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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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 례
1. 신중현은 이렇게 말했다

2. 한국 음악의 연대기, 신중현 연보
출생에서 '60년대까지
'70 년대에서 현재까지

3. 앨범 2제
[ 신중현과 엽전들 ] 1 집
[A TRIBUTE TO 신중현]

본문내용

. 음악이 서술적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음악은 샘플러의 도움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음악 작업에 샘플러를 사용하시는 편입니까?
기본적으로 샘플러는 인간의 감정을 담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 첨단 장비를 많이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날 위해 그걸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에 끌려 다니지는 않는다. 감정을 살리는 데 도움을 받는 정도이다.
<님아>,<님은 먼 곳에>,<미인>등 신중현 씨의 노래를 여러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게 유행입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리메이크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난 옛날 사람이다. 요새 사람들의 정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감각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메이크하는 사람들의 음악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다. 구세대의 음악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노장사상에 심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위자연>은 그 과정에서 나온 음반으로 알고 있는데요.
노장사상은 나이가 들어야 깨닫게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 버리라고 하면 통하겠는가? 난 이미 화려한 세계를 떠났다. 노장사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희망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이다. '무위자연'의 음악은 그래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듣는 사람도 없다. 음악의 형태도, 멜로디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굉장히 폭넓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신중현씨를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라고 말합니다. 선생님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음악하는 젊은이들이 음악의 한도를 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무질서하다.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다라는 생각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무질서가 계속 될 뿐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어떻게 점칠 수 있을까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며 문화인이 전멸되었다. 그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이 음악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문화는 내적인 얼굴이다. 모두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길 바란다. 난 한국인만의 멋과 흥, 가락이 있다고 믿는다.
후배 음악인들은 한겨레 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산에 : 신중현 선생님을 통해 우리 음악의 뿌리를 찾았고, 그 위에서 제 음악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김광민 : 그는 우리 현대 대중음악을 만들었고, 항상 새로운 음악 세계를 향한 음악의 개척자였습니다.
김목경 : 이번 공연에서 그의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대중음악에도 이렇게 좋은 곡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 대중음악이 있는 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선배이자 스승입니다.
사랑과 평화 : 우리 음악이라고 해봤자 트로트밖에 없던 시절 그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가요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신대철 : 아버님은 우리 대중음악의 틀을 잡으신 분이고, 또 우리 대중음악의 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기신 분입니다.
윤도현 밴드 : 존경하는 신중현 선생님께 바치는 공연에 참가하게 돼 영광입니다.
이은미 : 만일 선생님의 음악이 제대로 이어지기만 했다면 지금 우리 대중음악이 얼마나 풍성해졌을까요….
이중산 : 소탈하고 자연미 넘치는 그의 음악은 바로 우리 대중음악이 나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원형·한상원 :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한국적 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합니다. 서양음악의 12음계를 통해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죠.
한영애 : 신중현 선생님은 우리 음악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대야 할 언덕이죠.
김민기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사라진 2년 뒤 한국 대중음악사는 또 다른 불세출의 비극적 영웅을 영접한다. 이미 '히트곡 제조기'라는 명성을 움켜진 신중현이었다. 30대 중반을 넘긴 그는 '엽전들'이라는 자괴적 비하감이 넘치는 3인조 밴드 수장으로 어느 누구도 가지 못했던 길을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김민기가 경기고와 서울대라는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면, 신중현은 전쟁과 미8군 무대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시밭 길을 헤쳐 온 낙오자 (dropout)정신의 화신이었다. 김민기가 현실주의적 상상력으로 대중음악도 역사에 개입할수 있다는 기념비를 세웠다면, 신중현은 음악과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 대중음악계의 변방 한국 대중음악이 독자적 예술문법을 창조할 수 있다는 바벨탑을 쌓았다.
김민기 71년 앨범은 시장에서 사라져 신화로 남았지만,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은 당시 1차 오일 쇼크로 뿌리채 흔들리던 음반산업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앨범 머리곡 '미인'은 글자 그대로 '3천만의 애창곡'이 되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폭발적 성공은 노래와 앨범이 품고 있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진정성을 한켠으로 밀어 놓는데 기여했다. 가장 기본적인 록 밴드형태를 갖춘 신중현과 동료 2명은 일본 엔카 오음계 대신 한국계면조에 입각한 오음계를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서구 록음악의 보편적 4박자 리듬 패턴에 시골 장터의 떠들썩한 타령 장단을 입혔으며, 기름기 흐르는 일렉트릭 기타 굉음 속에 명백히 가야금의 섬세한 미음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새로운 기타 음색을 퍼올렸다.
그리고 주목하라. 앨범 5번째 트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여가 나갈 때의 요령 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카우벨과 북 울림을 닮은 드럼만을 고용한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노래의 노랫말은 '해랑사를너는나, 해아좋를너는나'라는 단 2줄 밖에 없다.
선율의 고정관념을 해체시켜 버린 이 노래는 말을 뒤집음으로써 의미사슬체계마저 파괴시킨다. 이 키 작은 예술가는 세상에 미만한 거짓 '사랑타령'을 이렇게 전복시켜 버렸다. 그러나 그 역시 이듬해 긴급조치 9호 소용돌이 속에서 '대마초 왕초'란 낙인을 받고 마녀사냥의 희생이 되고 말았다.
한국 대중음악은 다시 기나긴 매너리즘의 굴 속으로 들어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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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24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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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1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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