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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래동화 교훈(거위가 먹은 진주, 아들 산삼), 전래동화 교훈(두더지가 된 며느리, 혹부리 영감), 전래동화 교훈(방안을가득채울수있는것, 볍씨 한 톨), 전래동화 교훈(효자와 불효자, 지성이면감천, 홍길동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전래동화의 교훈(거위가 먹은 진주)

Ⅱ. 전래동화의 교훈(아들 산삼)

Ⅲ. 전래동화의 교훈(두더지가 된 며느리)

Ⅳ. 전래동화의 교훈(혹부리 영감)

Ⅴ. 전래동화의 교훈(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

Ⅵ. 전래동화의 교훈(볍씨 한 톨)

Ⅶ. 전래동화의 교훈(효자와 불효자)

Ⅷ. 전래동화의 교훈(지성이면 감천)

Ⅸ. 전래동화의 교훈(홍길동전)

참고문헌

본문내용

께 상공과 의논하여 너를 죽이려 함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리오.\"
하고 칼을 들고 달려들자 길동이 요술로 특재의 칼을 앗아들고 호령하여 왈,
\"네 재물을 탐하여 사람 죽임을 좋이 여기더니 너 같은 무도한 놈을 죽여 후환을 없이 하리라.\"
하고 단칼에 특재의 목을 벤 뒤 관상녀도 잡아 죽이고 초란이까지 죽이려 하였으나 상공의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지며 상공의 침소에 나아가 하직을 고하자 상공이 측은히 여겨 그날부터 호부호형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길동은 이미 결심한지라 어머니의 침소에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갔다.
길동이 깊은 산 속을 찾아 들어가니 큰 바위 밑에 석문이 닫혔거늘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니 수백 호 인가가 즐비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하며 즐기니 이곳은 도적의 굴혈이라 문득 길동의 위인됨이 녹록지 아님을 반겨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앉혔다. 이후로 길동이 제인으로 더불어 무예를 연습하여 수월 내에 군법을 재정비한 연후에 합천 해인사를 쳐 재물을 탈취하고 이 무리를 활빈당(活貧黨)이라 하여 조선팔도로 다니며 각읍 수령의 불의로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혹 가난한 자 있으면 구제하여 백성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치 아니하니 다른 도적들이 모두 항복하여 그 수하에 들었다.
연이어 그는 탐관오리로 알려진 함경 감사의 관아를 습격하여 창고를 열고 전곡과 군기를 모두 거두어 달아나자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지자 길동이 잡힐 것을 우려하여 초인(草人) 일곱을 만들어 진언을 염하고 혼백을 붙이니 일곱 길동이 일시에 팔을 뽐내며 팔도에 흩어지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임금이 크게 놀라 우포장 이흡에게 명하여 길동을 잡도록 명하시었다.
포장 이흡이 상의 명을 받아 관졸을 거느리고 발행할 새 하루는 한 주점을 들러 쉬더니 한 소년과 술을 마시다 깨어보니 부대 속에 들어 있는지라 풀어주어 단상을 올려다보니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었다. 그는 홍길동이 풀어주니 할 일 없이 돌아갔다.
그 후로도 전국에서 홍길동을 잡아달라는 상소가 빗발치니 임금은 길동이 전임 이조판서 홍모의 서자이며 지금의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제임을 알고 인형을 경상 감사로 제수하여 1년 이내에 길동을 잡아올리라 명했다. 어느 날 감사가 동생인 길동이 스스로 찾아온 것을 크게 기뻐하는데 길동은 스스로 결박하여 자기를 서울로 압송해 가라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결박하여 서울로 보내자 사람들이 모두 나와 길동을 구경했다. 이때에 팔도에서 하나씩 길동을 잡아올리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길동이 경상 감사인 형에게 가서 다시 잡혀가겠다고 하자 형이 기특히 여겨 사지를 한번 살펴보고 결박하여 함거에 넣어 서울로 다시 압송해 보냈다. 그러나 서울에 이르러 스스로 쇠줄을 끊고 함교에서 벗어나 달아나니 근심하던 임금은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하겠노라 방을 붙여 스스로 찾아오면 도부수를 매복시켰다가 사은하고 나오면 쳐죽이게 했다.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임금께 사은숙배하고 나와 구름을 타고 가버리니 그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임금은 길동을 잡는 것을 그치게 했다.
그 후부터 길동이 소란을 떨지 않자 상이 또한 근심없이 지내시니 가을 어느 날 밤, 후원을 거닐 때 문득 하늘에서 한 소년이 내려와 땅에 엎드렸다. 이에 임금이 물으니 아뢰었다.
\"신은 병조판서 홍길동이로소이다.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뫼시올까 하였으나 천비 소생이라 문(文)으로 옥당에 막히옵고 무(武)로 선천에 막힌지라, 전하께서 신의 소원을 들어주옵시니 전하를 하직하고 조선을 떠나가오니 복망 전하는 만수무강 하소서.\"
하고 공중에 올라 표연히 날아가자 임금이 그 재주를 크게 칭찬하셨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저도섬으로 들어가 수천 호 집을 짓고 농업을 힘쓰고 재주를 배워 무고를 지으매 군법을 연습하였다. 또한 길동이 귀신이 든 한 여자의 목숨을 살려주어 각자 처소로 돌아가게 하니 그녀의 부모가 크게 기뻐하며 길동을 사위로 삼으니 단번에 아내를 얻어 저도섬으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했다.
어느 날 길동이 천문을 보다가 부친 홍공이 세상을 떴음을 알고 가서 통곡한 후 다음날 운구하여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부하들을 지휘하여 산역을 마치고 삼상을 마친 후에 모든 영웅들을 모아 율도국을 치고자 진군했다. 정병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움을 돋우니 태수 김현충이 크게 놀라 왕에게 고하고 대적했다. 길동은 단칼에 적장 김현충을 베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안무하고 대군을 휘동하여 도성을 치자 왕과 신하들이 모두 항복했다.
이에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안무하고 왕위에 오른 후 율도왕으로서 의령군을 봉하고 마숙 최철로 좌우상을 삼고 제장은 각기 봉작한 후 만조백관이 천세를 불러 하례했다.
왕이 치국 3년에 태평세계라 백룡을 불러 조선 성상께 표문을 올리고 돌아오라 하니 백룡이 조선에 도달하여 표문을 올린대, 상이 보시고 찬 왈, \"홍길동은 짐짓 귀재로다.\"
하시고 홍인형으로 위유사(慰諭使)를 하사 조서를 내리시니 인형이 부인을 뫼시고 율도국에 이르니 왕이 맞이 하사 대연을 배설하여 함께 즐겼다. 여러 해가 지나 모친상을 당하자 선릉에 안장한 후에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으니 장남과 차남은 백씨 소생이고 삼남은 조씨 소생이었다. 장남 현으로 세자를 봉하고 다른 아들들은 모두 봉군하였다.
왕이 치국 삼십 년에 홀연 병을 얻어 세상을 뜨니 나이 70세였다. 선릉에 안장한 후 세자가 뒤를 이어 즉위하여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태평을 누렸다.
<교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찾아 행하자.
참고문헌
* 손동인(1984), 한국전래동화연구, 정음문화사
* 이선희(1985), 한국 전래동화와 창작동화에 나타난 인물들의 성별 특성에 관한 분 석 연구,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최운식·김기창 공저(1998), 전래동화 교육의 이론과 실제, 집문당
* 한명숙(2002), 한국전래동화의 판타지 구현 방식과 그 지도 방안, 의재최운식박사회갑기념촌총 간행위원회, 설화고소설교육론,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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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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