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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권력이다. 그리고 미디어 뒤에 숨은 권력은 바로 자본이다.
드릴로는 이 작품에서 개인의 의식이 신의 자리를 대치한 모더니즘 문학과 달리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은 신의 자리를 카메라와 상품에 넘겨주는, 즉 카메라와 상품이 개인의 의식을 삼켜버리는 이미지 상품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38 의사소통의 수단이 발달되자 세계는 좁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의미는 본래의 뜻을 잃어가고 있다. 매개의 수단들이 권력이 되거나 미디어 보도 자체가 실재가 되어버린 이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 미디어가 넘치는 사회는 정보가 넘치는 사회이고, 개인의 선택이 중시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뮬라시옹은 실재가 증발하고 모사가 실재를 대치한 현상이다. 미디어는 그 자체가 재현이 되어 소비자를 유혹한다. 영상이 반복되어 진리처럼 굳어지고, 모사가 원본보다 더 리얼해지고, 이미지로 가득찬 세상에서 인간은 주인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속의 일부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240 최효찬은 이론화 및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근대의 억압되고 분열된 주체(공리주의적 인간)가 탈근대의 냉소주의적 주체(소비인간)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소비사회 단계에 진입하고 자율적 주체가 되었지만 인간의 억압상태는 더욱 교묘하게 자본과 관료제에 포획되고 있다는 것이다. 르페브르와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지금-여기’의 우리 사회를 분석해 내는 데 유용한 이론이고, 텍스트 분석에 사용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호의『지상에서 가장 큰 집』,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등은 현실 불모성을 재현해 내고 있지만, 현실 전복성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았다. 시각적 감응에 의한 억압과 이미지, 인위적 숭고미가 난무하는 탈근대적 자본주의 도시공간에서 개인의 구원 가능성은 대부분 환상성이나 추상적 유토피아에 의지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44 르페브르는 일상성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는 총체적인 혁명을 ‘문화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는 문화적인 수준에만 국한하지 않고 경제 및 정치적 수준에서의 혁명적 실천까지 함축하며, 결국 일상성의 변화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의 창조를 끊임없이 목표로 삼는 혁명인 것이다.
245 하비는 최근 계급갈등의 핵심은 공간이며, 공간지배력이라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르페브르가 주장하는 문화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천전략이 요구되는데, “전국적인 공간을 지배하려는 공간전략을 통해 전국적인 권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고 공간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주요 과업의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통제하는 공간에 권력을 배치하는 것인 한편, 저항운동들이 지배할 잠재력이 큰 공간을 무력화시켜버리는 것이다.
246 하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상의 억압을 ‘최소화하기’위해 공간의 ‘탈영토화’를 언급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공간의 자본화’가 가속된 상태이기에 탈영토화를 위한 공간전략에는 한계가 있고,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로서는 불신이 확산된 상태이고, 신자유주의 또한 점차 성공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로서 이해되고 있다. 때문에공간문제와 관련한 실천은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연계되지 않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도시사회운동은 신보수주의적 시미사회운동으로 왜곡될 수 있으며, 계급정치로부터 분리된 생태정치는 신비주의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은폐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47하비는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 ‘공간적 유희로서 유토피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의 대안적 실천전략으로 하비는 공간의 구체성을 반영한 유토피아를 실천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적 유희로서 유토피아’는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해 광범위한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이 되며, 활동가들은 이러한 수단을 통해 가능한 공간적 질서의 무한한 배열을 추구하게 된다.
하비는 자본화한 공간을 전복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실천전략으로 ‘반란적 건축가’(insurgent architect가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직업인으로서 건축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일종의 건축가로 본다. 우리가 일상적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을 통해 효과적으로 우리의 생활세계를 유지, 구성, 재구성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행위자를 위하 은유로서 건축가라는 인물을 채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248 이들 건축가들은 기존의 지배적인 조건에 맞서는 유토피아 운동으로서 공동체, 시민권, 집단성과 집단의 책임에 우위를 두는 집단화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공간의 생산을 의미하며, 여기서 반란적 건축가는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충분한 기회가 있다. 공동체의 개조와 재이미지화가 보다 일반적인 급진적인 반란적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자본화한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독해체계의 제국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미디어의 재현에 의한 현실이 되면 그 현실은 언제든지 미디어적 필요에 따라 절취될 수 있다. 그 절취hls 만큼 현실은 미디어 통제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49 매체화된 문화는 적극적인 활동의 공간으로서 일상공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매체에 의해 일상공간이 침식당하고 실재성과 비판의식이 부정당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예측을 불허하는 페시미즘으로 빠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보드리야르와 플루서, 비릴리오 등의 매체 미학은 기술 매체가 진전할수록 그 매체에 의해 더욱 억압된다는 허무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250 그러나 반란적 건축가들도 기술매체에 의해 조장되는 매체 허무주의적 세례를 피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일상공간이 적극적인 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저해하는 기술매체의 부정적 측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자본의 욕망과 허무주의가 지배하고 이쓴 일상의 공간담론에 대한 매체미학의 과제일 것이다.
드릴로는 이 작품에서 개인의 의식이 신의 자리를 대치한 모더니즘 문학과 달리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은 신의 자리를 카메라와 상품에 넘겨주는, 즉 카메라와 상품이 개인의 의식을 삼켜버리는 이미지 상품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38 의사소통의 수단이 발달되자 세계는 좁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의미는 본래의 뜻을 잃어가고 있다. 매개의 수단들이 권력이 되거나 미디어 보도 자체가 실재가 되어버린 이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 미디어가 넘치는 사회는 정보가 넘치는 사회이고, 개인의 선택이 중시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뮬라시옹은 실재가 증발하고 모사가 실재를 대치한 현상이다. 미디어는 그 자체가 재현이 되어 소비자를 유혹한다. 영상이 반복되어 진리처럼 굳어지고, 모사가 원본보다 더 리얼해지고, 이미지로 가득찬 세상에서 인간은 주인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속의 일부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240 최효찬은 이론화 및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근대의 억압되고 분열된 주체(공리주의적 인간)가 탈근대의 냉소주의적 주체(소비인간)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소비사회 단계에 진입하고 자율적 주체가 되었지만 인간의 억압상태는 더욱 교묘하게 자본과 관료제에 포획되고 있다는 것이다. 르페브르와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지금-여기’의 우리 사회를 분석해 내는 데 유용한 이론이고, 텍스트 분석에 사용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호의『지상에서 가장 큰 집』,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등은 현실 불모성을 재현해 내고 있지만, 현실 전복성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았다. 시각적 감응에 의한 억압과 이미지, 인위적 숭고미가 난무하는 탈근대적 자본주의 도시공간에서 개인의 구원 가능성은 대부분 환상성이나 추상적 유토피아에 의지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44 르페브르는 일상성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는 총체적인 혁명을 ‘문화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는 문화적인 수준에만 국한하지 않고 경제 및 정치적 수준에서의 혁명적 실천까지 함축하며, 결국 일상성의 변화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의 창조를 끊임없이 목표로 삼는 혁명인 것이다.
245 하비는 최근 계급갈등의 핵심은 공간이며, 공간지배력이라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르페브르가 주장하는 문화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천전략이 요구되는데, “전국적인 공간을 지배하려는 공간전략을 통해 전국적인 권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고 공간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주요 과업의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통제하는 공간에 권력을 배치하는 것인 한편, 저항운동들이 지배할 잠재력이 큰 공간을 무력화시켜버리는 것이다.
246 하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상의 억압을 ‘최소화하기’위해 공간의 ‘탈영토화’를 언급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공간의 자본화’가 가속된 상태이기에 탈영토화를 위한 공간전략에는 한계가 있고,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로서는 불신이 확산된 상태이고, 신자유주의 또한 점차 성공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로서 이해되고 있다. 때문에공간문제와 관련한 실천은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연계되지 않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도시사회운동은 신보수주의적 시미사회운동으로 왜곡될 수 있으며, 계급정치로부터 분리된 생태정치는 신비주의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은폐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47하비는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 ‘공간적 유희로서 유토피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의 대안적 실천전략으로 하비는 공간의 구체성을 반영한 유토피아를 실천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적 유희로서 유토피아’는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해 광범위한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이 되며, 활동가들은 이러한 수단을 통해 가능한 공간적 질서의 무한한 배열을 추구하게 된다.
하비는 자본화한 공간을 전복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실천전략으로 ‘반란적 건축가’(insurgent architect가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직업인으로서 건축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일종의 건축가로 본다. 우리가 일상적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을 통해 효과적으로 우리의 생활세계를 유지, 구성, 재구성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행위자를 위하 은유로서 건축가라는 인물을 채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248 이들 건축가들은 기존의 지배적인 조건에 맞서는 유토피아 운동으로서 공동체, 시민권, 집단성과 집단의 책임에 우위를 두는 집단화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공간의 생산을 의미하며, 여기서 반란적 건축가는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충분한 기회가 있다. 공동체의 개조와 재이미지화가 보다 일반적인 급진적인 반란적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자본화한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독해체계의 제국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미디어의 재현에 의한 현실이 되면 그 현실은 언제든지 미디어적 필요에 따라 절취될 수 있다. 그 절취hls 만큼 현실은 미디어 통제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49 매체화된 문화는 적극적인 활동의 공간으로서 일상공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매체에 의해 일상공간이 침식당하고 실재성과 비판의식이 부정당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예측을 불허하는 페시미즘으로 빠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보드리야르와 플루서, 비릴리오 등의 매체 미학은 기술 매체가 진전할수록 그 매체에 의해 더욱 억압된다는 허무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250 그러나 반란적 건축가들도 기술매체에 의해 조장되는 매체 허무주의적 세례를 피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일상공간이 적극적인 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저해하는 기술매체의 부정적 측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자본의 욕망과 허무주의가 지배하고 이쓴 일상의 공간담론에 대한 매체미학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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