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문학의 특성
1. 문학은 체험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2. 문학은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것을 포착한다
3. 문학은 인간 경험뿐만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해석도 제공해 준다
Ⅱ. 문학과 윤리
Ⅲ. 문학과 역사
Ⅳ. 문학과 정보화사회(정보사회)
Ⅴ. 문학과 대중문학
1. 대중과 대중문학 - 소비자와 소비재로의 만남
2. 대중문학의 변화 양상 - 산업 사회와 상업주의 문학
3. 대중문학의 방향
Ⅵ. 문학과 기독교문학
Ⅶ. 문학과 패관문학
참고문헌
1. 문학은 체험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2. 문학은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것을 포착한다
3. 문학은 인간 경험뿐만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해석도 제공해 준다
Ⅱ. 문학과 윤리
Ⅲ. 문학과 역사
Ⅳ. 문학과 정보화사회(정보사회)
Ⅴ. 문학과 대중문학
1. 대중과 대중문학 - 소비자와 소비재로의 만남
2. 대중문학의 변화 양상 - 산업 사회와 상업주의 문학
3. 대중문학의 방향
Ⅵ. 문학과 기독교문학
Ⅶ. 문학과 패관문학
참고문헌
본문내용
성경이 국문 보급에 기여함으로써 근대문학의 저변 구축에 일조한 것은 차치하고, 찬송가의 번역이 근대시가의 자유율을 성립시킨 요인의 하나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근대 작가와 시인 등의 다수가 국내에서든 혹은 일본 유학에서든 미션계 학교의 수학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의의를 지닌다. 이들 가운데는 창조의 동인들처럼 기독교 가계 출신인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학력 상으로만 미션계 학교를 다닌 부류도 있을 텐데, 후자는 수학 중에 혹은 그것을 계기로 하여 나중에라도 기독교에 입교하거나 동화된 경우와 거의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지낸 경우로 다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력과 무관하게 기독교와 관계를 맺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각 사례마다 기독교의 영향을 사정하는 일에는 세심한 분석이 요구되겠거니와, 교파의 다양성에 상도하면 그 처리과정은 더욱 까다로워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상의 난점도 부분적인 원인이겠지만, 근대문학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가 막연한 총론 내지 배경론의 수준 이상으로 진전되지 못한다면, 이는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우리 근대문학을 해석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전제에 결부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외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작가와 시인 등의 정신적 형성과정에 과연 본질적인 영역으로까지 육박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미션 스쿨”을 다닌 “우리 근대문학의 앞을 열어간 선두주자들인 이광수, 주요한, 김동인, 전영택” 그리고 “염상섭”이 “거기서 배운 것은 풍금소리로 표상되는 근대적 국제 감각”이며 “이른바 <문명개화>의 감각적 형상이었다.”는 것, “이들 문인들이 훗날 기독교 사상을 작품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은 따라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평가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미션 스쿨 또는 기독교가 종교적 의미와는 별반 관계없는 문화적 차원에서의 피상적인 경험에 그친 만큼, 작품 자체에 기독교의 비중이 미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종교적 차원에서 기독교에 대한 성찰의 수준이 도저한 원본성에 다가간 경우나 그것에 대한 수용 태도가 진정성을 띤 경우에는 근대문학과의 관련성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법하다. 이를테면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의 산문에 대한 검토는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물론 작가나 시인 등이 성직자라든지 독실한 신자라든지 하는 사실 자체만으로 논의의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관건은 종교적 사유와 체험이 문학적 표현과 얼마나 긴밀한 대응관계를 이루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요소가 작품 자체의 중핵으로 자리 잡은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그것의 구조적 해명이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성과 있는 논의가 기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Ⅶ. 문학과 패관문학
패관문학이 소설사에서 계속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소설을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등장한 고려조(중세)의 패관문학은 고소설의 전단계로서의 의미가 있고, 근세초의 패관 문학은 “금오신화”와 같은 소설작품의 출현으로 그 소설사적 의미는 다소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패관 문학도 시화 중심의 고려시대의 패관문학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또한 이시기에 거론되는 소설작품도 금오신화를 제외하면 패관잡기에 실려 있는 설화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므로 패관문학은 그 나름대로 소설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후기에는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수리정리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던 환경 속에서 패설과 같은 새로운 문학양식이 발생하였다.(“패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소설을 패설이라 하기도 함) 당시 많은 애국 문인들은 외적과의 빈번한 전쟁 속에서 산실, 인몰되어가는 문화유산들, 특히 역사 자료와 문학 작품들을 수집 정리하면서 사적과 문집들을 편찬하여 후세에 전하려 하였으며 또한 그 수집한 자료들에 기초하여 새로운 형태의 산문 문학들을 창작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패설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산문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패설문학은 전래의 민간 구전 설화, 그리고 수이전체 산문이나 전기등 선행한 산문형식들과 계승적 관계를 갖고 있는데, 풍부한 설화적 요소와 예술적 허구, 자유로운 필치 등은 이 시기에 설화적 형태의 패설과 같은 새로운 산문양식이 나올 수 있는 중요한 내적 요인으로 되었다.
“패설”이란 말은 종래 사대부 문인들의 전통적 산문과는 달리 많이는 항간에 떠도는 자질구레한 혹은 하찮은 이야기들을 적은 ‘비속한 글’에서 유래하였다. 패설문학은 ‘소설’, ‘잡기’, ‘잡설’, ‘잡록’, ‘만록’, ‘세설’, ‘쇄어’, ‘야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오늘날 문학이론적 견지에서 보면 패설문학은 일반적으로 수필, 잡문적 성격을 띤 것이 많고, 문학평론적 성격과 전기, 단편소설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패설문학이란 하나의 어떤 고정된 산문양식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대체로 짤막하고, 특별한 격식이 없이 작가가 견문하고 느낌 바를 이야기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종합적 형태의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기의 패설문학은 각종 이야기와 설화들을 포함한 잡다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나 그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시화와 시평이었다. 이시기의 대표적인 패설집들은 이인로의 파한집, 이규보의 백운 소설,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조이후 근세초기의 작품들의 서명을 대략 들어보면 徐居正의 筆苑雜記, 成俔의 傭齋叢話, 南孝溫의 秋江冷話, 李陸의 菁坡劇談, 金正國의 思齋拓言, 金安老의 龍泉談寂記 등이 있다.
참고문헌
권택영(1997) /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 문학사상
김영민 / 이념과 문학의 길-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을 통해 바라본 문단 구도
김봉군(1989) / 한국기독교문학론 서설, 운당 구인환선생 회갑 기념논문집, 한샘
정한숙(2003) / 현대한국문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하인츠 스톨테, 안안길 역(1994) / 쉽게 쓴 도이치 문학의 역사, 신구문화사
Stephen K. Sanderson, 김정선 외 역 / 사회학-인간사회의 구조와 변동
이러한 작업상의 난점도 부분적인 원인이겠지만, 근대문학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가 막연한 총론 내지 배경론의 수준 이상으로 진전되지 못한다면, 이는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우리 근대문학을 해석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전제에 결부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외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작가와 시인 등의 정신적 형성과정에 과연 본질적인 영역으로까지 육박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미션 스쿨”을 다닌 “우리 근대문학의 앞을 열어간 선두주자들인 이광수, 주요한, 김동인, 전영택” 그리고 “염상섭”이 “거기서 배운 것은 풍금소리로 표상되는 근대적 국제 감각”이며 “이른바 <문명개화>의 감각적 형상이었다.”는 것, “이들 문인들이 훗날 기독교 사상을 작품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은 따라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평가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미션 스쿨 또는 기독교가 종교적 의미와는 별반 관계없는 문화적 차원에서의 피상적인 경험에 그친 만큼, 작품 자체에 기독교의 비중이 미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종교적 차원에서 기독교에 대한 성찰의 수준이 도저한 원본성에 다가간 경우나 그것에 대한 수용 태도가 진정성을 띤 경우에는 근대문학과의 관련성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법하다. 이를테면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의 산문에 대한 검토는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물론 작가나 시인 등이 성직자라든지 독실한 신자라든지 하는 사실 자체만으로 논의의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관건은 종교적 사유와 체험이 문학적 표현과 얼마나 긴밀한 대응관계를 이루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요소가 작품 자체의 중핵으로 자리 잡은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그것의 구조적 해명이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성과 있는 논의가 기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Ⅶ. 문학과 패관문학
패관문학이 소설사에서 계속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소설을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등장한 고려조(중세)의 패관문학은 고소설의 전단계로서의 의미가 있고, 근세초의 패관 문학은 “금오신화”와 같은 소설작품의 출현으로 그 소설사적 의미는 다소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패관 문학도 시화 중심의 고려시대의 패관문학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또한 이시기에 거론되는 소설작품도 금오신화를 제외하면 패관잡기에 실려 있는 설화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므로 패관문학은 그 나름대로 소설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후기에는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수리정리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던 환경 속에서 패설과 같은 새로운 문학양식이 발생하였다.(“패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소설을 패설이라 하기도 함) 당시 많은 애국 문인들은 외적과의 빈번한 전쟁 속에서 산실, 인몰되어가는 문화유산들, 특히 역사 자료와 문학 작품들을 수집 정리하면서 사적과 문집들을 편찬하여 후세에 전하려 하였으며 또한 그 수집한 자료들에 기초하여 새로운 형태의 산문 문학들을 창작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패설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산문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패설문학은 전래의 민간 구전 설화, 그리고 수이전체 산문이나 전기등 선행한 산문형식들과 계승적 관계를 갖고 있는데, 풍부한 설화적 요소와 예술적 허구, 자유로운 필치 등은 이 시기에 설화적 형태의 패설과 같은 새로운 산문양식이 나올 수 있는 중요한 내적 요인으로 되었다.
“패설”이란 말은 종래 사대부 문인들의 전통적 산문과는 달리 많이는 항간에 떠도는 자질구레한 혹은 하찮은 이야기들을 적은 ‘비속한 글’에서 유래하였다. 패설문학은 ‘소설’, ‘잡기’, ‘잡설’, ‘잡록’, ‘만록’, ‘세설’, ‘쇄어’, ‘야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오늘날 문학이론적 견지에서 보면 패설문학은 일반적으로 수필, 잡문적 성격을 띤 것이 많고, 문학평론적 성격과 전기, 단편소설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패설문학이란 하나의 어떤 고정된 산문양식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대체로 짤막하고, 특별한 격식이 없이 작가가 견문하고 느낌 바를 이야기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종합적 형태의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기의 패설문학은 각종 이야기와 설화들을 포함한 잡다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나 그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시화와 시평이었다. 이시기의 대표적인 패설집들은 이인로의 파한집, 이규보의 백운 소설,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조이후 근세초기의 작품들의 서명을 대략 들어보면 徐居正의 筆苑雜記, 成俔의 傭齋叢話, 南孝溫의 秋江冷話, 李陸의 菁坡劇談, 金正國의 思齋拓言, 金安老의 龍泉談寂記 등이 있다.
참고문헌
권택영(1997) /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 문학사상
김영민 / 이념과 문학의 길-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을 통해 바라본 문단 구도
김봉군(1989) / 한국기독교문학론 서설, 운당 구인환선생 회갑 기념논문집, 한샘
정한숙(2003) / 현대한국문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하인츠 스톨테, 안안길 역(1994) / 쉽게 쓴 도이치 문학의 역사, 신구문화사
Stephen K. Sanderson, 김정선 외 역 / 사회학-인간사회의 구조와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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