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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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원화성 자료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수원화성 2
팔달문 5
화서문 9
장안문 10
창룡문 14

본문내용

정의 아름다움은 그 홀로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북쪽의 용연과 서쪽의 화홍문, 그리고 동쪽의 북암문이 어우러져서 빚어낸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방화수류정의 자태가 아름다운 것은 그 자신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조화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그래서 방화수류정은 우리에게 혼자 잘난 체하지 말고 주변과 잘 어울리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수원성의 군사시설중 가장 위용이 있고 군사지휘소의 으뜸이 되는 곳 이다. 평상시 군사들을 훈련하고 지휘하는 장대이다. 이 곳은 지형이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언덕의 등성이가 솟아 있는 곳이어서 성의 동쪽 구릉 지역중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지붕 형태는 팔작지붕 형식이며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벽체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뒤에는 기와를 이용 영롱담을 쌓았다.
현재 동장대 앞은 수원시내의 대표적인 활터로 쓰이고 있다.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이다. 화성에서 새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창룡문 밖에는 최근 조성한 감나무 공원이 있다.
창룡문은 희망의 문이요,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문이고, 아름다운 문이다. 궁궐에서 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동궁(東宮)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궁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잡기도 했다. 동궁이라는 상징은 다음 세대, 혹은 다음 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 화성의 희망찬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동문인 창룡문이다.
창룡문은 또한 아름답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를 가졌고 벽돌과 화강석의 적절한 색 배합, 기와와 기둥의 빛깔이 주는 천연스러운 대비가 창룡문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으로써의 기능이 지금도 살아 있는 문은, 화성의 네 큰문 중에 창룡문 밖에 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창룡문을 드나든다.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가기 위해서 드나들고 있으니 문으로써의 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화성 공사에서도 실명제를?
무지개 성문 왼쪽 벽을 보면 공사 실명제 판이 있다. 화강석 벽을 곱게 다듬어서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잘 알아볼 수 있다. 팔달문의 그것은 쉽
게 들어가서 볼 수 없고, 장안문의 것은 아예 없어졌으며, 화서문의 실명판은 무른 돌에다 새긴 듯 눈을 씻고 봐야만 볼 수 있는 것에 견주어 이 창룡문의 글씨들은 아무 때나 어떤 글씨들도 잘 볼 수 있다.
이는 화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행운이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갈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부실 공사와 관련한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다시 보여지는 공사 실명제 판이다. 이런 실명제 판은 화성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성곽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단에도 있다.
그리고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큰 토목 공사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실명제를 실시한 역사를 알 수 있다. 특히 경주박물관의 남산신성비는 신라 진평왕13년(서기 591년) 경주 남산에 신성을 쌓고 그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가치가 높은 금석문이다.
성을 쌓은 후 3년 안에 허물어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 임금의 명을 꼭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감독자와 기술자 대표의 이름을 적었다. 아마 가장 오래된 공사 실명제 흔적일 것이다.
봉돈은 창룡문과 팔달문사이의 동남쪽에 성안에 위치한 행궁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였다. 봉돈은 행궁을 지키고 성을 파수하며 주변을 정찰하여 인군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또 용인의 건달산과 석성산에서 오는 봉수신호를 받아 이를 서울로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치성(雉城)처럼 주변 성벽보다 돌출되도록 전돌로 높이 쌓아올리고, 꼭대기에는 다섯개의 큰 연기구멍을 냈는데 그 모습이 장대하고 눈길을 끈다.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것만 사용하다가 긴박한 상황일수록 올리는 횟수가 늘어난다. 5개를 모두 올리면 적군과 접전중이라는 표시이다.
부실공사가 웬말?
1796년 수원성(화성)을 준공하였다. 약 2년 8개월의 공사를 마치자 정조대왕은 공사 보고서의 발간을 지시한다. 그로부터 약 5년 후 화성의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가 발간된다. 유려한 활자와 상세한 그림 자료들, 그리고 수준 높은 인쇄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이 책에는 성역에 소요된 시일과 인원, 사용된 기기, 성역 전의 성역에 관계된 여러 사항은 물론이고, 각종 포상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공사 못지 않게 기록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얘기가 되겠고, 공사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그만큼 짜임새 있게 운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당시의 실학자들이 성역의 설계와 시공 그리고 기록과 정리에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설물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자세하고 조리 있게, 비용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읽어보기만 해도 그 윤곽이 눈에 잡힐 듯하다. 게다가 바깥과 안에서 본 그림에다 투시도까지 그려 넣어서, 그림만 보고도 시설물의 건축 방법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제한적이나마 공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나 정확한 수치와 자료로 작성하는지 의문이다. 보고서 자체를 놓고 보면 더 이상의 완벽 시공이 없으나 실제 현장의 경우와는 종종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공사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겸허하게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솔직한 보고서가 될 것이다. 어느 공사든지 솔직한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부실 공사를 막을 수 있다. 200년 전의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는 그래서 민족의 큰 자랑거리다.
이 보고서의 우수성에 대해 해외에서 맨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뜻밖에 프랑스였다. 1898년 프랑스에서 발행된 CER MONIALEDE L'ACH VEMENT DES TRAVAUX DE HOA SYENG (COREE)에서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내의 성곽 도판의 판화 인쇄술에 대해 이미 그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화성성역의궤는 1996년 화성축성200주년 기념으로 중건한 화성행궁과 지난 1975년에 복원된 화성도 이 보고서에 의해 원형 복원이 가능했던 사실에서 이 보고서의 가치가 한층 더 높이 평가되었다.
[오늘의 답사한자1]
華 城
꽃/화 성/성
長 安 門
긴/장 편안할/안 문/문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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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10.04.10
  • 저작시기20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7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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