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1장 교리와 교리사
제 2장 구약 성경의 교리적 근거
제 3장 교리의 신약적 근거
제 4장 제 2세기 삼위일체론 논의의 시작
제 5장 3세기 삼위일체론
제 6장 아레오스 논쟁과 니카야 공회의
제 7장 삼위일체 교리
제 8장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과 아다나시우스 신경
제 9장 기독론 논의의 시작
제 10장 아폴리나리스주의와 정통파의 대응
제 11장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기독론
제 12장 칼케돈 공회의의 기독론 교리 확정
제 13장 단일 본성론 논쟁과 제 5차 에큐메닉공회의
제 14장단일 의지론논쟁과 제 6차 에큐메니칼 공회의
제 15장 성상숭배와 787 제 2차 니케아 공회의
문제사례 1. 사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
문제 사례 2 : 목회자 자녀
문제 사례 3 : 잘못된 권위 세우기-교우들 경쟁 부추기기
제 2장 구약 성경의 교리적 근거
제 3장 교리의 신약적 근거
제 4장 제 2세기 삼위일체론 논의의 시작
제 5장 3세기 삼위일체론
제 6장 아레오스 논쟁과 니카야 공회의
제 7장 삼위일체 교리
제 8장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과 아다나시우스 신경
제 9장 기독론 논의의 시작
제 10장 아폴리나리스주의와 정통파의 대응
제 11장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기독론
제 12장 칼케돈 공회의의 기독론 교리 확정
제 13장 단일 본성론 논쟁과 제 5차 에큐메닉공회의
제 14장단일 의지론논쟁과 제 6차 에큐메니칼 공회의
제 15장 성상숭배와 787 제 2차 니케아 공회의
문제사례 1. 사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
문제 사례 2 : 목회자 자녀
문제 사례 3 : 잘못된 권위 세우기-교우들 경쟁 부추기기
본문내용
심에는 사모님이 있다. 이 사모님은 다른 교회의 사모님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자신이 상당히 잘났다고 생각하신 점과, 둘째, 성격적으로 남성을 따른다거나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기관에서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 항상 목사님께 보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모님께 가장 먼저 들어가고 그것을 그분이 결정한다. 아니 사모님이 결정한 것을 통보하고 지시한다. 목사님은 수수방관한다. 사실 목사님의 리더쉽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상은 제가 사역하는 교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단지 좀 심할 뿐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모든 결정은 사모가 한다는 말이다. 당회에서 죽어서 싸우고 결정이 되어도 단 몇 초에 그 결정이 뒤집어 진다. 또 식당에서 주일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구역이 담당하는데 식당에 들어간 사람 한 사람도 제외됨 없이 다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한다. 각 주일학교도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런데도 십년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모님이 잘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교인들은 사모님을 소위 내 놓았다는 것이다. 해 봤자 자신만 상처를 입으니 그냥 내 버려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이중적 행태들을 보이는 것이다. 목사님과 사모님 앞에서 웃고 아부의 별짓을 다 하는데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으니, 뒤 돌아서면 다 들 욕하는 것이다. 사모님이 하도 강해서 누구하나 나서서 말하거나 퇴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님이 전임자를 친 교우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라며 불행했던 것을 상기시켜 못하게 막는다. 기복주의 설교를 통해서 대들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모는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연약한 교우들의 심령과 육심을 피곤하게 하고 피폐하게 하여 예배당 나오는 것이 짜증이 되게 한다.
문제 사례 2 : 목회자 자녀
연초에 중고등부에서 잘 하시던 선생님이 중고등부 선생을 그만하고 유초등부에서 교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은 평상시 중고등부에서 많은 애착과 열성을 가지고 일했던 분이어서 의외어서 그 이유를 꼬치 꼬치 깨물었더니 이유는 목회자 자녀 때문에 도저히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을 봐도 인사도 하지 않고 반말 투의 말이니 40이 넘은 사람으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 얘들은 나한테도 인사를 안 한다고 해서 설득했지만 결국 유초등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목사님 딸과 선생님이 말 다툼이 주일날에 일어나서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깜짝 놀라 무슨일 인가 해서 달려가봤더니 목사님 딸은 울고 불고 소리를 높이는데 훨씬 더 나이 많은 아니 그 중고등부에서 가르쳤던 선생님 아무 말없이 있는 것이었다. 목사님 딸이 대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모님이 오시더니 자신의 딸을 편들고 선생님을 막 머라 하시는 것이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난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싸우면 무조건 자신의 딸이 아니라 상대방이 불러서 혼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상 있는 일이라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이런 일이 매 주일 반복된다. 점심 식사를 하는데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항상 반찬과 밥을 쟁반이 부서지게 챙겨서 어디로 나르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냐고 했더니 사택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 목사님 사모님이 다 여기 있는데 왜 보내느냐고 했더니 아이들 갔다 준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인 딸들이다. 아니 같이 먹으면 되고 또 따로 먹고 싶으면 가지고 갈 것이지.... 화가 치밀어서 막렸더니 그 다음 말이 가관이다. 전도사님 그러시면 안돼요. 이것은 사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 목사님 내외분이 어떻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지 교우들에게 물었더니 목사님 자녀도 목사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쩌구니가 없었다. 중고등부 수련회는 목사님 자녀만 제외하고 교회 자체적으로 하기를 원하는데 자녀가 연합으로 하고 싶다고하니깐 연합으로 가야 한다고 전도사에게 지시할 정도니... 물론 이것은 상당히 극단적 경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덕이 되지 못하는 자녀 교육이나 자녀들의 행태로 교우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문제 사례 3 : 잘못된 권위 세우기-교우들 경쟁 부추기기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권위일 것이다. 이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국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인 섬김의 권위보다는 권좌에 앉아서 지배하는 권위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에서 교인들 상호간에 경쟁을 부추기는 경우만 문제사례로 들겠다. 목사님은 자신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집착돼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을 아주 잘 오래 유지 시키는 방법은 자신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인간이 높아지려는 그 욕망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는 방법이다. 목사님은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을 공식석상에서 칭찬을 한다. 그러면 그와 경쟁적인 사람은 화가 좀 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목사님은 그 사람을 칭찬해 준다. 그러면 그 전에 칭찬을 받은 사람은 목사님이 자신만을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자신의 경쟁자를 보면서 더 경쟁적으로 목사님에게 정성을 다 한다. 이것을 잘 이용하면 목사님은 가만히 않아서 대우를 받게 된다. 지금 한국 교회는 기복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목사님은 자신에게 잘 한 사람이 잘 못 된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리고 잘못한 사람의 예를 들면서 경고와 협박을 양면성을 가지면서 교인 상호간의 경쟁을 유발하게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니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항상 대우를 받는 입장에 있다. 절대 자신은 받을려고만 하지 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목사의 권위인 줄 안다.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 사례 2 : 목회자 자녀
연초에 중고등부에서 잘 하시던 선생님이 중고등부 선생을 그만하고 유초등부에서 교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은 평상시 중고등부에서 많은 애착과 열성을 가지고 일했던 분이어서 의외어서 그 이유를 꼬치 꼬치 깨물었더니 이유는 목회자 자녀 때문에 도저히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을 봐도 인사도 하지 않고 반말 투의 말이니 40이 넘은 사람으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 얘들은 나한테도 인사를 안 한다고 해서 설득했지만 결국 유초등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목사님 딸과 선생님이 말 다툼이 주일날에 일어나서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깜짝 놀라 무슨일 인가 해서 달려가봤더니 목사님 딸은 울고 불고 소리를 높이는데 훨씬 더 나이 많은 아니 그 중고등부에서 가르쳤던 선생님 아무 말없이 있는 것이었다. 목사님 딸이 대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모님이 오시더니 자신의 딸을 편들고 선생님을 막 머라 하시는 것이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난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싸우면 무조건 자신의 딸이 아니라 상대방이 불러서 혼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상 있는 일이라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이런 일이 매 주일 반복된다. 점심 식사를 하는데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항상 반찬과 밥을 쟁반이 부서지게 챙겨서 어디로 나르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냐고 했더니 사택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 목사님 사모님이 다 여기 있는데 왜 보내느냐고 했더니 아이들 갔다 준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인 딸들이다. 아니 같이 먹으면 되고 또 따로 먹고 싶으면 가지고 갈 것이지.... 화가 치밀어서 막렸더니 그 다음 말이 가관이다. 전도사님 그러시면 안돼요. 이것은 사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 목사님 내외분이 어떻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지 교우들에게 물었더니 목사님 자녀도 목사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쩌구니가 없었다. 중고등부 수련회는 목사님 자녀만 제외하고 교회 자체적으로 하기를 원하는데 자녀가 연합으로 하고 싶다고하니깐 연합으로 가야 한다고 전도사에게 지시할 정도니... 물론 이것은 상당히 극단적 경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덕이 되지 못하는 자녀 교육이나 자녀들의 행태로 교우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문제 사례 3 : 잘못된 권위 세우기-교우들 경쟁 부추기기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권위일 것이다. 이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국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인 섬김의 권위보다는 권좌에 앉아서 지배하는 권위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에서 교인들 상호간에 경쟁을 부추기는 경우만 문제사례로 들겠다. 목사님은 자신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집착돼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을 아주 잘 오래 유지 시키는 방법은 자신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인간이 높아지려는 그 욕망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는 방법이다. 목사님은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을 공식석상에서 칭찬을 한다. 그러면 그와 경쟁적인 사람은 화가 좀 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목사님은 그 사람을 칭찬해 준다. 그러면 그 전에 칭찬을 받은 사람은 목사님이 자신만을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자신의 경쟁자를 보면서 더 경쟁적으로 목사님에게 정성을 다 한다. 이것을 잘 이용하면 목사님은 가만히 않아서 대우를 받게 된다. 지금 한국 교회는 기복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목사님은 자신에게 잘 한 사람이 잘 못 된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리고 잘못한 사람의 예를 들면서 경고와 협박을 양면성을 가지면서 교인 상호간의 경쟁을 유발하게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니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항상 대우를 받는 입장에 있다. 절대 자신은 받을려고만 하지 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목사의 권위인 줄 안다. 문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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