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동 고분군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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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복천동 고분군의 무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복천동고분군의조사와성과

•복천동고분군이란?

•위치

•조사성과

□무덤의종류와구조

•덧널무덤

•독널무덤

•구덩식독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복천동고분군관련사진

본문내용

비교적 좁고 충진토의 높이가 1m이하인 것으로 볼 때, 덧널의 높이는
1m이하인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80, 84호가 여기에 해당된다.
딸린덧널이 없는 덧널무덤인 80, 84호는 유구의 깊이가 매우 얕다. 특히84호에서는 봉토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나왔을 뿐 아니라 불에 탄 목재 파편이 나왔는데, 이는 김해 양동리고분군
울산 하대고분군과 유사한 목재파편으로 영남지역 덧널무덤의 계통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딸린덧널이 없는 덧널무덤은 딸린덧널이 있는 덧널무덤 보다
이전의 것이다.
피장자를 안치하는 주덧널 외에 피장자를 위해 여러거지 물품들을 넣기 위해 딸린덧널이
있는 덧널무덤은 부산지역의 경우, 복천동고분군에서만 보인다. 복천동고분군에서
딸린덧널이 있는 덧널무덤은 대부분 큰 무덤이고 구릉의 높은 부분을 따라 만들어졌다.
이들 무덤들은 구릉의 능선방향과 동일하게 2개의 깊은 수직구덩이를 50~100cm 간격으로
일직선이 되게 파고서 남쪽 구덩이는 주인공을 매장하는 주덧널로, 북쪽의 것은 부장품 전용의
딸린덧널로 한 것이다. 주덧널과 딸린덧널 모두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두께10cm
내외의 판재로 덧널을 만들고 덧널 내에는 주인공과 부장품을, 딸린덧널에는 부장품과 순장자를
넣었다. 그리고 구덩이와 덧널 사이의 보강공간에는 점토와 모래가 섞인 흙을 교대로 쌓아
단단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판축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충진공간은 단벽쪽이 넓고 장벽쪽이
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일부의 무덤에는 덧널 내부에 둥근형태의 기둥자리가 있는데,
이것은 덧널의 천정을 지탱하고 덧널이 안으로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기둥을
세웠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덧널과 딸린덧널의 바닥면 깊이는 일정하지 않고
대체로 주덧널의 바닥이 딸린덧널의 바닥보다 30~40cm 정도 깊으며 어떤 것은 130cm 정도
깊은 것도 있다.
<덧널무덤 사진>
가야 덧널무덤
복천동 덧널무덤
독널무덤
- 독널무덤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만들어진 무덤 구조의 하나이다.
청동기시대에는 한반도 전체에 걸쳐 보편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는
특정 지역 또는 큰 무덤의 가까이에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독널무덤군으로는 영산강유역과 창원 삼동동 유적을 들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독널무덤은
시체와 껴묻거리를 넣는 독과 이것을 막음 독으로 이루어졌는데, 큰 것은 4m가 넘는다.
그리고 하나의 봉토 내에 여러 개의 독널무덤이 있는 것도 있다.
복천동고분군에서 조사된 독널무덤은 90, 91호 2기이며, 구릉의 남쪽사면인 내성유적에서
1기가 조사되었다. 3기 모두 뚜껑이 있는 합구식이고 독널의 길이가 1m이하의 소형이다.
4세기 후반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91호 독널에서 부장품으로 컵형토기 1점이
나왔다.
<독널무덤 사진>
영산강 독널무덤
복천동 독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덧널을 돌로 쌓아 만든 것을 말하며, 그 매장방식은 앞시기의 덧널무덤과
마찬가지로 한명을 매장하고 완전히 막는 것이나, 덧널무덤보다는 기술적으로 발달된 무덤이다.
즉 돌을 채취하고 그것을 운반하는 기술, 그리고 돌의 가공과 가공된 돌을 무너지지 않게
쌓아올리는 기술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부산지역뿐만 아니라 가야의
전 지역과 백제의 일부지역, 고구려, 경주에서도 일부 발견되나 그 중심은 가야지역이다.
구덩식돌덧널무덤인 22호는 덧널구조의 딸린덧널이 딸린 큰 무덤으로 복천동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다. 덧널인 22호의 구조를 보면, 길이680cm, 너비640cm,
깊이 290cm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길이 475cm, 너비160cm,
깊이 160cm의 돌덧널을 만들었다. 돌덧널은 완전 지하에 만들어졌고 4매의 뚜껑돌이 걸쳐있다.
돌덧널벽 외측과 구덩이 사이의 공간이 넓고 그 부분에 돌과 흙을 채워넣어 벽면을 보강하였다.
복천동 22호는 영남지역의 가장 빠른 구덩식돌덧널로 가야무덤의 변천을 밝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복천동 22호 무덤 시기에 복천동고분군의 무덤 구조가 덧널에서
구덩식돌덧널로 바뀔 뿐만 아니라 여러 가야지역의 큰 무덤들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덩식돌덧널무덤>
복천동 구덩식돌덧널 무덤
가야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 5세기 후반대가 되면 낙동강 동쪽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역에는 독특한 구조인
앞트기식돌방무덤이 등장한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은 앞시기의 구덩식돌덧널에
굴식돌방무덤의 매장방식이 결합한 무덤으로 가야지역의 특유한 무덤이다.
시신을 무덤안으로 들여놓기 위한 입구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무덤에 여려 명을
매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덩식돌방무덤과 같으나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방으로
들어가는 무덤안길이 없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이 등장하는 시기에는 신분이 높은 일부 사람들만이 사용하였으나
6세기로 들어오면서 일반적인 무덤으로 되고, 시기가 지날수록 추장이 활발하게 행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1인만을 매장하여 영구 밀폐하는 구덩식돌덧널무덤 단계와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고, 또 한가족을 같은 무덤에 매장할 수 있기 때문에 굴식돌방무덤과
더불어 가족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앞트기식돌방무덤이 부산지역에
등장하는 시기는 6세기 전반경이며, 덕천동, 두구동 임석고분군이 그 대표적인 에이고,
복천동고분군에서는 65호 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65호는 벽면이 대부분 무너졌기 때문에 입구와 천정의 형태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덤의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벽면에 회가 칠해져 있다.
바닥 전면에 쪼갠돌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규모가 큰 널찍한 깬 돌이 한 번 더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한번정도의 추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트기식돌방무덤 사진>
가야 앞트기식돌방무덤
양산 부부총
복천동고분군 관련 사진
참고문헌 -----------------------------------------------------------
1.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 지음, 부산의 역사와 복천동고분군, 1996.
2. 사진자료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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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19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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