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신위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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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위(申緯)의 시와 문인적(文人的) 자부(自負)

1) 삶과 의식

2) 시에 나타난 문인적 자부

가. ‘유소입두(由蘇入杜)’

나. 시서화(詩書畵)와 교유

다. 실증적 태도와 문화적 자존심

라. 선적(禪的) 깨우침과 담담한 흥취

본문내용

깨우치지 못하네.
莊子는 ‘齊物論’에서 자신이 원래 나비인가 의심했는데
蘭雪은 자신이 잠자리였다는 인연을 깨우쳤다네.
누런 기장밥 겨우 익을 동안에 公侯의 즐거움을 맛보았어도
백골은 끝내 개미들의 밥으로 돌아갈 것이라.
끝까지 마음을 밝혀내려 해도 찾을 곳이 없고
이 몸에게 天地란 십리마다 서 있는 한 여관이구나.
人生如夢枉勞形。業海浮苦未醒。齊物莊周元蝶。悟緣蘭雪卽。黃粱熟公侯樂。白骨終蟻腥。到底徵心無覓處。是身天地一長亭
(申緯全集3, 1232-3쪽)
그가 63살(1831) 겨울에 각기병으로 자하산에 머물러 있으면서 오숭량이 보내준 기몽시(記夢詩)에 화운하고 병서를 붙인 작품으로 <북선원속고5(北禪院續藁五)>에 실려 있다. 이 시의 병서에,
蘭雪 吳嵩梁이 일찍이 꿈을 꾸었는데, 골짜기를 따라가다가 잠자리로 변해서 꽃잎 위에 앉게 되었다. 마치 배처럼 나부껴서 신선인가, 신선인가 하였다. 깨어나 시로 기록했는데, 시인의 꿈이라 꿈 또한 기이하다. 蘭雪의 말인즉, “인생 일체가 환상이요, 모두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업보의 바다에 부침하여 여러 고뇌를 닦아 스스로 통달한 사람은 험난과 편안을 같은 것으로 보고 사물과 나를 함께 잊어서 하늘에 맡겨 움직이니 또한 편안하여 자득함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것이 마음에 느낀 바 있어 마침내 이 시를 화답하여 장차 난설에게 부쳐 보이려고 한다. 난설이 만년에 멀리 가 벼슬을 지내고 더욱 깨우쳐 나아간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다. 申緯全集3, 앞의 책, 1232-3쪽. ‘和吳蘭雪記夢詩 幷序’ 蘭雪夢循溪而行 化爲 坐落花瓣上 飄然若舟 仙乎仙乎 覺來有詩記之 詩人之夢 夢亦奇矣 蘭雪之言曰 人生一切幻境 皆由心造 業海浮 脩諸苦惱 自達者觀之 險夷同致 物我俱忘 則任天而動 亦安往而不自得耶 其爲言也 有感於心者 遂和此詩 將以寄示蘭雪 未知蘭雪衰年遠宦 經歷更多 悟道益有進否.
라고 하여 이 시를 지은 연유를 밝혀 놓았다. 오숭량이 꿈에 잠자리가 된 것을 계기로 인생은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깨우침을 얻은 것에 자신의 감회를 붙였다는 것이다. 수련에서 인생은 꿈같은 것인데 업보로 괴로워하며 깨우치지 못함을 한탄하고, 함련에서 장자(莊子)의 나비 꿈과 난설의 잠자리 꿈을 대비하여 인생이 윤회와 인연으로 짜인 환몽임을 표현했다. 경련에서 당나라 심기제(沈旣濟)의 전기(傳奇)소설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노생의 꿈 이야기 魯迅, 鄭範鎭 역, 中國小說史略, 學硏社, 1987, 83-4쪽 참조.
를 들어 인생의 부귀영화는 꿈같이 지나가고 끝내는 개미의 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의 허망함을 말하고, 미련에서 마음의 실체란 밝혀낼 수 없다며 성리학설을 덮어버리고 인생이란 세상이라는 여관을 인연에 따라 잠깐 지나갈 뿐이라는 불교적 깨우침을 드러내었다. 이렇게 인생은 허망한 꿈이며 업보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는 선적 깨우침을 표현하고 있다.
◇◆
신위는 4천여수의 많은 시를 남긴 조선후기 순조-헌종 때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일생동안 송시를 연마하여 당시의 경지에 올라서려 하였고, 시서화에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고증학적 태도와 문화적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불교를 애호하여 그의 시에는 선적 깨우침과 담담한 흥취가 드러나고 있다. 그는 순탄치 않은 벼슬길보다는 시에 정진하여 당대는 물론 조선 500년을 대표할 만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앞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옹방강의 감화를 입어 ‘유소입두(由蘇入杜)’를 표방하고 소동파의 시를 배움으로써 당시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소동파의 시를 일생토록 연마하였다.
둘째, 그는 시서화를 통하여 당대의 국내외 명사들과 교유하여 당대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올랐으며 그들과 돈독한 정의를 쌓았다.
셋째, 그는 시를 통하여 실증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시도 중국시의 정수를 소화하여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넷째, 그의 시에는 선적인 깨우침과, 사실적이고 회화적인 경향, 그리고 담담하면서도 은은한 흥취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있고, 이는 그의 시가 이룬 성과라 할 만하다.
끝으로 송시풍의 시와 당시풍의 시를 아우름으로써 사실적이고 이지적인 경향으로 나아가던 조선 후기의 시적 경향을 변화시키려고 한 점에 그의 한국 한시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체득한 경지가 송시였고, 그가 추구한 변화의 지향점이 조선시의 창조적 개성보다는 두시를 중심으로 한 당시였다는 점이 그 한계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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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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