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와 갑자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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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며 이세좌 까지 유배형에 처한다. 그러면서 폐비 윤씨에 대한 추숭문제를 제기하면서 무오사화 때처럼 실록을 상고하여 폐비론에 찬동한자, 사약을 내릴 때 명을 따른 자 들을 모두 색출하도록 했고, 곧바로 이들에 대해 죽음을 내리게 된다. 유배지에 있던 이세좌는 물론, 성종 시절 대신이었던 윤필상, 이미 죽은 정창손, 심회, 정인지, 한명회는 부관참시 했고, 이 외에도 폐비에 관련해 몇 사람이 더 죽음을 맞고 유배 되었다.
이렇게 폐비에 관련된 이들을 처벌하고 폐비를 추숭함으로 갑자사화는 끝났고 더 이상의 옥사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연산은 계속해서 옥사를 벌였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갑자사화는 단순히 폐비에 대한 복수가 아닌 대신 세력을 꺾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연산의 2차 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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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29
  • 저작시기201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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