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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이세좌 까지 유배형에 처한다. 그러면서 폐비 윤씨에 대한 추숭문제를 제기하면서 무오사화 때처럼 실록을 상고하여 폐비론에 찬동한자, 사약을 내릴 때 명을 따른 자 들을 모두 색출하도록 했고, 곧바로 이들에 대해 죽음을 내리게 된다. 유배지에 있던 이세좌는 물론, 성종 시절 대신이었던 윤필상, 이미 죽은 정창손, 심회, 정인지, 한명회는 부관참시 했고, 이 외에도 폐비에 관련해 몇 사람이 더 죽음을 맞고 유배 되었다.
이렇게 폐비에 관련된 이들을 처벌하고 폐비를 추숭함으로 갑자사화는 끝났고 더 이상의 옥사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연산은 계속해서 옥사를 벌였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갑자사화는 단순히 폐비에 대한 복수가 아닌 대신 세력을 꺾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연산의 2차 개혁이었다.
이렇게 폐비에 관련된 이들을 처벌하고 폐비를 추숭함으로 갑자사화는 끝났고 더 이상의 옥사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연산은 계속해서 옥사를 벌였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갑자사화는 단순히 폐비에 대한 복수가 아닌 대신 세력을 꺾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연산의 2차 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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