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한 관광사업으로 비무장 지대 개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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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비무장지대 관광사업을 선정한 이유

본론
1. 비무장지대의 가치
2. 비무장지대의 관광 요소
(1) 생물의 다양성
(2) 역사 유산
3. 비무장지대의 관광개발을 위해서는..
(1) 동북아 정세에 맞춰야 한다.
(2) 남북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결론

본문내용

롯한 몇몇 아시아국가들의 외환위기가 세계경제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결과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동북아국가들은 자원, 노동력, 자본, 기술 모든 면에서 협력할 충분한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다가오는 21세기를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력해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외교·안보 분야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협력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냉전논리가 아직도 남아있는 동북아시아국가들의 경제협력은 당사국들의 경제적 안정과 번영은 물론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남북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일단 비무장지대의 관광사업을 활성화 할려면 남북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활발히 함으로서 남북의 통일과 동시에 비무장지대의 통제가 풀려야 한다.
최근 남북한의 활발한 교류에 힘입어 천만 이산가족의 염원인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이어지면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남북한간의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남북한 간의 남북관계의 개선과 통일을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남북대화라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상봉 등 일련의 화해분위기 조성에 밑받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소의 양국적 냉전구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1970년대 이전까지는 남북간에 실질적인 대화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소간에 평화공존이 모색되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남북한은 대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8월 15일「평화통일구상」을 선언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1971년 8월 20일 남북간의 최초의 대화인 적십자회담이 성사되었고 이어 남북당국간의 비밀접촉을 통해「7·4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남북조절위원회가 설치·운영되었다. 그러나 남북간에 대화통로가 트였다는 역사적 의의는 있었지만 구체적 진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1980년대에는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LA올림픽경기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참가를 위한 남북체육회담, 로잔느 체육회담, 1984년 수재물자 인도·인수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경제회담 등 남북간에 다양한 접촉과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는 1985년 9월 20일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50명)과 예술공연단(50명)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국제경기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참가를 위한 남북체육회담을 계기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하였다. 특히,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발효시키고, 3개분과위원회(정치, 군사, 교류·협력)를 구성·운영하였으며, 5개 공동위원회(화해, 군사, 경제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핵통제)를 설치키로 합의함과 아울러「화해」,「불가침」,「교류·협력」등 3개 분야의 부속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발효시켰다.
이로써 남북이 화해와 협력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틀을 마련, 교류·협력시대로 진입해 가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국민의 정부」는 1998년 출범이래 남북한 문제는 남북당국간 직접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실천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실천이 무엇보다 시급하며,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시키는 기본틀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국민의 정부」는 한·미 공조체제 유지와 중국의 협조를 바탕으로 4자회담을 병행추진하여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천만 이산가족의 염원인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에서 일대 전환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대결과 불신을 지속해 왔던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서는 상호 비방·중상이 중지되고,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었으며,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남북연락사무소가 업무를 재개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의 교류를 통해 냉전이었던 관계를 이제는 동족이라는 이름 아래 통일을 앞두고 있으며, 그러면 당연히 비무장지대의 개방과 함께 관광사업을 쉽게 추진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민족간의 교류와 왕래를 끊고 민족 분단의 장벽으로 자리잡은지 반세기이다. 비무장지대는 많은 동식물과 역사적 유산들이 있다. 그리고 남과 북의 100만 여명에 가까운 군대가 밤낮으로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의 안보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남북한의 냉전체제로 인해 관광요소들을 황무지에 버려진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동족상잔의 총성이 멎은 지 반세기가 흘렀다. 이러한 비무장지대인 155마일 휴전선에는 전쟁의 아픔과 역사가 숨쉬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일반인들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원래대로 잘 보전되어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또한 세계에서 이곳만이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러한 비무장지대의 관광이 자유롭게 아무런 구속 없이 이루어 져야 할때가 왔다. 비무장지대에 지뢰들이 엄청나게 매설되어 있는데 이것도 또한 문제이다. 관광객의 안전성을 위해서는 엄청나게 매설되어 있는 지뢰들은 제거를 하는 동시에 남북한이 서로 겨누고 있는 총구를 없애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적 노력과 함께 국제적 교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가면 곧 비무장지대를 자유로운 관광지의 한곳으로 만들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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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26
  • 저작시기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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