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로서 한국근대경제사의 전개와 식민지자본주의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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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민지로서 한국근대경제사의 전개와 식민지자본주의의 전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같은 시기 세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일제가 확립한 새 제도에서 힘입은 바 크다. 식민지체제는 억압과 착취를 함과 동시에 식민지개발을 위한 근대적 개혁도 단행하였고, 한국인들은 일제에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자본가·노동자의 여러 계급으로서 스스로 노력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광복 후 한국은 개방체제를 통한 후발성의 이익
) 안병직 -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후발자본주의가 선발자본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 매우 다양하지만,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자본과 기술의 도입일 것이다.
을 적극 흡수하여 중진공업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경제발전이야말로 한국의 핵심적인 현대사적 과제이고 '한국 근현대사의 유일한 객관적인 발전방향'이며, 여기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고찰할 필요성이 있다. 식민지사를 경제성장사적 맥락에서 고찰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크게 훼손하는 작업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국근현대사가 민족정기라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과학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즉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식민지유제의 청산이라는 '과거지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살아있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적 과제인 선진화와의 논리일관성 하에서 식민지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식민지화의 열등감이나 분노를 극복하고, 미래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독립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 안병직, 앞의 논문
그림 > 일제강점기 산업생산 비중 추이
출처: 고등학교 역사부도.1999(두산)
전거: 한국사-13(한길사)
그림 > 산업별 국민순생산의 추이
출처: 정진성-식민지기 공업화와 그 유산
전거: 構口敏行·梅村又次 편(1988)
그림 4 > 일제강점기 제조업 종업원 수
출처: 안병직, 김낙연- 한국경제성장의 장기추세
전거: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그림 3 > 일제강점기 제조업체 수
출처: 안병직, 김낙연- 한국경제성장의 장기추세
전거: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그림 1,2,3,4는 일제강점기 공업발전상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산업구조는 농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광·공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었으며, 각 부분의 생산액은 괄목할 만큼 증가했다. 그리고 제조업 규모는 꾸준히 크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는 산업 사회로의 진입 현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건설이 충실하여 화물수송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 안병직, 中村哲, 『근대조선 공업화의 연구』, 1993, 일조각
정재정-조선총독부의 철도정책과 물자이동 P.162 <표 5-1> '철도화물의 산업별 구성의 추이'
이 글에 따르면, 1910년에는 80만톤 가량이었던 철도화물 수송량이, 식민지 기간동안 꾸준히 증가하여 1944년에는 3090만톤을 넘어섰다고 한다.
또한 종래 수탈론이 공업화 과정에서 군수공업만 발달하였다고 비판했던 것과 달리 사실은 생산력확충부문 이 주 내용이었다는 것이 '근대화론'의 주장이다. 아울러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루어진 근대교육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루는 인적 자원을 배출해냈다고 평가한다.
) 비록 초등교육 중심이었다는 한계는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제도교육이 광복후 근대적 역량을 가진 한국인을 길러내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화론’은 이러한 식민지시기에 이루어진 경제 성장에 주목하며, 이를 강조한다. 심지어는 징용·징병 등 일제의 악랄하고 폭력적인 인력수탈조차 자본주의적 고통의 경험이라 표현하며
) 안병직, 앞의 논문
, 이러한 시련 속에서 자기성장을 도모한 한국인에 주목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가 벌인 수탈보다도 한국의 자본주의화에 대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공헌을 중시한다. 앞에서 언급한 '경제성장 중심의 역사인식'이란 바로 이러한 것을 말함일 것이다.
Ⅳ. 결론
지금까지 식민지로서 한국 근대경제사에서 일제가 식민지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어떠한 정책들을 사용하였는지, 그리고 그 정책들로 인하여 어떠한 변화 양상을 보여왔는지 대표적인 몇 가지 것들-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공업화 정책과 민족자본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적 토지소유의진전에 따라 봉건제의 해체와 새로운 경제체제의 형성을 부정하고 종래의 토지소유관계를 지주주도형으로 변혁하고 이들 지주를 식민지 지배의 사회적 지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으며 산미증식 계획은 쌀 재배에 편향된 노동 재배치를 통하여 단작화를 초래하고 쌀의 이출 극대화라는 일본의 정책 목표와 적합한 방향으로 발전했으며 이것은 전후의 농업공황기에 미가 폭락을 통한 농민 몰락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일본 농법의 강제로 조선의 재래농법이 파괴됨으로써 재래 농법에 의거 성장하던 계층을 파괴시킴으로써 식민지 농업구조 편성의 생산력적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제에 의한 공업화 정책은 일본 독점 자본이 조선에 진출해온 것을 강력한 동인으로 하여 강압적인 상부에서 하부로의 생산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고 자본 임노동의 확대 과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업화는 민족적으로 자주적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 아니었으며 독점 자본이 식민지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착취와 수탈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또한 본론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즉, 소위 말하는 근대화 이론과 수탈론의 문제를 약간이나마 살펴본 것이다. '근대화론' 논의가 치열한 논쟁으로 비화한 것은 사관 자체가 판이하기 때문으로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역사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 문제는 어느 쪽은 진실이고 어느 쪽은 왜곡이라고 흑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대에 있어 바람직한 역사관을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서로 판이한 사관에 입각한 양측의 주장을 두서없이 나열한 것에서의 혼란스러움이 없지 않고 일천한 수준에서 어떠한 결론적인 단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역사인식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키워드

식민지,   일제시대,   한국,   근대,   경제사,   일본,   자본주의,   전개
  • 가격3,0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10.05.27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4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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