경영진이 단결해야만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1968년을 마지막으로 권력에 완전히 굴복한 뒤였으므로 언론자유 투쟁은 일선 언론인들만의 투쟁이 되고 말았다. 일선 기자들의 이 같은 궐기로 1971년 대통령선거에 있어 신문들은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월 8일 안보를 위해서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 박정희의 성명과 함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자유 투쟁의 분위기는 가라앉게 되었다. 이때 사설을 통해 의문을 제기한 동아일보는 주필 이동욱과 전주필 천관우가 사임을 강요당했고 1972년 1월 5일 언론을 통제하면 유언비어가 성행한다고 자유를 주장하는 사설을 쓴 논설위원 송건호가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독재체제로 들어가는 정치변혁에 언론계의 저항은 이 정도에서 그치게 되었다.
Ⅴ. 박정희 시대의 언론에 대한 평가
쿠데타는 일부 군인들이 민주당 정권의 지도력 부족, 부패, 진취성 결여 등에 대한 비공산주의적, 아니 오히려 반공적인 반발이었다. 그 핵심은 쿠데타의 지도자 박정희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의 주위에 모인 12명 혹은 그보다 약간 많은 수의 대령, 중령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적 선배들인 1930년대 초반의 일본의 청년장교들처럼 문민정치를 혐오하는 메시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애국주의 신봉자들이며,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행동만이 세계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 행동의 본질은 확고한 조직, 명확한 계획, 신속한 실천이며, 그리고 우선 첫째로 민주주의의 억제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한국 헌법에서도 첫 번째 항목에 나오는 중요한 가치이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러한 정체성의 약화를 부패척결과 경제성장으로 포장하여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리고 군 정권의 비난을 적절하게 포장하기위해 언론을 장악하고자 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권언 유착, 언론인의 정관계 진출, 금융특혜 등의 혜택을 주는가 하면 언론인들에 대한 테러와 구속, 해직 등을 통해 강압적 통치를 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러한 상반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함으로써 한국 언론과 국민은 이용하고 조정했다.
우리언론도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논조로 정통성 없는 정권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이러한 폭압적인 테러와 거절할 수 없는 특혜 속에서 경영인편집인기자들의 단합이 깨져 그 힘이 감소하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론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한국 언론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역할을 어느 정도 잘 수행하고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군사정권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던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고 엄청난 특혜를 받은 그 역할을 소홀히 하였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당시 목숨을 걸고 기사를 쓰고 끔찍한 테러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고자 했던 수많은 언론인들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그러한 권력과 야합해 같은 언론인들을 몰아냈었던 경영진과 편집인, 그리고 양심을 지키지 않았던 기자들에게만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을 지켰지만 희생당했던 언론인들에 대한 평가는 다시 제대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한국 언론이 이정도 발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붓을 들어 왔던 양심적인 언론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김민환. (2005). 한국 언론사 개정2판. 나남.
이강수. (1999). 커뮤니케이션과 정통성. 나남.
김해식. (1994). 한국언론의 사회학. 나남.
송건호. (1990). 한국현대언론사. 삼민사.
김중배. (1999). 미디어와 권력. 나남.
그레고리 헨더슨. 박행웅이종삼 옮김. (2000).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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