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책 소개
Ⅱ. 저자소개
Ⅲ. 구 성
Ⅳ. 저술 의도와 목적
Ⅴ. 요 약
1. 문화의 종교적 경시자
2. 신뢰를 얻은 피조물
3. 왕에게 적합한 신학
4. 물질에 대한 유혹
5. 현대신학에 있어서의 성숙의 의미
6. 선교를 위한 모형으로서의 지혜자
7. 신정통주의 자녀의 불안한 명상
Ⅴ. 서 평
1. 지혜문학의 폭 넓은 범위
2. 왕들에게 요구된 책임성의 신학 - 책임성
3. 허위성을 극복하는 지혜전승
4. 지혜전승의 한계와 자리
Ⅵ. 총 평
Ⅱ. 저자소개
Ⅲ. 구 성
Ⅳ. 저술 의도와 목적
Ⅴ. 요 약
1. 문화의 종교적 경시자
2. 신뢰를 얻은 피조물
3. 왕에게 적합한 신학
4. 물질에 대한 유혹
5. 현대신학에 있어서의 성숙의 의미
6. 선교를 위한 모형으로서의 지혜자
7. 신정통주의 자녀의 불안한 명상
Ⅴ. 서 평
1. 지혜문학의 폭 넓은 범위
2. 왕들에게 요구된 책임성의 신학 - 책임성
3. 허위성을 극복하는 지혜전승
4. 지혜전승의 한계와 자리
Ⅵ. 총 평
본문내용
함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지혜문학에서 말하는 책임의 관점, 책임의 신학은 선과 악에 대한 바로 그것이라 판단된다.
3. 허위성을 극복하는 지혜전승
저자가 이제 자신이 생각하는 지혜전승의 제일 중요한 가치를 밝힌다. 그것은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욥의 상황을 들어 그것을 증거한다. 욥의 신앙은 바로 자기 세계와의 대화이며, 신학을 한다는 것은 지적인 훈련과 정직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별히 욥기서에 사용된 시인의 방법은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지혜문학 또는 지혜전승은 바로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게 만든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부분에서 변질되어가고 있다. 허위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금 나쁘게 표현하자면 본질을 잃어가고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배는 이런 관점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데 요즘 교회는 관계의 회복보다는 오히려 예배의 분위기, 예배의 수준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성도들은 찬양대의 찬양과 목사의 설교를 듣고 평가하기 바쁘고 심지어 그 아름다운 소리들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세계관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로 하여금 그 허위성에 물들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도 그렇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 거짓과 허위에 노출되어 있다. 욥기서에 등장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그리고 당대의 문화와 이웃에게 또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속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이러한 속임, 허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말세지말에 우리는 깨어 근신하며 참 지혜와 진리 안에서 오히려 허위성을 들어내는 주의 빛된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혜문학이 우리에게 이런 힘을 제공해 줄 것이다.
4. 지혜전승의 한계와 자리
저자는 지혜전승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이유는 지혜전승의 한계성 때문인데 다른 많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지혜전승에는 몇 가지의 한계점들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은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 그럴 때 보다 더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그것의 한계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그들은 지혜전승이 “성서적”이냐 하는 질문을 한다. 지혜신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사나 또는 하나님의 강력한 활동 그리고 대부분 교회 전승에 중심부분이 되는 모세 예언자의 신앙 어떤 부분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지혜신학은 우리의 하나님 이해에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그는 우리와의 거리가 먼 숨은 하나님이다. 세 번째로, 지혜신학이 부당한 신학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거는 문제는 그 같은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끝으로, 이 지혜신학이 19세기의 “사회복음”(Social Gospel)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이상의 제안은 지혜문학에 대한 한계성을 외면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이 한계성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로 연결지어 극복한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지혜문학이 성서적이냐는 질문은 구원사와 율법의 준수와 연관되어 있고 이것은 또한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혜전승은 외면상 그것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구원과 현존하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은 예수 그리스를 통해 성취된다고 볼 때 저자는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의 접촉점을 찾은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혜신학의 스승들은 예수 가르침의 중심적인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며 자유로우며 책임성이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이 뜻하던 대로의 인간이 될 수 있는 보장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혜문학은 신앙적이며 성서적인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다룬 지혜문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보았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실질적인 세계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구조적인 권위로는 변두리에서 있었다. 그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지만 공식적인 자리는 차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왕 바로 곁에 서 있었지만 큰 명절에도 사람들 눈에 별로 띄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하였다. 우리는 교회에 봉사하는 면에서 성서연구의 이 같은 새로운 강조점을 추구함으로써 중심부는 곧 변두리이며 변두리 역시 중심부가 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야 한다.
지혜문학의 삶의 자리는 안으로부터 시작해서 밖으로 나아가야 하며 밖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수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택과 책임을 다하는 그 자리가 바로 지혜문학이 바로 서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부터 지혜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곳이 바로 지혜자와 함께 하는 자리이며 그곳으로부터 지혜가 전승되어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Ⅵ. 총 평
브루지만은 『지혜전승연구』를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 시대의 지혜 전승을 집중 으로 연구하였다. 거기에는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욥기의 내용이 포함된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지혜문헌에 대한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다. 그도그럴것이 지혜문학에는 한계성이 있기 때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문학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신앙의 해석을 요구한다. 특별히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함으로 미래의 삶은 현재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요구에 대한 일련의 지침을 제공하여 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브루지만의 『지혜전승연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풀리지 않던 문제에 길을 제공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신학의 길로 인도하는 유익을 안겨준다.
3. 허위성을 극복하는 지혜전승
저자가 이제 자신이 생각하는 지혜전승의 제일 중요한 가치를 밝힌다. 그것은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욥의 상황을 들어 그것을 증거한다. 욥의 신앙은 바로 자기 세계와의 대화이며, 신학을 한다는 것은 지적인 훈련과 정직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별히 욥기서에 사용된 시인의 방법은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지혜문학 또는 지혜전승은 바로 당대인들이 사용한 허위성을 피할 수 있게 만든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부분에서 변질되어가고 있다. 허위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금 나쁘게 표현하자면 본질을 잃어가고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배는 이런 관점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데 요즘 교회는 관계의 회복보다는 오히려 예배의 분위기, 예배의 수준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성도들은 찬양대의 찬양과 목사의 설교를 듣고 평가하기 바쁘고 심지어 그 아름다운 소리들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세계관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로 하여금 그 허위성에 물들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도 그렇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 거짓과 허위에 노출되어 있다. 욥기서에 등장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그리고 당대의 문화와 이웃에게 또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속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이러한 속임, 허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말세지말에 우리는 깨어 근신하며 참 지혜와 진리 안에서 오히려 허위성을 들어내는 주의 빛된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혜문학이 우리에게 이런 힘을 제공해 줄 것이다.
4. 지혜전승의 한계와 자리
저자는 지혜전승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이유는 지혜전승의 한계성 때문인데 다른 많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지혜전승에는 몇 가지의 한계점들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은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 그럴 때 보다 더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그것의 한계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그들은 지혜전승이 “성서적”이냐 하는 질문을 한다. 지혜신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사나 또는 하나님의 강력한 활동 그리고 대부분 교회 전승에 중심부분이 되는 모세 예언자의 신앙 어떤 부분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지혜신학은 우리의 하나님 이해에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그는 우리와의 거리가 먼 숨은 하나님이다. 세 번째로, 지혜신학이 부당한 신학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거는 문제는 그 같은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끝으로, 이 지혜신학이 19세기의 “사회복음”(Social Gospel)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이상의 제안은 지혜문학에 대한 한계성을 외면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이 한계성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로 연결지어 극복한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지혜문학이 성서적이냐는 질문은 구원사와 율법의 준수와 연관되어 있고 이것은 또한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혜전승은 외면상 그것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구원과 현존하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은 예수 그리스를 통해 성취된다고 볼 때 저자는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의 접촉점을 찾은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혜신학의 스승들은 예수 가르침의 중심적인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며 자유로우며 책임성이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이 뜻하던 대로의 인간이 될 수 있는 보장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혜문학은 신앙적이며 성서적인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다룬 지혜문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보았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실질적인 세계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구조적인 권위로는 변두리에서 있었다. 그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지만 공식적인 자리는 차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왕 바로 곁에 서 있었지만 큰 명절에도 사람들 눈에 별로 띄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하였다. 우리는 교회에 봉사하는 면에서 성서연구의 이 같은 새로운 강조점을 추구함으로써 중심부는 곧 변두리이며 변두리 역시 중심부가 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야 한다.
지혜문학의 삶의 자리는 안으로부터 시작해서 밖으로 나아가야 하며 밖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수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택과 책임을 다하는 그 자리가 바로 지혜문학이 바로 서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부터 지혜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곳이 바로 지혜자와 함께 하는 자리이며 그곳으로부터 지혜가 전승되어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Ⅵ. 총 평
브루지만은 『지혜전승연구』를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 시대의 지혜 전승을 집중 으로 연구하였다. 거기에는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욥기의 내용이 포함된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지혜문헌에 대한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다. 그도그럴것이 지혜문학에는 한계성이 있기 때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문학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신앙의 해석을 요구한다. 특별히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함으로 미래의 삶은 현재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요구에 대한 일련의 지침을 제공하여 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브루지만의 『지혜전승연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풀리지 않던 문제에 길을 제공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신학의 길로 인도하는 유익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