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3 공화국
들어가는 말
1. 5.16 쿠데타
2. 제3공화국 시대의 정치제도
1) 헌법
2) 제3공화국 헌법의 성격
3) 제3공화국 헌법의 지방자치에 관한 조항
4) 제3공화국의 정당
5) 제3공화국의 이익집단
6) 제3공화국의 정치적 상황
3. 경제발전과 3공화국
CEO 박정희 『명령은 5%, 확인과 감독이 95%』
1) 한일회담과 경제협력
2) 베트남 파병과 월남 특수
3)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나오는 말
《참고문헌》
들어가는 말
1. 5.16 쿠데타
2. 제3공화국 시대의 정치제도
1) 헌법
2) 제3공화국 헌법의 성격
3) 제3공화국 헌법의 지방자치에 관한 조항
4) 제3공화국의 정당
5) 제3공화국의 이익집단
6) 제3공화국의 정치적 상황
3. 경제발전과 3공화국
CEO 박정희 『명령은 5%, 확인과 감독이 95%』
1) 한일회담과 경제협력
2) 베트남 파병과 월남 특수
3)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산업은 42%에서 35.9%로 낮아졌다. 수출은 기간 중 연평균 43.7%의 급속한 성장을 보여 1964년에 1억 달러를 넘어섰고, 목표연도에는 2억 5천만 달러로 계획보다 거의 2배나 초과달성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작용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첫째, 소비제 공업에 l중하고 금속공작기계부품공업 등 기초공업건설을 소홀히 함으로써 공업화에 따라 자본재의 도입도 늘어났으며, 무역수지의 적자폭도 확대됐다. 또한 어느 적기에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경제성장의 지속성이 좌우되는 등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둘째, 투자재원의 조달을 정부투융자 및 외자도입에 의존함으로써 통화팽창에 따른 막대한 인플레이션과 외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켰다. 1963년과 1966년에는 전국 도매 물가가 20.5%와 35.1%나 올라 경제의 안정기조를 흔들어 놓았다. 셋째, 공업화 중심의 개발전략으로 농업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때문에 식량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식량의 수입이 늘어났으며, 동시에 이에 비례해서 식량 자급률도 떨어졌다. 넷째, 수출지향적인 개발전략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완결성과 통일성, 그리고 각 산업의 부문간, 업종간 연관성이 낮아지고, 국내의 산업기반이 취약하게 되었다.
(2) 제2차 경재개발 계획(1967-1971)
이 계획은 1967년부터 수립과 추진되었다. 그것은 제 1차 기간 중에 노출된 문제점을 보완해 “농업개발과 고용확대, 중화학 공업의 건설과 과학기술의 진흥”이 중점사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계획에 맞추어진 기본목표는 아래와 같다.
첫째, 식량의 자급자족과 산림녹화, 수산개발
둘째, 철강기계 및 화학공업의 육성을 통한 공업구조의 고도화
셋째, 수출증진과 수입대쳉 의한 경상수지 개선
넷째, 고용의 증대와 인구팽창의 억제
다섯째, 국민소득의 향상, 특히 영농을 다각화하여 농가소득을 증대시킴.
여섯째,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
계획기간 중 연평균 성장은 7%로 잡았다. 또한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제조업을 내수산업에서 수출 또는 수입대체 산업으로 전환하고, 종래의 경공업 중심에서 석유화학, 철강, 기계, 시멘트 등 중화학 공업의 비중을 높이도록 했다.
제 2차 개발계획은 첫해에 농업부문의 타격으로 전체 성장률이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1969년의 목표치를 정점으로 평균 9.7%의 고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는 비료, 시멘트, 정유 등의 기간산업과 수출산업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계획 기간 중 17.9%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2차 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
고도성장과 더불어 국민생활 수준도 양적으로는 향상되었는데, GNP는 1966년의 125달러에서 1971년 278달러로 높아졌으며 고용도 늘어나 실업률이 6.8%에서 4.4%로 낮아졌다. 물가도 안정되어 도매물가 상승률이 1차 기간 보다 절반이나 하락한 7%대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다. 2차 계획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우선 농업을 강화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려 하였으나 농업은 축소되고 3차 산업의 비대화가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이농현상이 급증하였으며 원자재의 해외의존도 심화 등의 현상이 점점 극심해졌다. 또한 수출은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으로 인해 연평균 35.2%나 증대되었고, 수출시장도 98개국으로 다양화 되었으나 이런 수출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긴 위한 자생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외형확대에 집착함으로써 원자재의 해외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증가하는 취약한 수출 산업구조를 낳았다.
이러한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시장의 규모와 기업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설비투자를 확장함으로써 부실기업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도 큰 문제였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고, 정부는 또 다른 개발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오는 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기존의 정당구도 및 사회체제를 해체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당구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위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보부의 창설과 정당법의 도입 등을 통해 집권기반의 확대와 정당구도의 안정적 유지를 도모했으나, 정당정치의 특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위기와 통합이라는 기존의 틀이 그대로 반복 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정치인들이 결성한 정당 뿐만 아니라 군인들이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고 조직한 공화당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으므로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불문명한 정통성에 항거라도 하듯 박정권은 들어서자 마사 무섭도록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힘쓰게 된다. 그러한 힘을 뒤에서 받쳐준 것이 미국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러한 절대적 우방을 갖기 위한 박정권의 처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동북아 통합전략에 의한 한일협정과 베트남에서 특수를 보았다고는 하지만 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수적 일 수밖에 없었던 파병까지 박정권은 정치적 정당성에서 오지 못하는 부족함을 다른 면에서 채우고자 하였고,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경제개발 계획이다.
3공화국을 비롯하여 박정권의 시기는 역사적으로 재조명해볼만한 가치가 큰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종신집권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록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참고문헌》
민준기 외4인, 『한국의 정치』, 나남출판, 1996.
박세길,『다시 쓰는 한국현대사2』,돌베게, 1996.
심지연, 『한국정당정치사』, 백산서당, 2004.
이병천, 『개발 독재와 박정희 시대』, 창비, 2003.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건국에서 제3공화국까지』, 들녘, 1998.
최용호,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4.
한배호, 『한국현대 정치론 / 2 : 제3공화국의 형성, 정치과정, 정책』, 오름, 1996.
홍하상, 『주식회사대한민국 CEO박정희』, 국일미디어, 2005.
《참고사이트》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기념관. www.516.co.kr
하지만 이러한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작용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첫째, 소비제 공업에 l중하고 금속공작기계부품공업 등 기초공업건설을 소홀히 함으로써 공업화에 따라 자본재의 도입도 늘어났으며, 무역수지의 적자폭도 확대됐다. 또한 어느 적기에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경제성장의 지속성이 좌우되는 등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둘째, 투자재원의 조달을 정부투융자 및 외자도입에 의존함으로써 통화팽창에 따른 막대한 인플레이션과 외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켰다. 1963년과 1966년에는 전국 도매 물가가 20.5%와 35.1%나 올라 경제의 안정기조를 흔들어 놓았다. 셋째, 공업화 중심의 개발전략으로 농업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때문에 식량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식량의 수입이 늘어났으며, 동시에 이에 비례해서 식량 자급률도 떨어졌다. 넷째, 수출지향적인 개발전략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완결성과 통일성, 그리고 각 산업의 부문간, 업종간 연관성이 낮아지고, 국내의 산업기반이 취약하게 되었다.
(2) 제2차 경재개발 계획(1967-1971)
이 계획은 1967년부터 수립과 추진되었다. 그것은 제 1차 기간 중에 노출된 문제점을 보완해 “농업개발과 고용확대, 중화학 공업의 건설과 과학기술의 진흥”이 중점사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계획에 맞추어진 기본목표는 아래와 같다.
첫째, 식량의 자급자족과 산림녹화, 수산개발
둘째, 철강기계 및 화학공업의 육성을 통한 공업구조의 고도화
셋째, 수출증진과 수입대쳉 의한 경상수지 개선
넷째, 고용의 증대와 인구팽창의 억제
다섯째, 국민소득의 향상, 특히 영농을 다각화하여 농가소득을 증대시킴.
여섯째,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
계획기간 중 연평균 성장은 7%로 잡았다. 또한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제조업을 내수산업에서 수출 또는 수입대체 산업으로 전환하고, 종래의 경공업 중심에서 석유화학, 철강, 기계, 시멘트 등 중화학 공업의 비중을 높이도록 했다.
제 2차 개발계획은 첫해에 농업부문의 타격으로 전체 성장률이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1969년의 목표치를 정점으로 평균 9.7%의 고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는 비료, 시멘트, 정유 등의 기간산업과 수출산업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계획 기간 중 17.9%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2차 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
고도성장과 더불어 국민생활 수준도 양적으로는 향상되었는데, GNP는 1966년의 125달러에서 1971년 278달러로 높아졌으며 고용도 늘어나 실업률이 6.8%에서 4.4%로 낮아졌다. 물가도 안정되어 도매물가 상승률이 1차 기간 보다 절반이나 하락한 7%대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다. 2차 계획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우선 농업을 강화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려 하였으나 농업은 축소되고 3차 산업의 비대화가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이농현상이 급증하였으며 원자재의 해외의존도 심화 등의 현상이 점점 극심해졌다. 또한 수출은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으로 인해 연평균 35.2%나 증대되었고, 수출시장도 98개국으로 다양화 되었으나 이런 수출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긴 위한 자생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외형확대에 집착함으로써 원자재의 해외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증가하는 취약한 수출 산업구조를 낳았다.
이러한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시장의 규모와 기업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설비투자를 확장함으로써 부실기업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도 큰 문제였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고, 정부는 또 다른 개발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오는 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기존의 정당구도 및 사회체제를 해체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당구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위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보부의 창설과 정당법의 도입 등을 통해 집권기반의 확대와 정당구도의 안정적 유지를 도모했으나, 정당정치의 특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위기와 통합이라는 기존의 틀이 그대로 반복 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정치인들이 결성한 정당 뿐만 아니라 군인들이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고 조직한 공화당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으므로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불문명한 정통성에 항거라도 하듯 박정권은 들어서자 마사 무섭도록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힘쓰게 된다. 그러한 힘을 뒤에서 받쳐준 것이 미국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러한 절대적 우방을 갖기 위한 박정권의 처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동북아 통합전략에 의한 한일협정과 베트남에서 특수를 보았다고는 하지만 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수적 일 수밖에 없었던 파병까지 박정권은 정치적 정당성에서 오지 못하는 부족함을 다른 면에서 채우고자 하였고,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경제개발 계획이다.
3공화국을 비롯하여 박정권의 시기는 역사적으로 재조명해볼만한 가치가 큰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종신집권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록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참고문헌》
민준기 외4인, 『한국의 정치』, 나남출판, 1996.
박세길,『다시 쓰는 한국현대사2』,돌베게, 1996.
심지연, 『한국정당정치사』, 백산서당, 2004.
이병천, 『개발 독재와 박정희 시대』, 창비, 2003.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건국에서 제3공화국까지』, 들녘, 1998.
최용호,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4.
한배호, 『한국현대 정치론 / 2 : 제3공화국의 형성, 정치과정, 정책』, 오름, 1996.
홍하상, 『주식회사대한민국 CEO박정희』, 국일미디어, 2005.
《참고사이트》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기념관. www.516.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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