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뚫어 눈과 입을 나타낸 얼굴 등이 있다. 동삼동 유적은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 쳐 형성되어 남해안 신석기 문화를 편년하는데 있어 표준이 되는 유적이다.
4) 서울 암사동
사적 267호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선사거주지로 1925년 대홍수 때 발견된 이후 여러 차례 조사, 발굴되었다. 세 개의 문화층에서 25개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최하층은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 문화층으로서 선사거주지의 대부분 이 이 층에서 발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형태가 원형에 가까운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움집으로 내부에서 동을 돌려 만든 화덕이 있다. 토기는 태토에 활석 석면이 섞여있고 무늬는 다양하다. 석기는 주로 강가의 자갈을 이용하여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갈돌 등이고 자연유물로는 탄화된 도토리와 새뼈가 있다.
7. 시기구분 및 성격
서기전 5000 년 경부터 약 1500 년 동안의 전기 신석기 문화는 서해안지역에서는 전형적 빗살무늬토기Ⅰ류가 주류를 이룬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구연부에만 무늬를 새긴 평저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오산리 하층과, 함북 서포항 Ⅰ, 그리고 남해안 지역에서는 융기문 토기와 원시무문토기의 조도기로 대표된다. 전기에는 주로 어로생활에 전념하면서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병행하였던 어로 수렵 사회적 성격을 가진다. 신석기 시대 중기는 서해안지역의 경우 전형적 빗살무늬토기에 변화가 생겼고 동해안에서는 어골문이 성행되는 시기이다. 서기전3500 년 경에서 2000 년 경까지 약1500년 동안이다. 전기와 마찬가지로 수혈 거주지에서 생활하였으며 생활도구나 생활경제에 있어서 전기와 큰 차이가 없고 아직 농경이전 단계의 어로 수렵에 의존한 사회에 해당된다. 후기에 서해안지역의 경우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와 퇴화되어 구연부에만 시문하게 되며, 동해 남해안지역에서도 퇴화, 변형되는 시기이다. 서기전 2000 년에서 1000 년까지의 대략 1000 년간인데 이 시기에 들어가면서 서해안지역에서 생업경제상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지탑리유적에서 피 또는 조 등의 재배곡물이 석제 농경구와 함께 발견되고, 궁산리에서는 돌가래, 뿔, 갈이빨로 만든 낫과 같은 농경구가 발견됨으로써 한정된 지역에서나마 후기에 들어서면 초보적 단계의 전작 농경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 신석기시대의 전반적 개관을 살펴봤다. 인류문명의 발전단계의 하나이자 석기시대의 새로운 부분으로 서 신석기시대는 홍적세에서 충적세로 전환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의 전환 그리고 수렵, 어로 채집에서 가축사용 농경으로의 전환을 그 특징으로 한다. 채집경제 단계에서 생산경제 단계로 변해가면서 산업혁명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발전 을 이루었고 그런 발전은 계급의 성립 도시와 국가의 탄생을 촉진 시켰다. 우리 나라의 신석기 문화유적은 150군데가 넘으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석기시대 자료를 볼 때 자연환경은 지금과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따뜻하고, 바닷물의 높이도 더 높을 때도 있었다. 움집을 짓고 살며 조개더미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잡곡농사를 지었고, 어로와 사냥을 생활수단으로 이용했다. B.C 1000 년경부터 청동기가 들어오면서 새 문화의 확산이 가속되었고 B.C 500년경이 되면 지석묘, 청동기가 전국을 완전히 덮게되어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신석기 문화는 완전히 소멸된 듯하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 국 사 1] 1977
이용조 우종윤외 [우리의선사문화 1] 지식산업사 1994
장준식외 [한국 민족문화의 의식] 정훈 출판사 199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3] 1981
김원룡 한국 [고고학개설] 일지사1977
이기백 이기동 공저 [한국사 강좌] 일조각 1982
4) 서울 암사동
사적 267호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선사거주지로 1925년 대홍수 때 발견된 이후 여러 차례 조사, 발굴되었다. 세 개의 문화층에서 25개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최하층은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 문화층으로서 선사거주지의 대부분 이 이 층에서 발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형태가 원형에 가까운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움집으로 내부에서 동을 돌려 만든 화덕이 있다. 토기는 태토에 활석 석면이 섞여있고 무늬는 다양하다. 석기는 주로 강가의 자갈을 이용하여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갈돌 등이고 자연유물로는 탄화된 도토리와 새뼈가 있다.
7. 시기구분 및 성격
서기전 5000 년 경부터 약 1500 년 동안의 전기 신석기 문화는 서해안지역에서는 전형적 빗살무늬토기Ⅰ류가 주류를 이룬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구연부에만 무늬를 새긴 평저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오산리 하층과, 함북 서포항 Ⅰ, 그리고 남해안 지역에서는 융기문 토기와 원시무문토기의 조도기로 대표된다. 전기에는 주로 어로생활에 전념하면서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병행하였던 어로 수렵 사회적 성격을 가진다. 신석기 시대 중기는 서해안지역의 경우 전형적 빗살무늬토기에 변화가 생겼고 동해안에서는 어골문이 성행되는 시기이다. 서기전3500 년 경에서 2000 년 경까지 약1500년 동안이다. 전기와 마찬가지로 수혈 거주지에서 생활하였으며 생활도구나 생활경제에 있어서 전기와 큰 차이가 없고 아직 농경이전 단계의 어로 수렵에 의존한 사회에 해당된다. 후기에 서해안지역의 경우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와 퇴화되어 구연부에만 시문하게 되며, 동해 남해안지역에서도 퇴화, 변형되는 시기이다. 서기전 2000 년에서 1000 년까지의 대략 1000 년간인데 이 시기에 들어가면서 서해안지역에서 생업경제상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지탑리유적에서 피 또는 조 등의 재배곡물이 석제 농경구와 함께 발견되고, 궁산리에서는 돌가래, 뿔, 갈이빨로 만든 낫과 같은 농경구가 발견됨으로써 한정된 지역에서나마 후기에 들어서면 초보적 단계의 전작 농경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 신석기시대의 전반적 개관을 살펴봤다. 인류문명의 발전단계의 하나이자 석기시대의 새로운 부분으로 서 신석기시대는 홍적세에서 충적세로 전환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의 전환 그리고 수렵, 어로 채집에서 가축사용 농경으로의 전환을 그 특징으로 한다. 채집경제 단계에서 생산경제 단계로 변해가면서 산업혁명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발전 을 이루었고 그런 발전은 계급의 성립 도시와 국가의 탄생을 촉진 시켰다. 우리 나라의 신석기 문화유적은 150군데가 넘으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석기시대 자료를 볼 때 자연환경은 지금과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따뜻하고, 바닷물의 높이도 더 높을 때도 있었다. 움집을 짓고 살며 조개더미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잡곡농사를 지었고, 어로와 사냥을 생활수단으로 이용했다. B.C 1000 년경부터 청동기가 들어오면서 새 문화의 확산이 가속되었고 B.C 500년경이 되면 지석묘, 청동기가 전국을 완전히 덮게되어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신석기 문화는 완전히 소멸된 듯하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 국 사 1] 1977
이용조 우종윤외 [우리의선사문화 1] 지식산업사 1994
장준식외 [한국 민족문화의 의식] 정훈 출판사 199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3] 1981
김원룡 한국 [고고학개설] 일지사1977
이기백 이기동 공저 [한국사 강좌] 일조각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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