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또 다른 사람은 그렇게까지 모질게 살진 않았을지라도 그저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나 역사는 남을 위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만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으로 역사에 족적을 남길 것인가?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는 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왕이면 인류사에 보탬이 되는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번에,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오직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자기 앞에 가로 막힌 모든 난관을 헤쳐나간 사람의 전기를 읽었다.
피부색은 노력한다고 바뀌어 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피부색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배움에 대한 열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한, 그에게는 오르지 못할 산이 없었고 넘지 못할 강이 없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계획이나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선이해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시방은 꿈을 상실한 시대인 것만 같다. 여지껏 교육이 무엇을 했길래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소망하나 심어주지 못했을까. 학생들은 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지 않는 걸까.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땅콩박사」에서 찾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카버 주위엔 항상 그를 돕는 자들로 넘쳐났다. 카버가 어떠했길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을까? 조지 카버에겐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바른 시각' 이었다. 그의 출생은 아주 비천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조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이런 시각이 조지 카버를 '조지 카버' 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인간이었다. 인종차별을 당할 때 왜 아니 괴로웠겠는가. 그러나 그 아픔과 그 쓰라림을 겪을수록 더욱 고삐를 쥐어 잡고 바른 삶을 살아내려고 몸부림 쳤던 것이다. 비틀거릴지언정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 바로 이것을 우리 학생들이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삶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르치는 장(場)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조지 워싱턴 카버는 한줌의 누룩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모든 요리에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지만 그 소금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듯, 카버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고도 묵묵히 자기의 길만 걸어갔다. 그러나 카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별로 없었다. 카버가 그렇게 '위대한 영혼'이라 찬사 받는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열과 성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곳에는 벌써 인생의 의미가 스러져
) 스러지다 : 모양이나 자취가 없어지다.
버리고 만 뒤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각각 정한 목표를 향해 전진 또 전진!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은 '결코 중단치 않음' 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역사는 남을 위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만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으로 역사에 족적을 남길 것인가?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는 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왕이면 인류사에 보탬이 되는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번에,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오직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자기 앞에 가로 막힌 모든 난관을 헤쳐나간 사람의 전기를 읽었다.
피부색은 노력한다고 바뀌어 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피부색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배움에 대한 열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한, 그에게는 오르지 못할 산이 없었고 넘지 못할 강이 없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계획이나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선이해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시방은 꿈을 상실한 시대인 것만 같다. 여지껏 교육이 무엇을 했길래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소망하나 심어주지 못했을까. 학생들은 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지 않는 걸까.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땅콩박사」에서 찾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카버 주위엔 항상 그를 돕는 자들로 넘쳐났다. 카버가 어떠했길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을까? 조지 카버에겐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바른 시각' 이었다. 그의 출생은 아주 비천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조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이런 시각이 조지 카버를 '조지 카버' 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인간이었다. 인종차별을 당할 때 왜 아니 괴로웠겠는가. 그러나 그 아픔과 그 쓰라림을 겪을수록 더욱 고삐를 쥐어 잡고 바른 삶을 살아내려고 몸부림 쳤던 것이다. 비틀거릴지언정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 바로 이것을 우리 학생들이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삶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르치는 장(場)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조지 워싱턴 카버는 한줌의 누룩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모든 요리에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지만 그 소금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듯, 카버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고도 묵묵히 자기의 길만 걸어갔다. 그러나 카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별로 없었다. 카버가 그렇게 '위대한 영혼'이라 찬사 받는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열과 성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곳에는 벌써 인생의 의미가 스러져
) 스러지다 : 모양이나 자취가 없어지다.
버리고 만 뒤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각각 정한 목표를 향해 전진 또 전진!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은 '결코 중단치 않음' 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