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1. 지은이, 옮긴이 소개
2. 선택 동기, 책 소개
Ⅱ. 내용
1. 고왜관시대
1) 왜관의 시작 2) 새로운 규약 3) 고왜관의 풍경 4) 중세와의 이별
2. ‘일본인 마을’ 2백년의 역사
1) 길어지는 이전교섭 2) 조선과 일본의 합작 건축인 10만평 규모의 외국인숙소
3. ‘쇄국’시대의 왜관무역
1) 돈 많은 다이묘 2) 꽃이 활짝 핀 사무역
3) 세 나라의 수도 이야기 4) 인삼대 왕고은의 특명
4. 왜관에 살다
1)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 기어서 2) 일기를 남긴 관수 3) 남자들이 마을
5. 조선과 일본의 음식문화 교류
1) 왜관의 일상 음식 2) 조선식 요리
3) 미식가의 잔치는 ‘스기야키요리’ 4) 화려한 향응요리
6. 조선을 조사하다
1) 요시무네의 비원 2) 극비작전의 개시 3) 한반도의 동식물 4) 왜관조사의 새로운 국면
Ⅲ. 맺음말
1. 지은이, 옮긴이 소개
2. 선택 동기, 책 소개
Ⅱ. 내용
1. 고왜관시대
1) 왜관의 시작 2) 새로운 규약 3) 고왜관의 풍경 4) 중세와의 이별
2. ‘일본인 마을’ 2백년의 역사
1) 길어지는 이전교섭 2) 조선과 일본의 합작 건축인 10만평 규모의 외국인숙소
3. ‘쇄국’시대의 왜관무역
1) 돈 많은 다이묘 2) 꽃이 활짝 핀 사무역
3) 세 나라의 수도 이야기 4) 인삼대 왕고은의 특명
4. 왜관에 살다
1)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 기어서 2) 일기를 남긴 관수 3) 남자들이 마을
5. 조선과 일본의 음식문화 교류
1) 왜관의 일상 음식 2) 조선식 요리
3) 미식가의 잔치는 ‘스기야키요리’ 4) 화려한 향응요리
6. 조선을 조사하다
1) 요시무네의 비원 2) 극비작전의 개시 3) 한반도의 동식물 4) 왜관조사의 새로운 국면
Ⅲ. 맺음말
본문내용
린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대마도는 방침을 바꾸게 된다.
소우 요시노부는 고시 쓰네에몽의 보고서에는 없는 전혀 별개의 약초를 쇼군에게 헌상을 한다. 요시무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건이 조선에서 도착한 것인데, 3뿌리의 인삼 모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소우 씨의 에도 입성무대를 장식하는데 딱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요시무네는 흡족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도 뿌리라든가 열매를 입수하도록 소우 씨에게 의뢰하는 동시에, 대마도 땅에도 이것을 심어보라고 장려하고 있다.
영내에 재배하는 것만큼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대마도는 결국 1728년(영조4)까지 총 35뿌리의 생초생근을, 그리고 60알의 씨앗을 요시무네에게 헌상한다. 이들 모두 약재조사와 병행하여 발송된 것인데, 요시무네가 의도했던 대로 이때부터 일본은 인삼의 시험재배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3) 한반도의 동식물
고시 쓰네이몽은 오관 도착 후 곧장 가네코 규에몽을 조수로 기용했다. 규에몽에게 내린 주문은 모두 ‘비밀주문’, 그러니까 역관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역관들이 정류 조사루트라고 한다면, 이들은 ‘비공식 루트’라고 보아도 좋다.
비공식 루트 중심에 서 있었던 규에몽은 훗날 대마도 당국으로부터 거액을 하사 받았다. 그 이유로서 ‘약재에 밝은 사람이라서 조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인데, 그의 활약에 힘입어서 조선에서 빼내기 어려운 것들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비공식루트’가 잘 가동이 되지 않게 되자 역관들의 활동이 시작된다. 맨처음 왜관에 소개된 사람은 이주부, 두 번째로 왜관에 들어간 사람은 박첨지, 그 다음이 현오와 치백이라 하는 승려였다.
마지막으로 왜관에 들어간 사람은 이참봉이었는데, 그는 왜관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약재명을 밝혀냈다. 그뒤 그는 약재10종과 황해도에서 포획한 ‘원앙’ 1마리, 경주에서 붙잡은 ‘장어’ 1마리를 왜관에 보내고 고액의 대가를 받았다. 특히 원앙은 지금은 절멸해 버린 것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21세기 생물학, 특히 조류의 생태학사와 관련된 귀중한 발견과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역관 이석린에 의한 동식물 채집의 범위를 지도를 가지고 살펴보기로 하자. 식물은 역시 약초지대가 펼쳐져 있는 경상도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다만 동물은 서식지에 따라서 북으로는 함경도산 흰꽃뱀에서 시작하여, 남으로는 경상도 남해,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이렇게 대마도는 이번 약재 입수를 위한 경비로서 총 은 5관 정도를 지출했다. 물론 바쿠후가 원조를 해 줄 리는 없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온갖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도리 없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시비용 지출이며, 이것도 대마도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봉공’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왜관 조사의 새로운 국면
다액의 비용인원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진 고시 쓰네에몽의 보고서는 유감스럽게도 그 원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미루어 짐작컨대, 보고서는 결코 완성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특히 보고된 명칭 가운데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 많으며, 그것을 확정해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검토의 여지가 남겨져 있다.
인삼의 국산화정책도 대마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매우 순조롭게 진행된다. 채종파종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재배경험을 되풀이하면서 인삼은 이윽고 닛코 등 기후가 적합한 장소에서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에도의 니혼바시(日本橋) 혼코쿠쵸(本石町)에 있는 약종상이 인삼종자를 발매한 것이 1738년의 일이다. 더욱이 1736년이 되면, 간다(神田)에 조선인삼좌가 개설되기에 이른다. 머지않아 일본은 국산인삼(오타네닌징)의 대량생산의 시대를 맞게 된다.
18세기 중기 이후의 대마도는 다시금 고난의 시대를 맞게 된다. 이제까지 독점적으로 수입판매를 해 올 수 있었던 조선의 인삼이 ‘오타네닌징’(일본 국내에서 생산한 씨인삼)의 보급과 더불어 달러박스로서의 지위를 크게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요시무네를 고민에 빠뜨렸던 조선으로의 은 유출도 1740년대가 되자 크게 줄어들게 된다. 1753년(영조29) 1월 2척의 은선이 왜관에 입항했다고 하는 기사를 끝으로 조선으로의 은 수송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 무렵이 되면 대마도는 수출의 주체를 은에서 구리로 바꾸어 나가면서 온갖 노력을 시도하지만, 이미 이익의 원천을 잃어버린 조일양국간 무역에서 일찍이 누렸던 번영을 다시 기대할 수는 없었다.
Ⅲ. 맺음말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4학년 한일관계사 수업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던 것이라 읽는데도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소한 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모른다고 느끼는 단어 거의 모두에 대해 역주를 달아 아주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책 전반적 내용도 도움이 되었지만, 역주에 자세한 설명이 나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왜관이 조선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에도시대(조선후기) 양국의 외교 실무나 무역 등이 일본이 아닌 조선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기 나가사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무역은 네덜란드나 중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들어가서 하던 무역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교류를 한 것은 조선이 유일하며 그 터전으로서 제공된 것이 왜관이었던 것이다.
조선사회는 왜관을 격리된 공간으로서 닫혀 있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조선 정부의 기대와 달리, 두 나라의 사람과 재화 그리고 문화와 정보가 교차되고 교류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130년 전까지 부산 일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왜관’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의 한일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한일관계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왜관을 통해서 외교나 무역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동식물의 생육과 형태를 조사했고, 의학서적과 특히 인삼을 몰래 들여가서 자기네 인삼으로 개발시켰다. 우리나라도 목화씨를 몰래 들여와 우리나라에 정착시켰지만,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것을 자기 나라 고유의 것으로 다시 정착시켜 나가는 개발들을 우리도 좀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소우 요시노부는 고시 쓰네에몽의 보고서에는 없는 전혀 별개의 약초를 쇼군에게 헌상을 한다. 요시무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건이 조선에서 도착한 것인데, 3뿌리의 인삼 모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소우 씨의 에도 입성무대를 장식하는데 딱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요시무네는 흡족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도 뿌리라든가 열매를 입수하도록 소우 씨에게 의뢰하는 동시에, 대마도 땅에도 이것을 심어보라고 장려하고 있다.
영내에 재배하는 것만큼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대마도는 결국 1728년(영조4)까지 총 35뿌리의 생초생근을, 그리고 60알의 씨앗을 요시무네에게 헌상한다. 이들 모두 약재조사와 병행하여 발송된 것인데, 요시무네가 의도했던 대로 이때부터 일본은 인삼의 시험재배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3) 한반도의 동식물
고시 쓰네이몽은 오관 도착 후 곧장 가네코 규에몽을 조수로 기용했다. 규에몽에게 내린 주문은 모두 ‘비밀주문’, 그러니까 역관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역관들이 정류 조사루트라고 한다면, 이들은 ‘비공식 루트’라고 보아도 좋다.
비공식 루트 중심에 서 있었던 규에몽은 훗날 대마도 당국으로부터 거액을 하사 받았다. 그 이유로서 ‘약재에 밝은 사람이라서 조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인데, 그의 활약에 힘입어서 조선에서 빼내기 어려운 것들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비공식루트’가 잘 가동이 되지 않게 되자 역관들의 활동이 시작된다. 맨처음 왜관에 소개된 사람은 이주부, 두 번째로 왜관에 들어간 사람은 박첨지, 그 다음이 현오와 치백이라 하는 승려였다.
마지막으로 왜관에 들어간 사람은 이참봉이었는데, 그는 왜관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약재명을 밝혀냈다. 그뒤 그는 약재10종과 황해도에서 포획한 ‘원앙’ 1마리, 경주에서 붙잡은 ‘장어’ 1마리를 왜관에 보내고 고액의 대가를 받았다. 특히 원앙은 지금은 절멸해 버린 것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21세기 생물학, 특히 조류의 생태학사와 관련된 귀중한 발견과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역관 이석린에 의한 동식물 채집의 범위를 지도를 가지고 살펴보기로 하자. 식물은 역시 약초지대가 펼쳐져 있는 경상도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다만 동물은 서식지에 따라서 북으로는 함경도산 흰꽃뱀에서 시작하여, 남으로는 경상도 남해,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이렇게 대마도는 이번 약재 입수를 위한 경비로서 총 은 5관 정도를 지출했다. 물론 바쿠후가 원조를 해 줄 리는 없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온갖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도리 없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시비용 지출이며, 이것도 대마도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봉공’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왜관 조사의 새로운 국면
다액의 비용인원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진 고시 쓰네에몽의 보고서는 유감스럽게도 그 원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미루어 짐작컨대, 보고서는 결코 완성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특히 보고된 명칭 가운데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 많으며, 그것을 확정해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검토의 여지가 남겨져 있다.
인삼의 국산화정책도 대마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매우 순조롭게 진행된다. 채종파종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재배경험을 되풀이하면서 인삼은 이윽고 닛코 등 기후가 적합한 장소에서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에도의 니혼바시(日本橋) 혼코쿠쵸(本石町)에 있는 약종상이 인삼종자를 발매한 것이 1738년의 일이다. 더욱이 1736년이 되면, 간다(神田)에 조선인삼좌가 개설되기에 이른다. 머지않아 일본은 국산인삼(오타네닌징)의 대량생산의 시대를 맞게 된다.
18세기 중기 이후의 대마도는 다시금 고난의 시대를 맞게 된다. 이제까지 독점적으로 수입판매를 해 올 수 있었던 조선의 인삼이 ‘오타네닌징’(일본 국내에서 생산한 씨인삼)의 보급과 더불어 달러박스로서의 지위를 크게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요시무네를 고민에 빠뜨렸던 조선으로의 은 유출도 1740년대가 되자 크게 줄어들게 된다. 1753년(영조29) 1월 2척의 은선이 왜관에 입항했다고 하는 기사를 끝으로 조선으로의 은 수송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 무렵이 되면 대마도는 수출의 주체를 은에서 구리로 바꾸어 나가면서 온갖 노력을 시도하지만, 이미 이익의 원천을 잃어버린 조일양국간 무역에서 일찍이 누렸던 번영을 다시 기대할 수는 없었다.
Ⅲ. 맺음말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4학년 한일관계사 수업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던 것이라 읽는데도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소한 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모른다고 느끼는 단어 거의 모두에 대해 역주를 달아 아주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책 전반적 내용도 도움이 되었지만, 역주에 자세한 설명이 나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왜관이 조선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에도시대(조선후기) 양국의 외교 실무나 무역 등이 일본이 아닌 조선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기 나가사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무역은 네덜란드나 중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들어가서 하던 무역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교류를 한 것은 조선이 유일하며 그 터전으로서 제공된 것이 왜관이었던 것이다.
조선사회는 왜관을 격리된 공간으로서 닫혀 있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조선 정부의 기대와 달리, 두 나라의 사람과 재화 그리고 문화와 정보가 교차되고 교류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130년 전까지 부산 일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왜관’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의 한일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한일관계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왜관을 통해서 외교나 무역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동식물의 생육과 형태를 조사했고, 의학서적과 특히 인삼을 몰래 들여가서 자기네 인삼으로 개발시켰다. 우리나라도 목화씨를 몰래 들여와 우리나라에 정착시켰지만,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것을 자기 나라 고유의 것으로 다시 정착시켜 나가는 개발들을 우리도 좀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